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연극의 이름은 공개망신
안녕, 나는 오늘도 수영을 가지 못했어. 수영을 왜 하기로 했냐고? 수영은 멋있는 운동인 것 같았거든. 걷기와 달리기같이 별다른 운동기구가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그 방식이 단순하지 않아. 모두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니라는 이야기지. 수영이라는 운동을 생각하면, 멋있는 운동선수들이 연상되고는 하니까. 수영하기로 결심했는데, 군대 한 동기가 자기는 수영을 다니면서 살을 빼려 했었는데 수영을 다니고 와서 느끼는 허기짐을 이기지 못하고 몇 킬로는 더 살이 쪄버렸다고 털어놓더라고. 그 점을 항상 경계하면서 집에 돌아와 쥐꼬리만큼 밥을 먹는 중이야. 그런 방식으로 내 일상은 조금 하기 싫은 일을 조금 더하고, 하고 싶은 일을 좀 덜 하면서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중이야.
행복하고 평온한 일상을 즐기고 있다 보면, 가끔 너 생각이 나더라.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너를 ‘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고민했었어. 그런데, 너도 잘 알겠지만 나는 너의 나이에 걸맞은 신분으로 별로 널 불러본 적은 없었어.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때는 보통 너의 앞이 아니라 뒤였을 거고. 그리 듣기 좋은 말들이 오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야. 그래서 그냥 ‘너’라고 하기로 했어. 그게 더 자연스러워 보여. 너를 처음 만났던 건 내가 첫 자대 배치를 받고 신병으로 들어와 벌벌 떨던 그 어떤 평범한 사무실 안이었어. 냉랭함이 감돌던 그곳에서 난 조금이라도 이쁨을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거나 쓰레기를 비우고는 했지. 네가 나한테 처음 말을 걸었던 것도 그때였어. 넌 나한테 ‘ 괜히 걸리적거리지 말고, 그냥 소파에 앉아 있으라고’ 했지. 사람의 마음을 냉랭하게 만드는 재주가 너에겐 항상 있었어. 처음 온 신병이, 이쁨을 좀 받아보겠다고 애쓰는 마음을 그렇게 간단하게 짓밟아버리고는 너는 흥얼거리며 너의 자리에 앉아서 발을 뻗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
그 이후로도, 너의 신병 기죽이기 프로젝트는 끝도 없이 이어졌어. 처음에는, 내가 잘 못한 일이 많아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너의 말의 의중을 놓고 곰곰이 고민하다 보면, 내게 신병 당시에 조금 남아있는 당당함, 자존감 같은 인간적인 것들을 파내려고 했던 것 같다. 시발을 추임새로 넣던 너에게, 그런 막말을 일삼고 내 마지막 남은 자존감까지 퍼내려 했던 너는 아이러니하게도 딸 둘이 있었어. 넌 너의 딸 둘을 정말로 사랑하는 듯하였지. 우린 너에게 욕을 들을 때마다, 너의 책상에 붙어있던 너의 딸들을 생각했어. 나중에 너의 그 딸 둘이 만약 지금의 우리 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넌 어떤 반응일까 하고. 그게 궁금했어. 나와 너의 딸들은 약 10살 차이 정도가 났는데 넌 그 점을 자주 까먹는 듯했어. 나도 너의 딸과 다를 바 없이 나 밖에 모르는 부모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야. 하필이면 나와 함께 고통을 겪고 있던 내 선임은 한국 교원대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그 당시에 유행하던 ‘더 글로리’를 자주 함께 보며 너의 딸들이 내 선임의 학생이 되어보는 상상을 하며 웃는 날이 많았어.
누군가에게 심하게 분노하면, 그 사람을 자주 생각하게 돼.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분노의 감정이 사랑의 감정을 닮았다고 했던가. 난 그 시절을 정말 악착같이 살아냈다. 주말에도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아침 러닝을 뛰고 와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헬스를 하는 그런 삶들을 보내고 있었어. 다시, 그 시절의 내 삶의 원동력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 정체는 ‘너보다는 내가 나은 사람임’을 스스로에게 끝없이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끝없이 행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 생각을 하며 걷고, 달리고, 읽고, 쓰면서 난 그 시기를 겪는 내내 언젠가는 너와 크게 맞서야 할 때가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 어떤 날은 내게 빨리 찾아왔어. 이제 막 아래 후임을 받았던 즉 내가 일병 2호봉 때의 일이야. 어느 날은 이제 막 들어왔던 신병이 너와 당직을 서는데, 네가 근무 중 해야 할 일을 모두 맡겨놓고는, (그 친구는 처음 하는 일이라)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너에게 몇 시간 동안 폭언을 퍼부었다는 거야. 들어보니 사안이 심각하더라. ‘시발’은 기본이고 입에도 담지 못할 말들을 막 내뱉었는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온 짜증이 그 폭언들의 이유가 되었어. 그 사안들에 대해서 심각하게 방 선임들과 토론하는데, 아무도 정말 아무도 우리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물론 어떤 사람들은, 네가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며 나와 같이 널 욕해줬지만 그것도 일부이고 대부분은 장난스럽게,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나를 오히려 나무랐지.
인생의 어떤 심각한 일도, 그게 내 일이 아니라면 그 심각성은 절반? 아니 1/10로 다가와. 여기서 내가 군대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이 나오지. 나 말고는, 내게 처한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없다는 사실. 많은 사람들은 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거고, 어떤 이는 대충 조언하려 들겠지. 부모와 같은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은 물론 해결해 보려 애쓰겠지만, 그 문제의 깊은 본질, 그러므로 그 해결책을 아는 건 나밖에 없다는 사실. 그걸 깨달은 거야. 그곳에 이르니, 생각이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난 그 길로 컴퓨터실로 내려가 하나의 연극을 준비하기 시작했어. 그 연극의 이름은 ‘공개망신’으로 정했어. 연극을 봐줄 대중은 네가 점잖은 척을 하며 좋은 이미지를 보이려 했던 너의 상사들(이 문제의 해결책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지)로, 그리고 같이 고통을 받고 있던 너의 병사들로 정했어. 글에 소질 있는 내가 대본을 적어 내려 갔고, 그 대본에는 네가 얼버무릴 모든 예상 대사들이 적혀있었어. 그렇게 치밀하고 꼼꼼히 준비한 연극을 너에게 보여줄 생각에 내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두근대고 있었지.
그렇게 일어난 아침에, 난 사무실에 들러 대중들이 모두 참석한 걸 확인하고 네게 뚜벅뚜벅 걸어갔어. 처음 꺼낸 말은 어제 네가 ‘시발’ 거리며 던져 댄 아직 끝내지 않은 업무 보고였지. 그건 미끼에 불과하고, 내가 정말 꺼내고 싶은 말은 그다음 말이었어. “‘y’님 어제 ‘y’님께서 신병에게 ‘시발’ ‘개새끼’와 같은 폭언을 하신 사안에 대해 그 이유를 여쭙고 싶은데..” 난 네가 한 말 그대로를 말해주고 싶었어. 너가 한 말의 무게를 ,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신병의 아픔을 네가 그대로 느끼길 바라면서.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네게 너무 효과적이었나 봐, 너의 항상 여유롭던 표정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재빠르게 넌 날 사무실 밖으로 불러내었어. 그리고 네가 나에게 할 말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 변명, 협박 그 외 등등..
연극이 성황리에 끝나고, 재공연 되지 못할 그 연극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어. 사람들의 뒷말들의 압박을 느끼지 못한 너는 내게 거짓사과를 했고,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어. 그 이후에 나에게 악의를 가졌던 너는 치사하게 가끔 일로 날 괴롭히기도 했지만, 너를 주제로 한 연극을 하며 너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버린 탓일까? 난 이제 네가 아무렇지 않았어.
그때로부터, 거의 2년이 지나가려 하고 있어. 넌 그때 이후로 꽤나 스위트한 사람이 되어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고. 그토록 불같았던 나는 시간이 흘러 분노도 잃고, 의욕도 잃어 게으른 사람이 되어있어. 난 가끔 네가 그리워.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이상했던 네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널 파괴해 버리겠다고 힘썼던 의욕 있던 내가 그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너와 함께했던 그 추억들 모두 바리고, 떠나며 이 편지를 남기게 되었어. 네 딸들, 잘 자라길 기도할게 너라는 사람이 ‘아빠’라 겪게 될지도 모르는 나쁜 일들 그 아이들이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