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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Oct 25. 2023

왕따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어린시절 우린 특별한 이유없이 왕따가 되고는 한다.

군대에서 신병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다보면, 불가피하게도 듣고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가 있다.

그건 이를테면 신병들의 어릴적 부모님이 이혼한 이야기 혹은 왕따를 당했던 썰 같은 것들이다. 신병 프로그램 중에는 ‘인생 그래프’ 라는 것을 그리는 시간이 있다. 자신이 살아왔던 궤적과 그에 따른 기분을 x y 좌표축에 그려놓고 이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다. 뭐든 귀찮아 하는 신병들이 그 시간만큼은 철학자가 되는데 , 이를 볼때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인 것 같다. 우리가 무릇 우리의 인생을 축소하고 과장하고 짤라내듯이 신병들의 인생그래프는 그런 식으로 단순화되기도 하지만 어떤 솔직한 이들은 자신의 어려웠던 부분들을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어느날에 성하는(가명) y 축에 - 방향으로 끝도없이 떨어진 자신의 인생 시점을 떠올리며, ‘내가 왕따를 당했던 경험이 있음’을 설명했다. 담담한 그의 표정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담겨있었지만 고백하는 그의 어조는 구김없이 당당했다. 쌩판 처음보는 동기의 어려움을 듣는 신병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어떤 이들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하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따뜻한 공감의 미소로 지긋이 그 아이를 바라봐준다. ‘다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말하고 쓰고 나를 표현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나에게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나에게) 그들은 내게 선생님이 된다.하지만, 왕따가 되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차라리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오랜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낼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길고 긴 유년시절, 그리고 학창시절 왕따를 당해보지 않은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왕따의 기준은 누구에게나 다 다른 것이니, 크고 작은 갈등들과 배제와 상처들이 존재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에게도 그런 상처가 있다. 아마도 그 이유때문에, ’자신이 왕따라고 밝힌‘ 그 친구의 말이 불편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우린, 별 이유없이 왕따가 된다. 사회에서는 장점이 될 만한, 어른에 대한 싹싹함이라던지 성실함 같은 좋은 것들은 어린 시절엔 주로 유별난 아이로 낙인찍혀 약점이 되기도 한다. 여느 누구와 다를 바 없던 평범한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어느 교실에서 왕따당하던 어떤 아이의 던져진 신발을 주워줬다는 이유로 같이 왕따를 당했다. 어느날에는 감자탕의 뼈를 쥐고 엉엉 울면서 엄마한테 너무 힘들다고 고백했었는데 그 장면이 생생히 기억나는 거 보면 그때 참 서러웠나보다. 자신의 아들이 왕따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가슴이 얼마나 찢어질까.. 그 막막함과 고통을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성하의 고백을 들었던 꽤 많은 이들의 불편한 얼굴들을 다시 떠올려 보니, 분명 비슷한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꽤나 많을 것이라고 대충 짐작한다. 성하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이제는 아물어버린 내 담담한 글을 보니 아픔은 굳고 더이상 아픔이 아니여서야 말할 수 있는 것인가보다. 수많은 신병들이 나를 거쳐가는데 그들 중에는 왠지 아픔을 간직한 것 같아 보이는 이들이 참 많아 신경쓰인다. 걔들이 성하처럼 빨리 아픔을 극복하고 담담히 자신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난 내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 더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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