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와인, Monami Vin 1.
드디어 일주일째 금주를 시행하고 있다. 굉장히 스스로가 대견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다만 불가능해 보이던 것이 이렇게 쉽게 가능해지니 허무함이 밀려올 정도다.
서른 살이 넘어서 시작한 와인은 내 인생에 있어서 절대 없어지지 않을 존재라고 생각했다. 늙어 백발이 된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와인을 조르르 따라 조석으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와인을 먹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을 정도였어 라는 표현이 과하다면, 한 달에 25일 이상은 와인을 마셨다. 같이 마시기도 하고, 술자리가 없는 날은 집에서 혼자라도 마셨다. 집구석에 쌀은 떨어져도 와인이 떨어지는 법은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겨우 한글을 뗀 큰 아이가 내 생일 때 삐뚤빼뚤 편지를 써 준 게 있다.
- 엄마 생일축하해. 내가 이다음에 커서 돈 많이 벌면, 엄마가 좋아하는 와인 많이 많이 사줄게
라며, 파리바게트에 파는 와인과 케이크를 선물해 주었다.(물론 결제권자는 따로 있었겠지만)
너무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그 삐뚤빼뚤 손 편지를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더랬다.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 주종이 정말 중요하긴 하다 야. 와인 아니고 소주였으면 서글플뻔했어. ㅋㅋㅋㅋ
웃겼다. 엄마가 와인을 좋아하는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되고, 앞으로도 더 와인을 주력으로 마셔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을 두고 누가 '신의 물방울'이라고 했던가. 신의 물방울 까지는 모르겠고 마법의 물방울 같기는 하다. 같은 술이라도 와인 먹고 취하면 정말 세상모르고 잠들 수 있고, 간간히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아 괜히 뜨문뜨문 생각나서 이불킥할 일도 없게 한다. 하물며 다른 술은 네 병, 다섯 병까지 가야 한다면 내게 와인은 단 2병 미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다.
만성 수면장애 치료제로 와인만큼 더 적절한 게 없다는 핑계 삼아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와인을 마셔댔다.
어느 날은 내가 얼마나 와인을 마시는지 한번 계산이나 해볼까 하는 심산으로 와인병을 모아나 볼까 하다가 1주일 만에 11병을 채우고는 코르크 마개를 모으는 걸로 대처하기로 했다. 공간이 부족하다.
커다란 국대접에 코르크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 6개월이면 채워지겠지 했는데 웬걸 3개월 만에 코르크로 가득 찬 대접이 되어버렸다. 혼자 마시고 같이 마시는 와인이 한 주에 5~6병, 월 20병, 3개월이면 60병, 가격으로 평균 20,000원만 잡아도(가끔 과하게 비싼 와인을 드문 드문 구입할 때도 있으니) 한 달에 40만 원 정도가 와인값으로 지출이 되는 거였다.
(계산을 이어나가 보자, 1년이면 500만원(연말 파티가 있으니), 15년을 마셨으니 헉.... 집은 못사도 차는 새로 샀을 돈이다)
계산이 그렇게 성립했지만, 그것이 와인을 그만 마셔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와인은 여전히 내게 매력적이고, 마법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숙면을 유도해주는 고급 수면유도제이며, 아들에게 나름 자랑스러울 수 있는 주종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