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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Jul 15. 2024

세상사의 큰, 작은 비극들

너는 작은 비극만을 겪기를 바라며

며칠 전부터 내 머릿속에는 ’ 비극’이라는 단어가  맴돌고 있어. 요샌 난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어른인, 국어 강사님을 도와 일을 하고 있어.  일은 상당히 힘들지만, 열정 넘치는 선생님의 수업을 훔쳐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일의 희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 너는 혹시 ‘탄궁가’라는 고전시가를 들어봤니.  늙음에 대해서 탄식하는 시인데 ( 고전시가에는 흔한 주제야) 선생님이 이 글을 설명하시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내 머리를 떠나고 있지 못해. “ 젊을 때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비극이 노화되는 얼굴과 몸으로부터 오는 좌절감 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비극은 그런 것들이다.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한다는 것’ ‘써야 할 것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간다. 그게 정말 비극이다. ” 선생님은 그렇게 이야기하셨어.


처음 선생님을 봤을 때보다, 4년이 흘렀어. 그 사이에 그녀는 몇십 킬로가 가벼워졌더라. 가벼워지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 어떤 감량은 날 마음 아프게 하더라. 며칠 전 다쳐 팔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선생님은 팔을 들어 쓰시는 대신, 지휘봉을 가져와 수업을 하기 시작했어. 그건 내 맘을 더 아프게 하더라.


아직 어린 너에게도, 아직 ‘노화’ 라든가 ‘죽음’ 이라던가 그런 건 너무 이른 이야기라고 생각해.

가볍고, 아이 같은 비극이 우리에겐 어울려. 그건 가령, 오늘 내가 길을 걸어가며 생각한 이야기 같은 것들인데. 오랜만에 군대에 잠깐 복귀하는 오늘, 길을 걸어가는데 날이 너무 더웠어. 그 와중에 군복은 땀이든, 바람이든 새어나갈 새 없이 철벽방어하더라. 더워 미치겠는데 쉽게 내팽개칠 수 없는 군복을 생각하며, 난 ‘군인에게 가장 큰 비극은 군복을 입는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반응이 뜨겁더라.


멀지 않은 과거에 일어난 가벼운 비극도 있었어. 아빠에게서 잠시 뺏은 갤럭시 버즈를 갖고 서울에 올라갔었어.  칠칠맞음으로는 저리 가라 하는 내게 버즈를 잃어버릴 기회는 언제나 있었지만, 내  의식은 항상 그걸 경계하는 듯했어. 경계가 느슨해지는 건 술을 마시거나, 잠이 오거나 하는 있을 때야. 알바에 지쳐 지하철을 타는데 잠깐 나도 모르게 잠이 들다가, 귀로 무심코 들어오는 목적지에 헐레벌떡 지하철을 나서는데 , 누군가 나를 애타게 부르더라. 경계하며 뒤를 돌아보는데 한 남자가 내게 버즈를 떡하니 내밀었어. ‘이거 떨어트리셨어요’ 하고 환하게 웃는데, 너무 감사하더라. 그러고는 제 갈길을 가는데 이상했어. 그는 다시, 그 자리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분은 겨우 나한테 떨어진 버즈를 주워주려고, 지하철에서 내렸던 거였어.  가벼운 비극은 이렇게

아주 쉽게 누군가의 친절에 의해서 해소되고 , 극복되기도 해.


비극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아직 실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너를 생각했어. 네가 겪은 실연이 작은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작은 비극들만을 거쳐 거쳐 가다 보면 세상일이 매우 쉬워질지도 몰라. 빨리 너의 터져버린 눈물이 그런 깨달음으로 그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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