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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l 27. 2021

옥상에 올라선 그녀들

[그림]봉기, 강주룡(여성 노동 인권)


 두명의 여성이 있습니다.

 한 명은 오노레 도미에(1808-1879)가 그린 ‘봉기(Uprising), 1848’ 속의 여성입니다. 또 한명의 여성은 아주 오래된 흑백 사진 속 을밀대 지붕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강주룡입니다.


 오노레 도미에가 1860년경 완성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1848년의 프랑스의 2월 혁명이 배경입니다. 이 장면에서 연상되는 장면이 혹시 있나요? 바로 들라크루아가 프랑스 혁명을 주제로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생각하셨을까요? 그런데 뭔가 이미지는 비슷한데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 보이는 여성은 현실적이지 않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드는데, 오노레 도미에가 그린 이 여성은 너무 현실적이죠. 때가 묻은 모자와 옷, 그리고 겁에 질린듯한 표정과 당당함이 아닌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민중을 이끄는 여신이 아니라, 생존권을 요구하는 절박한 노동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인 여성은 아마 도시의 한 구석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혹독한 노동을 견뎌야만 했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나온 한 사람일 것입니다. 역사에 이름은 등장하지 않지만 실제로 역사를 만들어 낸 수많은 민중의 한 명의 얼굴일 것 같습니다.

 

 두 번 째 흑백 사진 속 강주룡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을 단행한 여성 노동자입니다. 1901년 평안북도에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강주룡은 당시 여성의 몸으로 시집이나 잘 가서 애나 낳고 살면 되는 시절, 동료들의 노동권을 쟁취하고자 을밀대 지붕을 올랐습니다. 강주룡 본인만의 권리가 아닌 평양 고무직공 2,300명의 권리를 등에 짊어지고 을밀대 지붕으로 올랐던 그녀는

“노동대중을 대표해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 그러하고 여러분, 구타여 나를 여기서 강제로 끄러내릴 생각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이 지붕 우에 사닥다리를 대 놓기만 하면 나는 곳 떠러져 죽을 뿐입니다”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태풍이 예보되던 날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 현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옥상에서 농성 중인 이들이 위험하다고, 사측인 병원은 물도, 전기도 공급할 수 없고 태풍을 막을만한 그 어떤 안전도구도 반입해줄 수 없다며 안전하고 싶으면 당장 옥상 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병원 측이 너무 강경하여 농성자들의 생명권과 안전권이 위협당하고 있다 했습니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 뉴스민[기고] 74미터 상공에 핀 꽃기린 : 영남대 의료원 고공농성장 방문기(www.newsmin.co.kr/news/41460/) )


 찾아간 농성 현장에는 태풍이 아니라 대충 바람에도 위태위태한 구조물 아래 두 명의 간호노동자가 있었습니다. 한여름 40도가 훌쩍 넘는 대구의 시멘트 열기 위에 몸을 얹고, 중간 중간 공급되는 생수병과 보조배터리로 밤을 새고 목을 적시며 하루하루 견뎌내야 했지만, 그들은 내일 당장 태풍이 몰아닥쳐 목숨이 위험해진다 하더라도 내려갈 수는 없다며 강경했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만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그들이 한여름 대구의 열기와 태풍 앞에서도 지키고자 했던 것은 노동권이었습니다. 부당하게 해고당하지 않고, 부당한 노조탄압을 당하지 않을 권리죠. 농성하는 단 두 명의 권리를 위함이 아니라 모든 동료 의료노동자, 더 나아가서는 노동하는 이 사회의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권리투쟁이었습니다.


 어떤 권리 주장을 위한 투쟁도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목숨을 내놓을 만큼 간절한 상황은 아직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조금도 손해 보지 않고 권리를 쟁취한 역사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나마 이렇게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게 된 역사는 자신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투쟁의 역사로 이루어졌습니다. 나를 위함이 아닌, 나와 내 동료, 우리 사회를 위한 투쟁이었죠.


그들 뿐 만이겠습니까?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프랑스의 올랭프 드 구주가 단두대에 목숨을 바쳤고,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전태일은 불길 속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투표하고 노동하고 있는 것이죠. 그들이 담보한 것은 타인의 생명이 아니라 자신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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