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 문화는 어쩌면 이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와는 좀 더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가령, 구인 모집글 등에 올라오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멘트는 진부하기만 하다. 사회 초년생이 받아들이기에는 어떤 부당한 지시를 당하든 가’족‘같은 분위기에서는 그냥 무던히 웃으며 지나가 달라는 말로 들릴 뿐이다.
부모 자식 관계도 그렇다. 공자가 유교사상을 펼치며 세상에 나왔을 때 어찌 부모가 아이의 삶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고 주장했을 것인가. 그놈의 ’ 정‘ 때문에 아이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부모의 닦달로 그들이 원하는 걸 시작하고 포기하고 폐인으로 남는다. 너무 과장한다고?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많다고? 아니다 그래도 20살 초반을 거의 학원계에서 종사하며 부모님들을 많이 마주하고 상담해 왔지만 그들은 주로 착각하고는 한다. 자신이 그들에게 원하는 길이 ’ 정도‘이며 그것을 벗어나려는 그들의 모든 행동을 일탈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25살을 살아오면서, 특히 20살 이후 다양한 환경의 변화를 마주하면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수 없이도 바뀌어 왔다. 나도 그 ’ 정‘이라는 것 때문에 누군가를 마주칠 때마다 최대한 잘해주려고 노력했었다. 심지어 그가 모진 말을 해도 언젠가 그를 다시 마주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혹은 이후에 그가 가진 장점들이 발휘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그렇게 다양한 집단을 전전해 왔던 나다. 초 중 고등학교, 전 학교였던 중앙대학교를 포함하여 현재의 성균관대학교 그 대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동아리들 학생회들 그리고 기숙학원, 또 군대.. 너무나 많은 집단을 거쳐 왔던 지라 그들을 모두 ’ 인스타‘라는 얇은 실로 연결했고 또 붙잡고자 했다. 결국 600명에 이르는 팔로워를 가졌는데, 그 들 중 실제 연락하는 사람들은 30명도 안 됐을 것이다. (현재는 100명과 함께한다.)
그 많은 집단들을 거쳐가면서 내게 남은 인연들은 각 집단마다 0명 혹은 1명이다. 간혹 가끔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할 수 있는 사이로 남거나 보통은 그냥 모르는 사이 혹은 어색한 사이로 남는다. 너무나도 중요한 것을 깨달아 버린 나였다. 난 그리 몸부림 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살살 기며 아첨할 필요도, 해야 할 말을 참으며 노력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지금 머무는 이 현실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3개월 6개월 이후에 자신의 옆에 누가 있을지 떠올려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내가 그렇게 매정한 생각만을 하기 때문에 친구가 없을 것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또한 정말 정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고 정이 많아 좋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저것 챙겨주려 한다. 그럼에도 난 언제나 떠올리려고 한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 사람과도 조금은 먼 관계로 남겠지. 어쩌면 몇 달 후에는 보기 어려울 지도 몰라’와 같은 말들을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매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유한성을 떠올리면 더 지금의 관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언젠가 마주할 죽음을 떠올리며 , 현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들처럼 말이다.
난 그래서, 무례한 사람과는 말을 일절 섞지 않으려 한다. 그게 만약 상사라서 그래야 한다면 격식 있는 겉치레 말 정도? 누군가 날 심하게 대하면 그와 같이 할 이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 본다. 몇 시간? 며칠? 그 짧은 시간 후엔 그는 내 곁에 없을 것이다. 그런 매정함은
오히려 나를 지킨다. 난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몇몇과의 소중한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난 그 찬란한 시간들이 모순적이게도 유한함에서 온다는 것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다. 그리고 ‘정’ 따위는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 날 힘들게 할 때는 꼭, 그와 나의 관계의 유한성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길 바란다. 정말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는 얼마나 우주의 먼지 같은 사람인지, 그에게 달려있는 목숨은 얼마나 유한하고 보잘것없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