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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Aug 14. 2023

공개수업이 있던 날

나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중학교 2학년 날씨가 여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던 어떤 날. 그날은 담임선생님의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공개수업을 참 좋아했다. 항상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던 나였기에,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함이었기도 했지만. 사실은 다른 엄마들보다 훨씬 예쁜 우리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때 얼굴이 엉망이던 나는 그런 식으로라도 내 자존감을 채우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날 나는 최선을 다해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집중했고, 선생님의 질문이 끝날 때쯤 나는 저요!라는 큰 소리를 내며 손을 들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그 교실의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고자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훌륭한 학생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내 예쁜 엄마가 날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내 담임선생님은 꽤 준수한 외모를 지닌, 이제 갓난이를 가진 아버지였다. 그런 이유일지는 몰라도,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날 하나의 글쓰기 과제를 내주었다. 그 글쓰기 주제는 나는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는 그 글쓰기의 답을 이렇게 적었었다. ‘아이가 어떤 것이 되고 싶던 그 친구가 선택한 길을 응원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나는 그 길을 응원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렇게 말이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엄마들은 선생님과 작은 면담을 진행했다고 했다. 그 면담에서 선생님은 우리들이 써 내려갔던 그 글들을 각각 자신들의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그 글들을 바꿔서 엄마들이 보게 하였다.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엄마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내 특유의 감성 있는 글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이제야 와서 드는 생각인데, 어린아이들이 어떤 아빠 그리고 엄마가 되고 싶냐고 질문을 들으면 그들은 분명 자신의 아버지가 그리고 어머니가 날 어떻게 키워줬으면 좋았을까, 그리고 좋을까를 적지 않을까? 담임선생님은 분명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들의 학생들이 자신의 부모들에게 원하는 욕구를 적게 했을 거고, 그리고 그 욕구를 부모님이 알아차리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글쓰기는 단순 공개수업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를 연결하는 어떤 종류의 심리치료와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도를 파악하고는 나는 다시 내 대답에 얽힌 욕망을 이해하려고 했다. 나는 내가 어떤 길을 가던 응원해 주는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있기를 바랐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해주는 어른을 만나기를 바랐다. 그 시절 날 살아가게 했던 건 그 누군가들의 칭찬이었다. 공개수업에서 엄마가 다른 엄마들의 칭찬을 들으며 학교를 나오기를 바랐다. 또 언제나 바른 이미지로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를 바랐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가는 길은 ‘어떤 길’(anyway)이 아니라 ‘그 길(the way)’ 이였을 텐데 그걸 깨닫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왜 나는. 자유를 원했으면서도, 그 자유는 또 누군가의 칭찬에게 구속되기를 원했나.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지만 표지판이 명확하게 가리키는 길로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가 되고 싶던 부모는 자식이 어떤 길로 가든 응원해 주는 부모라고 했다. 그런데 나 또한 우리 엄마의 그리고 아빠의 아들인 결과, 아이가 무엇이든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기를 바라면서도 좀 더 아름답고 안정된 우아한 길을 가도록 하지 않을까라고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일까. 자유와 구속 그 중간값의 단어가 없는 것 같이 말이다.  ( 2018.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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