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이 지났다.
6개월에 한 번 베개피에 잔뜩 눈물을 흘려 찝찝한 하루를 맞이하는 날이 있다.
뼈 저린 후회와 아픔을 느끼고 그걸 기록하는 게 마치 나의 업보가 된 듯 맞이하는 아침이 있다.
그 아침은 특히 분주한 날이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 머리를 만지는 일상이었다.
이미 타버린 간장계란밥에 괜히 성을 내며 다리 아픈 그분을 도와주지 않은 형을 탓하였다.
10시까지는 꼭 나가겠다며 다짐하며 저기 저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어 저 있는
먼지가 묻어 고대 유물이 된 휠체어를 꺼내는 것이었다.
오늘은 무등산에 가고 싶은 날이었다.
무등산에 가기 전 나는 카페를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이 문득 드는 것이다. 아이스를 드려야 할지 따뜻하게 드려야 할지
생각해 보니, 어차피 못 듣는구나? 손짓 발짓 해가며 아이스를 설명해야 하는 날 생각했다.
그래도 난 왠지 들뜨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신바람이 나는 것이었다.
시원한 그 봄날의 날씨를, 그리고 그 봄날의 날씨를 못 이겨 푸르스름하게 피어나려는 이파리들의 생명력을
그분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아직 촉감 영화가 나오지 않은 배경이라, 그가 매일 갇힌 방 안에서 보는 티브이는 그 역할을 못해줄 것
이라는 바보 같은 상상을 하기도 하였다.
그분은 새하얗게 바래 버린 머리를 만지며 채비를 마쳤다.
그분을 불렀다.
가슴이 갑자기 너무 아파왔다.
갑자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잠시 모시고 나갔다 오겠다는 말에 엄마의 그리고 아빠의 허락까지도 맡았는데도
휠체어를 싣고 갈 버스까지도 알아봤는데도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라도 쳐져 있는 것 같았다.
난 내 방에 들어가 울 수밖에 없었다. 울지 않으면 가슴이 아파왔다. 가슴이 아프지 않으면 울음이 그칠 줄을 몰랐다.
난 그날 무등산에 가고 싶었다. 가지 못해 힘없이 억울했던 것이다.
그래, 힘없이 일어난 진짜의 "아침"에 나는 다음 아침에는 해외여행을 가볼까 생각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
을뿐이었다. 그리고 내 업보는, 가끔마다 방문하는 그분을 다시 한번 더 보내며 울음에 섞인 바보 같은 글들을 기록하는 것이였겠구나 깨달을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