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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Feb 09. 2023

[금주일기]35일차

나의 금주의 목적은?

금주를 시행하고 30일이 넘어가면서 몸무게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정확히 금주로 인한 것인지 동시에 실시한 간헐적 단식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냥 둘다 이유가 된다고 하자. 3키로그램 정도 감량이 되었다. 들어가지 않던 옷들이 스믈 스믈 내 몸뚱아리로 끼여들어가고 있었다.



  몸무게 감량을 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코로나 시국으로 중지 되었던 외국으로의 여행이 계획되어 있기도 했고, 무더운 나라였기에 수영복을 입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던지라 감량된 내 몸이 참 자랑스러웠다.

 

어찌되었든, 감량된 몸무게에 맞는 새 수영복과 함께 여행 가방을 꾸렸다. 목적지는 방콕이었다.


여행지가 맥주도시 방콕이라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사랑하는 라운지와 기내 와인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6시간의 비행동안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아니 위협이다.

 이 절대적인 위협에 맞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에게는 절대 고민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나에게는 비행기를 타기 전. 즉, 공항 라운지까지 이동하기 전까지 심각하게 고민을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다행히 아침 9시 비행기였으므로 라운지에서 새벽 술을 가질 수는 없는 상황이라 1단계는 넘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비행기를 탑승하면서 기내식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물며 이번 기내와인은 프랑스산 샴페인과 쇼비뇽블랑 화이트 와인인데 둘다 내가 좋아라하는 품종이지 않던가 하물며 샤또 붙는 브랜드다.


 식전 와인으로 찰랑거리며 팅커벨 별풍선 같은 눈부심을 가지고  배달되는 샴페인을 그냥 눈감고 보낼 수는 없다.

여기서 큰 결심이 필요하다.

내가 왜 금주를 하기로 했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돌아가야 했다.

사실 그 동안 많은 이들에게서 이와 동일한 종료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대부분의 대답은 '1. 건강을 위해서 , 2. 오래살려구(생각해보니 1,2,는 같은과), 3. 살을 좀 뺄려구, 4. 사람답게 살려고'

 등등이겠으나, 내 주 대답은 "그냥" 이었다.


정말 그냥 어느날 갑자기 금주를 해볼까 마음 먹었고, 그 불쏘시개가 된 것은 은정언니의 금주 이행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금주를 한달 가까이 이어오니 뭐 몸무게도 조금 감량되고 잠자리도 편해지고 등등 긍정적인것들이 몇가지 발생하고,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술을 참느라 고통스러울 것 같다면 금주의 적절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보였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금주는 별로인것 같았다.


 작정을 하고 금주를 시작한 것이 아니니, 어느정도 여지를 두자 결심을 먹기로 했다.

 이브의 사과와도 같은 그 샴페인을 한모금 상큼하게 음미했다. 그래 고백한다 나는 드디어 한달여만에 술을 입에 다시 댔다.

문제는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술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 고급진 샴페인이 내 입에서 잠시 맴돌며, 어마어마한 카오스를 발생시킬 것 같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내 혀에서 그냥 식도로 잠시 넘어가 위장을 잠깐 자극한게 끝.


정말 말그대로 식전,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한 역할만 충실히 수행해낼 뿐이었다.

 



 이전까지 내 음주의 행태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술이 꼭 필요했고, 술을 먹으려면 맛있는 안주가 준비되었어야만 했다.

 안주를 배달시켜 와인을 먹다가 와인이 떨어지면 와인을 한병 더땄고, 안주가 부족하면 냉동실을 뒤져 지난 제사음식을 꺼내서 에어프라이기에 돌려서 다시 남은 와인과 함께 먹는 식이었다.


음식을 더 맛있게 많이 먹기 위한 술이었고, 그 술과 음식의 끝은 불어나는 몸무게와 다음날의 속쓰림과 두통이었다. 술을 먹는 그 순간과 술에 취한 그 순간은 너무나 행복했지만, 그 뒤에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망각했, 아니 망각하고자 애를 썼던 것 같다.


 삶이라는 것이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금주를 추천한다. 당연히.

그러나,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금주는 반대한다. 내 삶의 행복의 마중물이 되는 식전주 같은 술이라면 언제든지 허용하겠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금주에 임하면 어떨까?

 수많은 금주노력요망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새해가 되고, 단지 영어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토익을 990점 꼭 달성하겠어 라는 결심이 선게 아니라, 그냥 영어를 좀 해볼까 하여 토익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다니다 보니 토익점수가 올랐을 뿐이다.


 내 금주가 그런 것이었다. 뭐가 목적이었는지가 중요하다. 악착같이 특정 목적에 매달리면 지치고 힘들어질게 뻔하다. 그냥 내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뭘 하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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