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건 둘째고, 온전하게라도 살다 죽어야지
술을 마시면서 건강하기까지를 바라는 것은 시험범위도 모르면서 시험잘보기를 바라는 우리집 청소년과 같은 심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마다 신체의 건강척도라든지 장기의 기능정도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내 아는 지인중에는 365일 술을 마시고도 간검사를 하면 거의 토끼간 수준의 기능을 자랑하는 이도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도 그런 토끼간 인간류의 한명이다. 7일 중 8회 이상의 음주를 시전할 때였음에도 건강검진 결과 상담에서 '간수치는 정상이고 술은 잘 안드시나봐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는 우리 의학기술을 한번 더 의심해보기도 한다.
어제 마신 술이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몸 밖으로 배출되는 느낌이 온다 싶음과 동시에 오늘의 술자리가 만들어지는 인생을 사는 내가 간이 좋다고 나머지 신체 기능도 다 좋을리는 없다.
1. 혓바닥이 건조하며 따갑다.
2. 피부건조증이 심해져 건선 등의 피부질환이 자주 생긴다.
이 두가지가 음주로 인해 발생한 나의 질병이다.
이정도의 질병정도만 가지고 그 음주라이프를 견뎌 내고 있다면 정말 나는 술에 특화된 신체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근거있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혓바닥의 건조증이 심해지면서 어느날부터인가 음식의 자극도가 달라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처음엔 혓바늘이 난듯마냥 요기죠기 혓바닥에 따꼼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온 혓바닥에 혓바늘이 난듯했다. 뭐 사포로 혓바닥을 몇 번 문질러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매운것도 못먹겠고, 뜨거운것도 못먹을정도로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지나고 나니, 장금이도 아니고 어느날부터인가 혓바닥의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거의 강철혓바닥을 가진 히어로가 된 기분이었다.
이것은 불치병인가. 헉. 말로만 듣던 설암인건가? 병원을 가봐야 하는 것인가? 아. 이러다 죽는건가. 별의별 걱정은 다 엄습했지만, 병원가는게 죽기보다 더 귀찮은(무서운 아님) 나는 우선 누워서 혓바닥과 술이라는 단어를 조합해서 검색질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정말 한동안 내 삶의 가장 근심은 혓바닥이었다. 물론, 내 친구 중 하나는 혓바닥의 감각이 없어지면 입맛이나 밥맛이 없어지면서 덜 먹으면서 살이 빠지는게 아니냐는 굉장히 합리적인 추론을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망할 나의 입맛은 혓바닥의 감각과는 다르게 늘 살아있을 뿐.
이렇게 장황하게 내 병을 이야기하며, 금주로부터 얻어진 변화를 굳이이야기하자면
금주 60일이 되면서 부터, 각종 건조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혓바닥에 스믈스믈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테이프를 뒤로 감은거마냥 혓바늘 증상이 나타나면서 닭발 섭취에 곤란함이 어느날 느껴지면서 장금이 봉침맞고 맛을 찾은마냥 행복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굉장히 건강한 혓바닥을 되찾은 느낌이다.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하지만, 금주의 가장 큰 이유는 멀쩡하게 기능하는 내 신체의 어느 부분이라도 굳이 일부러 훼손해가면서 오만상근심걱정까지 얹어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것이다.
우리가 오래살아야지 살아야지 하면서도 사실 오래사는것에 대한 근심걱정이 많지 않냐. 이유는 건강하지 않고 힘들게 살까봐서 그러는거 아닌가 싶다.
오래살지 말고 온전하게 잘 살다 죽기 위해서라도 금주를 한번 시도해보시는건 어떨까 싶다.
지금 가진 수많은 당신들의 질병이 허준이가 오지 않더라도 서서히 나아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지난 10회 브런치특별상을 수상했던 글이 드디어 책으로 출판이 되어 나왔다.
'사람이 사는 미술관'(그래도 봄, 박민경 지음) 스물스물 사회/정치분야에서 상승하고 있다. 어제는 70위였는데 오늘은 69위다.
여러분들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