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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Oct 25. 2023

모두에게 예술을 향유하게 하라

[도시] 타이페이, 타이완, 문화향유권

대만을 여행하는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입니다. 한국과 가까워서, 시차가 적어서, 음식이 맛있어서 등등 말이죠. 그 여러가지 이유 중 저의 여행목적의 가장 큰 이유는 대만국립고궁박물원이었습니다. 


워낙에 예술작품과 고문화재들을 좋아하기도 하는지라, 각 나라별로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은 저에게 행복한 놀이터와도 같습니다. 특히 타이페이에 있는 고궁박물원은 중국의 역사속 진귀한 이야기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한 문화재에 숨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깎았다는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만큼 정교한 취옥백채나 육형석들이 그러하고, 수많은 도자기들은 지금 유럽의 어느 브랜드에서 생산했다고 해도 한점 의심치 않을 만큼 세련되고 아름답습니다. 

 이름 모를 기술자들의 놀라운 작품들에 감탄하고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왕희지 같은 천재 서예가들의 글씨체들까지 감상하다 보면 정말 그 시대에 들어와 있는 듯, 역사의 한 흐름 속에 풍덩 빠져버리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사진, 박민경, 취옥백채


 이렇게 수많은 예술품들이 이 곳, 타이페이의 한 산기슭아래 자리 잡고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키게 된 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 수많은 문화재들과 보물들은 원래 중국(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의 자금성에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31년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점령하자 그 때부터 국민당정부는 긴급히 국보급 문화재들을 이곳 저곳으로 피난시키게 됩니다. 그 후,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던 국공내전 당시 장제스( 蔣介石, Chiang Kai-shek, 1887-1975)가 이끄는 국민당이 쑨원이 이끄는 공산당에 패하면서 베이징의 자금성 공궁박물관에 있던 유물과 전국 각지에서 끌어모은 유물 약 백만점 이상을  피난과 함께 배와 비행기에 실어 타이페이로 옮기게 됩니다. 


 중국의 격동적이었던 근현대사의 기록이지만, 사실 그 뒤에 있는 이야기가 더 흥미롭습니다. 장제스는 원래 문화의 힘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만 그의 뒤에서 수많은 문화재를 선별하고 피난시키고 타이페이로 옮겨 지금 60년을 보아도 다 보지 못할 정도라고 하는 국립고궁박물원의 소장고를 만든 것은 쑹메이링( 宋美齡, 1897-2003)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녀는 19세기말, 중국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던 유명한 쑹자수 가문에서 태어납니다.

 타이페이의 고궁박물원을 구석 구석 다니며, 수많은 작품들을 들여다보며 느낀점은 이 보물들과 유물들을 보며 그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해서 이곳으로 옮겼을 것이라 확신이 들었습니다. 

   장제스와 쑹메이링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서서 생각해보아도 그들이 개인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이 유물을 옮겼다 하더라도 우선은 유물의 가치를 알아야만 그 행동이 가능했지 않았을까요?


쑹메이링과 장제스가 아니었다면 이후 중국대륙에서 벌어졌던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 모든 보물들이 다 파괴되고 우리는 지금 이런 진귀한 것들을 감상할 수 있지 못했겠구나 생각을 하니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서글픔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쑹메이링이 중국을 뒤흔들만큼 부잣집에서 고급 교육을 받고 자라지 않았다면, 이 유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보존할 수 있었을까하고 말입니다. 

이 느낌은 얼마전 한국에서 기획된 이건희컬렉션 전시회를 경험하면서도 동일하게 다가왔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아니 아주 옜날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문화와 예술은 주로 시간이 넉넉하고 부유한 이들에게 허락된 사치품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요. 예술의 모델이 되는 대상도 주로 귀족이었지, 가난한 이들은 아니었습니다.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데 감상의 주체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지를 생각해봅니다. 유명 오페라작품이나 뮤지컬 작품을 한번 감상하려면 수십만원의 티켓 비용이 발생합니다. 

 사실 비용을 넘어서는 문제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이들에게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되기도 힘든 게 현실입니다. 

 영화 '프리티우먼'에서 줄리아로버츠가 오페라를 보고 감동해서 눈물흘리는 장면은 현실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오페라의 작품의 배경이 무엇인지, 그 당시에 흘러나오는 노래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감상이 가능할테니까요?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화가에게 관심을 져야하고 어떤 배경을 가지고 이 그림이 탄생했는지 들여다 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가난한 이들, 삶이 바쁜 이들에게 이를 허락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빵만으로만 살 수 있었다면, 수많은 예술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태초에 예술에는 신분이나 부의 경계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날, 신분이 나뉘고 가진자들이 생겨나면서 그들만의 향유가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이제는 아름다움을 보고 듣고 느끼는데에는 '인간'이라는 조건 말고는 모두 사라지는 세상이 좀 됐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작은미술관, 작음 음악회, 작은 책방이 우리 사는 이웃에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구요. 100여년전 쑹메이링의 탁월한 안목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고궁박물원이지만, 지금은 누구나에게 개방되고 누구나 유물을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게 된것처럼 말입니다.(청소년은 무료입장)


출처 : 위키미디어커먼스, 陳威廷

 세계인권선언 제27조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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