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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an 17. 2023

[금주일기] 11일차

술이 입이 있었다면 말이다.



술을 먹고 주로 떡이 되거나 개가 된다고 표현한다. 떡과 개도 덩달아 억울할 것 같긴 하다만. 


내 인생에서도 술 때. 문. 에. 개가 된 적은 없지만, 떡이 된 적은 많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우정분식(이름 참.... 저 집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두 번 다시 안 본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에서 쪽닭을 안주로 해서 소주를 들이부었다. 신입생인지는 이미 한참 지났고, 성인의 날이었다. 내가 성인이 된 것도 아니고 한학번 위 선배들 성인식에 왜 따라붙었는지는 가물하지만 우리 나이 스무 살만 넘으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었으니 뭐가 상관이었겠냐. 


빈 속에 바삭 튀겨낸 통닭 한 두 조각에 소주를 한 병씩 곁들여냈다. 역발산의 기세를 가진 스무 살짜리들이 세상 철 없이 21도짜리 참소주를 짝을 가져다 놓고 마셔댔다. 금복주의 플라스틱 소주짝이 빈병으로 거의 다 차 들어갈 때쯤 잔디밭으로 2차를 향했다. 


 횡당보도를 건너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앞서가던 친구 하나가 선창을 한다. 알 수 없는 포효였다. 신기한 것은 그 뒤를 따르던 동기들이 뜻도 뭣도 없는 그 포효를 선창삼아 똑같이 따라 외쳐대고 있었고 감염병에 걸린 마냥 나도 고래고래 따라 악을 써댔는데 매우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횡단보도를 나듯이 건너 안착한 잔디밭. 


전국 대학 중에 그렇게 넓디넓은 술판을 가진 학교는 우리 학교가 전무후무 할 것이다. 그 학교의 잔디는 막걸리와 오바이트를 거름 삼아 자라나고, 학교 측은 매년 봄에 그 잔디를 파내서 팔아먹기도 했다고 한다. 덕분에 봄에는 밭고랑처럼 울퉁불퉁한 잔디밭에서 불편하게 술판 깔고 먹어야 하는 기억이 난다. 

 

 아직 정신줄 놓지 않은 선배 몇몇이 사 온 새우깡과 페트 소주병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봄날의 잔디밭, 은은한 가로등 불빛 아래, 꽃잎이  떨어지듯 친구들이 하나 둘 쓰러져 간다.

 쓰러진 친구들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그 와중에 나는 법전을 베개로 받쳐 주기도 했다. 선배 하나가 타박을 한다. 애 목 아프다고, 법전을 반으로 펴서 베개로 주라고. 시키는 대로 했다. 

 

 얌전히 누워있던 한 친구가 갑자기 좀비처럼 눈을 뒤집고 양팔을 흔들어대며 벌떡 섰다. 그리고 앞뒤로 한번씩 제치더니 땅에 머리를 처박고 막힌 수도꼭지가 뚫린 마냥 폭발해 내기 시작했다. 안주 먹은 건 별로 없었던지라 건더기가 많이 없다는 게 와중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동기는 동기인가 보다. 한 녀석이 뿜어 내자 그 뒤로 둘이 더 연달아 비슷한 광경을 연출해 내고, 둘은 짐짝처럼 나무아래로 처박혔고, 한 녀석은 부활하여 다시 술자리로 합류했다.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막차에 필사적으로 올랐다. 나 스스로가 그렇게 대견하고 기특할 수 없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마지막 술자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이었다. 그 지옥을 빠져나와 막차까지 올라탔으니 하며 안심을 하는 순간 버스에 배겨있던 기름때의 오묘한 향과 좀 전 오바이트 하던 녀석의 잔여물이 묻은 내 옷냄새, 그리고 기타 등등 여러 냄새의 혼합 위에 버스 기사 아저씨의 현란한 코너링이 더해지자 내 위장 속 내재된 술들이 위로 역류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들을 잠재우려 했지만, 소용이 없는 일. 옆에 같이 탄 선배가 이 위급한 상황에 갑자기 창문을 열었제꼈다. 

그리고는 내 간절한 눈빛이 그의 시선에 꽂힐 때, 그는 내 머리채를 창 밖으로 내 동댕이치듯 밀어냈고, 그 뒤는 말하지 않겠다. 위장은 한결 평온해졌지만, 창밖으로 뿜어져 나간 토사물과 함께 넋도 흩어졌던지라, 내려야 할 곳을 이미 지나 종점에서 기사아저씨의 쌍욕과 함께 잠시 나간 혼을 붙들고 겨우 내렸다. 


 어떻게 집에까지 갔는지 그때부터 기억에서 지워졌다. 

다만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욕실 등이 보였을 뿐이다. 흠뻑 젖은 채. 


내 토사물에 머리를 감고, 남의 토사물에 옷을 빨아 입고 좀비가 돼서 들어온 딸년을 보고 세상 깔끔한 엄마는 기절을 했고, 우선 저 더러운 좀비가 집의 최소한의 영역에 머물기를 바라며, 현관문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쳐 넣고 샤워기로 물을 뿌려댔다고 한다. 


 샤워기 물을 성수세례마냥 받은 나는 그 자리에 대자로 뻗어서 잘 주무셨다고 한다. 

하.... 

 그랬다고 한다. 그 뒤로 내 주사는 정말 깔끔하게 정리되어졌다. 

술 먹으면 대자로 뻗어 자는 것. 문제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일 뿐. 




수십 년이 지나도 엄마는 그 이야기다. 주제어는 '더럽다'이고.

내가 그랬던 건 술 때문이었다. 엄마도 술 때문이라고 한다. 


듣다 보니 술이 좀 억울할 것 같았다.  

술이 입이 없는 게 천만다행일 듯싶다. 

술 먹는 이들은 늘 술 때문이라고 술 탓을 하니까 말이다. 

술 먹고 울고 불고 때리고 해 놓고도 다음날 술 때문 이래고, 술 먹고 숙취로 출근을 못해놓고도 술 때문이라고 한다. 하물며 사람을 죽이거나 폭행해 놓고도 술 때문이라고 술탓을 하고 더해 감형까지 받아내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기도 하다. 


 술은 단 한 번도 먹기 싫다는 사람 입속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간 적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 금주를 시행하며, 내가 안 먹으면 그만인 술이다. 저렇게 떡이나 개가 되어서 평생 남의 입에 올라가서 작두를 탈 이야깃거리가 되지도 않을 수 있으며, 생면부지의 버스기사아저씨의 쌍욕도 안 들어도 됐다. 

다음날, 숙취로 머리통과 뇌가 따로 노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술값에 더불어 다음날 해장값까지 쌍으로 치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금주 11일 차, 눈을 뜨고 맞이하는 아침이 불편하지 않음을 몸과 정신으로 느끼는 경험을 한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지만, 내게는 새로운 맑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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