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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l 27. 2021

이름 없고, 권력 없는 모든 노동이 소중함을

[여행][도시]프랑스 몽생미셀,Mont Saint Michel (노동)

프랑스 북서부에 영국과 바다를 두고 맞닿아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프랑스 역사에서 끊임없는 분쟁의 무대가 된 이곳은 기원전부터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원정에서 로마제국 지배를 받기도 했고, 10세기경 바이킹의 침략으로 노르만족이 이주하면서 ‘노르만의 땅’이라 불려 졌습니다. 바로 노르망디(Normandie)입니다.

로마의 영토에서 노르만족에게 넘어간 이 땅은 정복왕 윌리엄 1세에 의해 잉글랜드의 땅이 되었다가 프랑스 필리프 2세에 의해 프랑스 땅이 되기도 했고, 14세기부터 시작된 백년전쟁 동안에는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지배를 번갈아 받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의 역사적 사건으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은 프랑스 땅이지만, 영국과 끊임없이 치고받고 싸워왔던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영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그런지 몰라도 무뚝뚝하고 재미없게 생긴 건물들이 많은 곳입니다.

노르망디로 가는 길은 수도 파리에서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운전을 해서 이동한다고 해도 4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죠. 기후 역시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찬란한 햇살과 푸른 잔디, 남부 칸 지역의 푸른 해변이 아닌, 짙고 낮게 내려앉은 잿빛 구름과 습한 공기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지역이라 바닷물 역시 회색에 가까워 구름과 바다의 맞닿은 경계가 모호하기도 합니다.

치열했던 역사와 우울한 날씨가 머무는 곳이지만, 어떤 매력이었을까요? 모네, 구스타프 쿠르베, 마티스 등 수많은 화가들은 노르망디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수많은 그들의 그림에는 노르망디의 바다, 절벽, 해안가와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노르망디의 신비로운 몽생미셸 성도 수천 년 동안 사랑받는 건축물입니다. 파리에서 출발해 약 4시간, 초여름 백야에 밤 9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노르망디의 몽생미셸 섬은 섬이라고는 하지만, 밀물이 들어오면 고립되고 썰물이 되면 육지와 이어지는 곳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형태의 섬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성으로 이루어진 섬이자 성 자체인 곳입니다. 지금은 몇 개의 호텔과 수많은 상점, 수도원으로 이용되는 굉장히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곳이죠.

어느 유명한 관광지이건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을 다 하나씩 가지고 있듯이 이곳에도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한 수도사가 길에서 거지를 만나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주었는데 그날 밤 꿈에 대천사 미카엘이 그 수도자가 준 옷을 입고 나타나서 이곳 바위산에 성당을 지으라고 했답니다. 이런 꿈을 세 번이나 꿨는데 마지막에는 그 수도사가 말을 영 안 들을 것 같았는지, 대천사 미카엘도 귀찮았는지 수도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좋게 말해 눌렀지, ‘딱밤’ 정도 때린 모양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머리에 진짜 구멍이 크게 나 있어 크게 놀란 수도사는 다음날부터 수도원을 세우기로 결심을 하고 공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실 8세기경이라고 하니, 당시 건축기술로 밀물이면 갇히고, 썰물이면 갯벌로 접근하기 어려운 그곳에 건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708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공사는 결국 16세기에 들어서야 마무리되었다고 하니 거의 천년이 걸렸던 셈입니다. 거대하게 완성된 섬이자 성은 대천사 미카엘의 이름을 따서 프랑스 식으로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성 미카엘 수도원)이 됩니다.

갯벌로 둘러쌓인 몽생미셀

밀물이 들어오면 갇혀버리고, 습한 기후 덕에 물안개가 내려앉은 몽생미셸을 밖에서 바라보면 신비롭기도 하고 성스럽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이미지는 수많은 영화와 문학 작품에도 묘사되고 우리가 잘 아는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섬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몽생미셸을 처음 만들고자 했던 이는 한 수도사였겠지만, 차가운 바닷물을 헤치고 한 발짝 떼기도 힘들었던 갯벌을 가로질러 돌을 옮겼던 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돌을 쪼는 손은 발갛게 얼어붙었을 테고, 여름이었다 하더라도 그늘 하나 없는 바다 위 외딴 섬에서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을 겁니다. 기계나 장비 하나 없이 사람 손으로만 이루어졌을 노동을 생각하니, 성을 내려오는 계단 돌 하나하나가 더 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뿐입니까? 수도 없이 침략과 분쟁이 끊이지 않아 땅 주인이 수도 없이 바뀌는 전쟁과 약탈은 성을 건축하는 노동으로 힘겨운 이들에게 덤으로 주어진 고난이었을 겁니다.

이런 건축물이 몽생미셸 하나뿐이었을까요? 신의 계시를 이유로 혹은 권력자의 욕망을 이유로 만들어진 이 세상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건축물 대부분은 앞서 말한 신비로운 전설을 바탕으로 ‘이루어져라~ 쨘!’하는 요술봉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신의 계시가 아닌,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내야만 하는 수많은 권력 없는 사람들의 혹독한 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몽생미셸 역시 꿈에 대천사 미카엘을 영접한 한 수도사가 만든 성이라고 안내 책자에 기재하고, 하물며 성 안에 부조로 조각해 기록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진시황릉은 진시황을,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를, 베르사유궁은 루이 14세가 만들어낸 건축물이라고 기록되고 그들의 결단력과 추진력을 찬양합니다. 그 수많은 치적을 이뤄내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사람의 노동은 사라졌습니다.

어느 유명한 시장의 허망한 죽음을 앞에 두고 100조원짜리 죽음이라고 안타까워했다는 기사를 보며, 그 시정을 같이 꾸려나갔던 이름 없는 환경미화원부터 사무직 공무원의 노동이 만들어낸 100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어느 유명한 정치인은 일주일에 120시간 정도 노동은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본인이 받는 시급을 기준으로 한다면 120시간 노동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만한 것은 아닐진대 말입니다. 또 어느 정치인은 공장노동자의 연봉이 1억이라는 사실에 비난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직업을 이유로 노동의 가치가 낮게 책정될 근거는 없을진대 말입니다.

유명하고 멋있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마주할 때마다 이름 없고 권력 없던 수많은 노동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유명한 관광지라면 그 곳에서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었던 이들의 역사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면 더 좋을 겁니다. 소중하지 않은 노동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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