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드디어 전설의 3일 차다.
3일 만에 새순을 따는 작심삼일차!!(알아들으셨음 죄송하고, 못 알아들으셔도 죄송한 농담)
사실, 금주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앞서 말했듯 은정언니가 권유한 한 권의 책이었다. 금주를 결심한 잘 나가는 영국여자가 쓴 책이었지만 e-book기준으로 12% 정도만 읽었을 뿐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작심하지도 않았고 독한 마음도 먹지 않고 시작한 금주다.
우선 시작한 첫날 1월 1일은 뜨는 첫해를 보겠다고 주왕산을 올랐다가 결국 다 뜬 해만 보고 내려왔다. 하산에는 하산주라고, 같이 간 사촌형님이 백숙과 파전에 곁들어 막걸리를 기가 막히게 거품 하나 없이 따주셨지만 마시고 싶은 마음이 없다. 결국 백숙국물을 막걸리 삼고, 파전을 안주 삼아 거하게 먹고 복귀해서 잘 잤다. 새해 첫날을 금주로 시작했다는 뿌듯함을 가슴에 담은 채 말이다.
둘째 날이었던 2일은 시무식이 있는 날이다. 새해 첫날부터 누가 술을 먹겠냐 하지만 인사발령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환송하고 환영하는 세리머니가 시작된다. 새로 나왔다고 이름을 붙인 소주가 테이블마다 돌아다녔다. 소주잔에 우선 소주는 받아두었다. 말하자면 나는 독하게 술을 끊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다면’ 마시기로 작정을 했으니까 괜찮다.
결론만 말하자면 삼겹살과 부대찌개가 나란히 지글거리는 테이블에서 젓가락을 휘날리면서도 단 한 번도 소주잔을 들지는 않았다. 뭐 내가 소주잔을 들든 말든 딱히 신경 쓰는 이도 없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술을 뺀다라고 누군가가 생각하면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주잔과 젓가락에 잡히는 삼겹살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내 술잔 따위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불손한 의도를 가졌거나, 나를 엿맥이려는 이, 혹은 나의 음주량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도장 깨기를 하러 온 승부사 정도밖에 없다는 확신이 드는 둘째 날이었다.
오늘, 삼일. 삼일차 주제에 이런 생각이 들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습관적으로 ‘마셔야만’ 했던 와인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와인은 내게 정서적 안식처이자, 다이어트의 변명거리였으며, 직장여성의 허세였던 것 같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와인을 마셔댔던 것 같다. 아니 그랬다. 언제부터인지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또 기구했던 내 인생의 한 부분에 대한 고백이 수반되어야 하므로 와인과 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끄집어내기로 할 테다.
삼일차. 그 거창한 작심삼일차 치고는 아무 일도 없고 약속도 없는 날이다. 기왕 남들 다 겪는 작심삼일인데 거창한 스케줄이라도 하나 있어서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작심삼일이 뭐라고 다들 쌍눈도끼를 뜨고 나의 저녁 스케줄을 들여다보았지만 오늘 저녁 한강이 보이는 야경을 두고 빨래를 빨고, 널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간다.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