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술자리는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술자리의 주인공은 나다.' '모든 이들의 즐거움을 책임질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을 장착하고 두꺼비의 뚜껑을 회오리와 함께 딴다.
외국에서라고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참석한 2주짜리 APF 세미나였다. 진지하기가 유림집안 8대 장손 같은 무슬림 국가가 절반이 넘는 15개 국가들의 인권위 직원들, 인권변호사들이 참석했다. 어느 모임이고 세미나든 간에 똑같다. 한 5일 빡세게 일하고 금요일 오후부터는 술 먹고 노는 자리가 꼭 마련된다.
K흥순이인 내가 유독 돋보일 수밖에 없는 자리다. 우선 숟가락으로 맥주병 따는 거부터 시전 해준다. 물리학적 위치에 기반하여 숟가락을 잡는 위치에 따라 '뿅'소리가 다르게 난다는 것을 인지시켜주기 시작하면 각 국가별 대표들이 내 테이블을 에어 싸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바람풍선 몸 꼬아 소주병 따기, 압력과 속도에 기반한 회오리 발생 병 따기, 소주와 맥주를 적절히 분배하여 혼합한 믹스리큐어(소맥)까지 시전 해주고 나면 거대하고 웅장한 공연을 본 것 마냥 박수갈채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무슬림친구들이 제일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눈알은 뒤로 젖혀지고 얼굴은 수박만 해진다. 니들 그래도 되냐고 진지하게 물어보니 껄껄대며 답한다.
- Yes Yes, I am Muslim but not here, Here is not Islamic country.
비밀인데, 그날 걔들 술 많이 마셨다.
다음날 아침 해장하러 내려간 호텔 조식 식당에서 친구들이 내 테이블에 와서 합석하기를 원하는 눈치를 힐끔힐끔 보이는 것이 느껴진다.
이놈의 인기의 그로벌라이제이션이란
초기 K-음주 문화를 공적영역에서 확산시킨 이가 나랄까? 하는 자부심도 살짝 올라온다. 아직도 내 안부를 물으며
- Sometimes I miss your happy water.
흠. 해피워터는 말이다. 처음처럼 이라는 우리나라 소주 라벨에 있던 유일한 영어였다. 외국친구들에게 우리나라 소주는 해피워터다. 말 그대로 행복하게 해주는 물~ 얼마나 멋진 영작명인지 감탄 중이다.
내가 술자리 흥이 과하다는 것을 너무 글로벌하게 강조한 것 같다.
오늘 금주 10일 차를 맞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이렇게 술자리 흥이 좋은 내가 술을 마시지 않고부터 술자리를 거르는 방법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확히 어제저녁, 몇몇 사람들과 저녁모임이 있었다. 사실 만나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모임은 아니었지만, 멤버 중 몇이 술을 즐겼기 때문에 술이 오고 가고 오가다 보면 흥이 올라서 흥순이로 변신해서 술자리를 마무리하며 외쳐댄다
- 날 잡아 날, 우리 다시 보는 거 언제 언제, 다음 달에 봐
어제는 달랐다. 술기운을 빌리지 않고 함께 저녁을 한 자리가 그렇게 재미없고 지겨울 수 없었다.
모든 모임이 술이 즐거움의 원인이 되지 않더라도 사람과 이야기, 음식이 원인이 되어 행복할 수 있지만, 이 자리만큼은 아니었다.
깨달았다. 나는 진정한 흥순이가 아니라, 술이 아니면 매우 무료한 사람으로도 역할이 가능하다는 것을.
금주를 선언하고 사람들과 함께한 저녁 자리 중 가장 즐겁지 않았고, 의미조차 없는 자리였다. 그렇다면 내키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매달, 혹은 정기적으로 의무감으로 모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