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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Oct 29. 2023

디지털 디톡스 그 시작

왜 하게 되었나면요..

며칠 전 내게는 인생을 뒤바꿀만한 큰 결심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요새의 나를 구성하고 있던 인스타와 유튜브를 휴대폰과 태블릿에서 삭제한 일이다. 이전에 애나 렘키의 <도파미네이션>이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중독을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로 제시했던 것이 한달 정도 아예 그 자극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그때는 물론 심하게 중독되어 있었어서 그럴 엄두를 못내고 있다가 일이 바빠지고 삶의 여유가 없어지던 어느날 나는 큰 좌절감을 느꼈다. 일이 바쁘니, 더 가벼운 자극들(유튜브 쇼츠/인스타 릴스)에 중독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중독은 나를 받쳐주던 삶의 가벼운 루틴들, 예를 들어 운동을 하는 것과 독서와 글쓰기 등의 행위를 불가능하게 했다.  매일매일의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의 특성상 그 악순환은 반복되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내렸고 어느 순간 스스로가 너무 미워졌다.  


여느날도 비슷하게 유튜브를 영혼없이 내리다가 한 채널을 발견했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튜브나 인스타 등의 숏폼이 인간의 뇌를 망가트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 플랫폼들의 부작용을 충분히 경험해왔던 나였기에 정말 많은 공감을 하면서 20~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지루해하지 않고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 영상이 내게 뜬 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미뤄왔던 실천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유튜브가 어느 순간에는 실천의지를 복돋아 주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가 시작되었다.


이름은 꽤나 거창하지만 그리 대단한 것은 없다. 말 그대로 유튜브와 인스타를 잠시 끊어내는 일이다. 말은 쉽지만 사실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계속 유혹이 찾아왔다. 무언갈 계속 하고 있어야 한다는, 보고있어야 한다는 유혹을 넘어서기 어려웠다. 그런 순간들이 찾아올때 나는 주로 사람들을 찾아가서 외로움을 달래보았다. 그런 위기들은 사실, 밤에 찾아오는 지루함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었다. 꽤 오랜 기간동안 자기 위해서 유튜브의 힘이 필요했던 나는 그 공백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책을 읽어보려 했지만 밤에 책을 읽는 건 너무 지루한 일이었기에 나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10시에는 침대에 누워 긴 호흡의 영화를 30분정도 보다보면 너무 고맙게도 피로함이 찾아왔다. 그렇게 가장 걱정했던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5일의 디톡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데, <효과는 굉장했다>.

정말 사실이었다. 겨우 한 손에 들어갈만한 크기의 작은 기기가 우리의 인생을 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적인 가십거리들이 들어차왔던 뇌의 한 구석에 여유가 생긴 기분이들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내게 꽤 큰 파장을 일으켜 주었다. 일단,(1) 사유하는 힘이 커졌다. 그 전에는 조금 여유시간만 생기면 휴대폰을 들어 정보들을 확인하다보니 얕은 생각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디톡스를 시작한 이후에는 여러 깊고 다양한 양상의 깊은 생각들이 가능해졌다.(3) 휴대폰을 멀리하자 책을 더 가깝게 할 수 있었다. 내게 부족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유튜브를 볼 수 없으니 ‘밀리의 서재’ 플랫폼을 이용해서 직접 내게 필요한 정보를 찾았다. 이제까지 나를 괴롭혀왔던 식곤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화’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정갈한 삶을 추구해왔던 나를 위해 ‘정리’ 전문가의 글을 읽어보기도 했다. (4) 여러 장점들이 많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인 것 같다. 시간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여유가 생기니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 지 궁금해지고, 관심을 갖게 된다. 축하할 만한 사람들을 축하해 줄 수 있게 되고 내 주변에 가깝게 있는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항상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번 디톡스를 통해 여유가 생겨서 더 많은 걸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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