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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l 29. 2021

세상에맞을 짓이어딨니?

[영화] 가스등 (여성, 인권

가스등은 조금 낯선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오래전 영화니까요

1944년 잉그리드 버그만이 아주 아름다운 얼굴과 놀라운 심리 연기를 내보였던 영화입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여주인공 폴라(잉그리드 버그만 주)는 햇살처럼 밝기도 하고 여린 소녀였습니다. 어릴 적 같이 살던 유명 성악가인 이모가 강도에 의해 살해되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이모 집에서 성악 수업을 받던 중 만난 음악가 그레고리의 구애에 결혼을 하게 되고 런던의 물려받은 이모의 집에서 살게 됩니다. 



사실 그레고리는 당시 폴라의 이모의 값비싼 보석을 노리고 이모를 살해한 강도였는데, 이모가 런던의 집에 숨겨놓은 보석을 찾고,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폴라와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물건을 일부러 숨겨 놓고는 폴라에게 정신병이 있는 것처럼 몰아갑니다. 

매일 밤 다락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다른 방에서 불을 켜지 않는데도 폴라의 방의 가스등의 불빛이 약해지는 일들이 반복되자 폴라가 문제제기를 하지만, 그는 폴라를 정신병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결국 폴라 스스로도 자신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지합니다. 영화는 마지막 폴라를 흠모하던 한 형사에 의해 사실이 밝혀지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영화 이전에 연극으로 먼저 선보였던 '가스등'을 본 심리학자 '로빈 스턴'은 본인이 연구한 심리 효과를 완벽하게 표현한 연극이라며, 아예 본인의 연구물을 '가스등 효과'라고 명명하기까지 합니다. 



여성의 인권을 다루면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미투’와 ‘위드유’ 때문입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가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우리가 성폭력을 인지할 때 얼마나 강압적이었는지, 폭력이 동반되었는지를 기준합니다. 그래서 폭력이나 억압이 수반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성폭력에 대해서는 여성 스스로도 과연 그것이 성폭력이 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몇 년 전 안희정 도지사의 성폭력 사건의 경우, 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여성이 크게 저항하지도 않았고, 여러 차례 관계가 지속된 것으로 봐서 동의한 것 아니냐. 바보도 아니고 배울 만큼 배운 여자가 왜 소극적 저항도 하지 않고 하자는 대로 다 했느냐? 이렇게 문제제기할 거면 한 번 당했을 때 문제제기했어야지 무슨 의도로 이제껏 수차례 관계를 가지고 난 뒤에 문제제기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하는 반응들이 있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제시하는 영화가 바로 ‘가스등’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레고리는 단 한 번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강압적인 행동도 거의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화를 내기는 하지만 곧 부드럽게 폴라를 달래고 위로하기도 합니다. 즉 심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해버리는 상황이 됩니다.



이러한 가스등 효과는 주로 피해자가 우상으로 존경하는 사람이거나 연예인이 가해자가 되었을 때 피해자는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고 가해자의 문제성은 오히려 부인하게 되는 것이죠. 가해자를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피해가 사실인지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가정폭력 사건에서 이 심리 효과는 두드러집니다. 

학대 피해자인 아동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맞을 짓을 했어요."

세상에 맞을 짓이 어디 있나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끌어온 영화라 이해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희정 사건에서 피해자의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부분은 드러납니다.



“지사님이 다 잊어라, 항상 잊으라는 이야기를 저에게 했기 때문에 내가 잊어야 하는구나, 잊어야 되는구나,” 



이 말에서도 가스등 효과가 보여집니다.



제가 상담을 했던 고등학생도 유사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속적으로 교사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는데는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대학을 진학하고 성과 관련한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대답 역시 이랬습니다.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선생님이 정말 착하시거든요, 그리고 정말 저한테 미안해하셨고요. 그리고 선생님은 본인 아픈 과거도 다 저한테 이야기하시고 정말 저를 믿으시는 거 같았어요. 절대 말하지 마라, 말하면 너도 나도 같이 다친다고 하셨거든요. 그게 오히려 위안이 됐던 것 같아요. 너만 다치는 게 아니라 나도 같이 너와 함께한다는 의미 같았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폭력이 아닐 수는 없을 테니까요. 우리가 보이는 것만을 진실로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인권감수성이 가진 능력이 그런 것입니다. 사회가 교육시킨 대로 틀에 박힌 교육을 받고 그대로 사고하지 않고, 자기 결정권을 한 껏 발휘하여 스스로 사안을 바라보고 판단하되 독선하지 않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인권감수성의 역할입니다

.

참고로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하녀들의 묘사도 탁월합니다. 데이트를 하러 가는 낸시라는 젊은 하녀에게 그레고리는 이야기합니다.

 “조심해. 남자들은 여자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 

그러자 낸시는 이렇게 답합니다. 

“걱정 말아요. 전 제 자신의 의지대로 잘하니까요” 

즉, 낸시는 신분은 예속된 하녀였지만, 자기 결정권이 강한 여성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주인인 폴라와는 다르게 말입니다.

사실 영화 전반은 속에 천불이 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런 쓰레기 같은 남자 놈한테 빠져서 말이야... 그러면서 말이죠. 

더더군다나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역시 갑자기 등장한 폴라를 연모하는 남성에 의해 이 문제가 너무나도 쉽게 해결된다는 거죠. 끝까지 폴라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합니다. 

물론, 세계인권선언의 초안도 마련되기 전인 1944년 영화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훌륭하다고 볼 수 있기도 합니다. .

이 영화는 현재 저작권 기간 만료로. 다행히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무료로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한 번 감상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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