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내가 문란해서 싫다고 했다.
Chapter 4)
A는 내게 문란하다고 했다. 문란? 문란했으면 좋겠다. 난 소신 있게 문란한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금요일에 지쳐 있는 내게 A가 다가와줬다. 외국에서 낯선 한국 사람과 친해지는 일은 외국에서 외국인을 만나 친해지는 것보다 훨씬 쉽다. ‘혹시 한국인이냐’ ‘얼마나 계시냐’ ‘누구랑 오셨냐’와 같은 진부하고 짧은 몇 마디로도 어떠한 종류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영토를 공유하고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인가. 딱 봐서 매력적인 외모는 아니었지만 위스키를 몇 번이고 때려 밖은 탓에 정신이 나가있었고 따뜻하고 깊은 눈매를 가지고 있었기에 끌렸다.(이제부터 이상형을 이야기하라면 따뜻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야지) 새벽 5시가 거의 다해가는 시간이라, 손을 잡고 클럽에서 A와 키스를 했다. 술은 원래 키스를 쉽게 해 준다.
걔는 일요일에 돌아간다고 했다. 회사원이고, 휴가를 쓰고 나와 이곳저곳을 혼자 돌아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또 금세 빠져버린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A에게 내일 같이 여행하자고 했지만, 혼자 갈 곳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저녁부터는 같이 다닐 수 있다고 했다. 나도 혼자 떠나온 여행이지만 한 번도, 저녁을 혼자 보낸 적은 없다. 혼자 여행은 그런 매력이 있다. 어쨌든 A는 나와 약속을 잡고 일본의 긴자에서 만났다. 긴자는 매력이 넘치는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여러 명품 숍들이 들어서있지만 냉정한 대도시의 느낌이 아니라, 좀 더 각각의 개인의 편의를 고려한 디자인들이 인상 깊었다. 그중 하나는 저녁 시간 중 얼마 정도는 차가 도로에 들어오는 것을 제한하여 자유롭게 거리를 걸어 다니게 한 것이다. 그런 인문학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도시다. 나는 그런 도시에서 맘껏 사진도 찍고 파르페도 먹고 마치 A와 커플인 것처럼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 몰래 손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며 입도 맞추고, 몰래 엉덩이도 주물러대었다. 언제나 비슷한 기분, 사랑인지 성욕인지 구분할 수 없는 분위기 정서. 하지만 A와 클럽을 간 건, 좋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어쩌면 이기적이고 난폭한 생각들. A의 아름다움을 클럽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견주어본다거나, 그 견주어본 사람들 중 최고의 누군가들의 인스타를 딴다던가. A몰래 가서 슬쩍 만져보다거나 하는 것들. 생각은 실제로 행해졌고, 꼬리가 긴 만큼 A의 눈에도 띄었다. 그건 진퇴양난의 길이었다. A에게 좋아함을 표시하면서도, 잔뜩 밖으로 나가 놀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A를 만나지 않고 클럽에 올 것을 후회도 하기도 했다. A는 내 마음을 잘 꿰뚫어 보았다. 내 눈에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없음을. A와 연인처럼 보냈던 시간들은 단지, 많이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 결과였음을 내 눈에서 보았던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 A를 보지 못했다. 우리 사이엔, 적당히 잘 찍어준 사진이 하나 남았다. 그 사진을 보정하고, 사진을 올리고, 올린 사진들을 보는 모든 과정에 아마 A가 생각날 거고 그리 깊지 않은 관계를 맺은 우리는 그 반점이 남긴 애매함을 해석하는 데 골머리를 안을 것이다.
내가 문란하다고,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그 사람은 아마 오늘도 3교대를 할 거고, 회사에서 고생을 할 거고, 가끔은 정말 가끔은 날 생각할 거다. 그리고 그 사람은 별것도 아닌 내 글에 발자취를 남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