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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Jul 12. 2024

사탕, 미남, 질투

그러다 네가 생각났어.

안녕, 벌써 수요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난 오늘도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도서관에 앉아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매일 2000짜리 싸구려 커피를 손에 들고 공부하는데, 역시 오늘도 커피를 사려 메뉴를 한창 고르고 있었어. 거기에는 나 이외에도 두 명의 여학생들이 커피를 사고 기다리고 있더라. ‘좋을 때다~’라고 애늙은이 같은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애가 아르바이트생에게 사탕을 한 움큼 건넸어. (물론 걔는 남자였어) 참나, 어이가 없어하면서 아르바이트생 얼굴을 봤는데 이해가 되는 얼굴이더라. 깔끔히 눌린 옆머리는 안 그래도 작은 머리를 더 작게 보이게 하고, 살짝 그을려 있는 피부가 그를 좀 더 섹시하게 보이게 했어. 키는 적당하고 마른 체형이었지만, 아이들이 충분히 좋아할 만한 그런 카페 오빠더라. ‘이건 선물이에요’라고 수줍게 웃는 아이를 보면서 왠지 심술이 나서,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하지’라고 중얼거렸다. 뻔한 질투의 감정이지. 나도 알아 잘생긴 얘들만 보면, 화나는 건 나뿐만 아니라 내 옆에 애매한 너네도 분명 느끼는 감정이라는 거. 잘생기고 이쁜 유명인들이, 온라인에서 이름도 모를 누군가에게 찢어발겨지는 건 다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오늘 이런 어이없고 불쾌한 일을 보내고 나서는, j야 네가 생각나더라. 넌 자존감이 참 낮은 아이였어.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그랬고, 자신이 너무 애매하게 생긴 걸 깨달았다는 점에서도 그랬어. 그런 부족한 너는, 나를 질투했었어. 정말 이해 안 된다. 왜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도 너랑 똑같은 부류의 사람을 질투했을까 하는 질문이 들면서 말이야. 그건 우리가 웃길 정도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야. 20살 때니까, 뭘 알았겠어. 그저 바보같이 그리고 아이같이 살아가던 시절이지. 아무것도 없는 나는 그 시절 인스타라는 좋은 창고를 하나 발견하게 돼. 머리도, 마음도, 사랑도 모두 텅텅 비어버렸던 나는 미친 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고 (그 부족한 돈으로 ) , 행복과 사랑이 넘쳐흐르는 사람인 것처럼,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날 보이게 했었어. 그런 재주조차 없던 너는 방 안에 갇혀, 거짓으로 꾸며진 내 인스타를 보고 날 부러워했었지. 넌 언제나 내 인스타 스토리에 답장들을 남겼어. ‘또 놀고 있냐’고, ‘근데 왜 자기랑은 안 놀아주냐’고, 어디서나 볼법한 지질함이 넘치는 이야기들. 같은 사람들은 서로를 귀신같이 알아보는 걸 알고 있니? 난 너도 나랑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모든 게 텅 비어버린 사람. 아무것도 잘난 게 없는 사람. 하지만 스스로 달라질 생각은 안 하고 나를 제외한 모든 걸 끌어내리려는 사람. 그래서 난 널 멀리하고 싶었어. 매일 같이 울려대는 스토리 답장에 답을 하지 않은 건 그런 다짐을 한 이후였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불쾌한 그 캔디 사건에 얼굴을 붉히고 질투하는 그런 마음을 나에게(심지어 그 당시의 나에게) 느꼈다고 생각하면 참 신기해. ‘너도 사람 보는 눈이 참 없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너를 다시 재회하게 되었던 건 1년 반만의 일이야. 학력에 항상 불만을 가졌던 너는 어느 날 재수하겠다는 나의 진심 어린 다짐을 듣고서 혹해 반수를 시작했었지. 난 운이 좋게도 옷을 갈아입는 걸 성공했지만, 너는 두 번의 입시 실패라는 짐을 가지고 나를 덜컥 찾아왔어. 그때 나는 보일러조차 안 되는 개발 직전의 아파트를 거처 삼아 잠깐 살고 있었을 때였어.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게 싫어 박차고 나가 스스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다짐했을 시기였기에 해야 할 아르바이트와 과외가 넘쳐났었고 돈이 부족해 부실하게 먹던 시절이기도 했어. 또, 추운 겨울임에도 보일러가 안 되어서 추위에 치를 떨던 시기이기도 했지. 그 시절에 나는 매일매일 악몽을 꾸었고 그 경험으로 홀로 사는 청년이 이런 방식으로 고독사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사실을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어. 그런데 너는 그때 갑자기 내 자취하는 방에 잠시 머무르겠다고 고집을 피웠어. 그럴 여유조차 없었던 나지만, 대꾸할 힘도 없어서 그러라고 했지. 그렇게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어. 안 그래도 불편했던 집에 불편한 사람이 와서 살기 시작한 거야. 친구도 별 약속도 없던 너는 내 좁디좁은 공간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고 매일매일 유튜브를 쳐다보며 놀았지. 먹고살기 바빴던 나는 집에 오면 좀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누워 있으면 너에 동화되어 무기력함을 느낄 것 같아서 일부로 시간을 보내고 늦게 들어가고, 조금 일찍 출근했었지. 너를 만나면 뭔지 모를 불쾌한 느낌이 들었어. 그 느낌을 설명하기는 아주 어려워. 사람들은 이런 날 보며 어쩌면, 친구를 조건에 따라 사귀는 그런 파렴치한 놈이라고 느끼겠지만. 막상 너랑 동거하라고 하면 기꺼이 할 사람은 없을 거야. 너는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많은 실패를 겪어왔고, 스스로 일어설 생각조차 없었고, 다른 이들을 한없이 원망하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널 자위하고 있었거든.

  

그러다가, 일은 벌어졌어. 나는 그 당시, 끔찍하게 빠르게 떨어지는 돈과 자존감에 매일매일 불면증을 겪고 있다고 했었잖아. 네가 내 집에서 살게 되면서 그 증세는 더 심해졌고, 열등감이 심해져 나는 거울 보는 것 자체를 되게 힘들어했어. 언제나 혼자 샤워하거나 볼일을 볼 때 난 참을 수 없이 부끄러운 나를 보는 고통을, 혼잣말로 무마하고자 했어. 그 혼잣말이 건전했겠니? 시발, 미친년들. 욕설이 난무했겠지. 난 욕실이 방음이 잘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어떤 날에는 네가 밖에서 평온히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을 때 큰 소리로 ‘시발’이라고 외쳤어. 너는 크게 당황했겠지만, 날 부르지는 않았어. 그러고는 내가 수건을 쓰고 태연하게 나왔을 때 날 보며 ‘무슨 일 있었냐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봤지. 그때 내가 겪고 있던 것은 분명 정신병 증세였을 거야. 하지만 그걸 너한테 설명하기에는 네가 더 딱해 보여서 입을 닫았지.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너는 집을 나섰고, 그때부터 너를 볼 수 없었어. 그러고는 3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네. 결국에 난 널 괴롭히던 입시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소식을 듣지 못했어. 하지만, 학력이라는 콤플렉스가 해결되고 나서는 외모 콤플렉스가 널 괴롭힐 거다. 그게 해결되고 나서는 경제적인 문제가 널 스스로 비교하게 할지도 몰라. 하지만 내 소식을 들을 길이 없을 것이란 걸 알아. 그래서 나와 비교를 통해 너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위하진 못하겠지만 넌 분명 다른 사람을 찾아, 허수아비처럼 세워놓고 비교하며 널 더 구렁텅이로 처박아 버릴지도 모르겠다.

  

20살의 모든 것이 부족해서, 모든 것이 비어있었던 우리는 25살이 되면서 많은 것들을 채웠을까? 그래도 j야 적어도 나는 끔찍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는 중이야. 내 얼굴이 꽤 괜찮다는 걸 알게 돼서가 아니라. 내가 어느 정도로 못 낫는지 알게 되면서부터. 그러니 너도 빨리 스스로가 얼마만큼 못났는지, 어느 정도 부족한 사람인지 알게 되면 좋겠다. 곧 만나자. 아까 말했었지, 비슷한 사람끼리는 서로를 알아본다고. 우린 여전히 텅 비어버린 사람들이기에 이제 다른 모습을 가졌어도,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아직은 아니고, 내가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 그때 찾아와. 서로의 불쾌함을 잔뜩 느끼자. 그때가 되면 아늑한 곳에서, 내 불쾌한 비밀들을 더 많이 말해줄게. 그때까지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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