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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Mar 09. 2024

한 자취인의 겨울 생존법

 나를 마주했던 건 작은 침대 하나와 전기장판, 뽀로로 탁자

<오늘도 계속 삽니다>라는 책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의 좋은 점을 열렬히 설파하고 있었는데, 역시 팔랑귀인지라 쉬이 설득당해 버렸습니다. 사실 자취의 꿈을 가지지 않아 본 것은 아닙니다만. 그 시작이 너무나 비참했던 지라.. 제 첫 자취는 내 할아버지의 배다른 고모의 은혜로 시작되었습니다. 고모님의 할머니의 요양을 위해 고모가 자신의 집을 비워주셨고, 저는 겨울방학 3개월 동안 그곳에서 ‘자취’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살길을 고민하다 동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나서 두 명의 과외돌이 와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업 장소는 둘 다 인천이었는데 한 곳은 부평이란 곳이고 한 곳은 삼송이라는 지역이었습니다. 너무나 멀었고 하필 추운 겨울인 탓에 매일매일을 찢어질듯한 추위를 뚫고 과외를 하러 가야 했습니다. 또 그때는 가벼운 우울증에 빠져 유튜브와 인스타와 게임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폐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죠.


추운 한파를 뚫고 집에 돌아오면 저를 마주했던 건 작은 침대 하나와 전기매트 그리고 뽀로로가 그려진 작은 테이블이었습니다. 저는 그 작은 테이블에서 궁상맞게 앉아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그건 가난한 대학생의 삶의 기록이라기 보단, 추위에 떠는 한 인간의 생존일기이었을겁니다. 그 겨울은 너무나 추웠습니다. 달에 300씩 줘야 하는 기숙 학원에 따뜻한 보금자리는 온 데 간데없고, 보일러 조차 되지 않아 바람이 슝슝 들어차는 그곳에 저는 전기장판 하나를 친구 삼아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추위와 가난함, 저는 물론 그 시절을 참 자유로웠다고 떠올립니다. 가난했지만, 누구의 의지가 아닌 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가난했기 때문이죠.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첫 자취는 그럼에도 제게 싸늘하고 아프게만 남아있습니다.


군대에서 혼자 하는 평온함을 즐기면서,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갈망이 짙어졌습니다. 적당히 깨끗하고. 포근한 그런 집을 요새는 원합니다. 또, 저는 요리를 직접 해 먹는 삶도 꿈꾸는데 예전에 자취할 때 제가 해 먹었던 순두부찌개를 생각하면 좀 끔찍한 생각도 듭니다. 엄청 큰 요리는 아닐지라도요, 깨끗한 그릇에 무언가 담아먹는 삶을 꿈꾸는 것만으로 삶이 안정되는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인생이라니, 참 좋습니다. 끝없이 배우고 성장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소소히 이뤄나가는 삶을 살 겁니다. 변호사 따위는 되기 어렵지만, 깨끗한 방에서 요리를 해 먹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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