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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an 03. 2024

일본인들의 거대한 감옥, 만자나르

[도시] 만자나르, 미국, 인종차별

캘리포니아!

뜨거운 햇살과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게 그려지는 곳입니다. 

어찌보면, 뉴욕보다 더 미국스러운 지역이 아닐까 합니다. 적당히 게으름은 흔쾌히 허용될 것 같은 날씨와 가벼운 옷차림으로 조깅을 하거나 아무렇게나 누워 책을 읽는 모습이 담겨지는 자유와 편안함이라는 미국적 이미지가 겹쳐지는 곳입니다. 


캘리포니아의 동쪽으로 가면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이 나타납니다. 2천km 에 이르는 장엄한 이 산맥에는 그 유명한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모하비 사막이 함께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국도를 따라 이동하면 왼쪽의 눈덮힌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모하비 사막에 걸쳐  있는 오웬스 계곡(Owens Valley)이 있습니다.. 해발 1200m,  간판이 하나 나타납니다. 만자나르 국립사적지(Manzanar National Historic) 입니다. 


캘리포니아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기후가 아닌 이곳은 여름에는 열풍이 몰아닥치고, 겨울에는 뼈가 시릴만큼 매서운 한기와 눈으로 뒤덮히는 흡사 우주의 어느 행성같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이 생존하기 어려운 모든 조건을 갖추어 놓은 곳이랄까요?  

이런 척박한 곳에 70여년 전까지 사람이 아니,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던 기록이 있습니다. 

만자나르 수용소 감시탑, 출처 : Gillfoto, wikipedia

 제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이 일본에 의해 기습 공격을 받게 됩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미군에게 큰 손실을 끼치게 됩니다. 이로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을 하게 됩니다. 

 진주만공습으로 미국내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본국과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는 '첩자'로 취급받고 거기에 인종적 혐오까지 더해집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행정명령 9066호를 단행합니다. 즉 12만명의 일본계 시민들을 격리캠프를 만들어 강제 수용합니다. 이 중에는 일본 땅을 한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 70%가량이었습니다.  이러한 캠프는 미국 전역에 약 10여곳이 있었고, 그들이 그 곳에 3년 가까운 시간을 감금당해야 했던  이유는 오로지 '일본인' 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물며,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미국 시민임이 당연한 이들 조차도 인종 습성이 희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존 드윗 당시 미 서부사령관의 보고서 중) 동일하게 철조망 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만자나르 수용소 일대, 출처 : wikipedia, Ansel Easton Adams(1902년 2월 20일 ~ 1984년 4월 22일)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미국인이지만, 미국인이 아니었던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선량한 시민임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미군에 복무하여 조국이었던 일본과의 전투에 나아가야만 했고, 미국이 감행했던 강제 이주 역시 기억에서  지워야만 했습니다. 

 다양한 민족과 국가로 부터 출발한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에 의해 만들어진 끔찍한 인종과 민족에 대한 차별이었습니다. 


 피해자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역사의 가해자였던 '일본'이긴 하지만, 단순하게 '일본이니까'라는 이유로 만자나르의 사건을 규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다른 제국주의에 의해 차별받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들여다 봐야하지 않을까요? 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서는 들여다보기 힘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제국주의 국가 일본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혐오하고 배제했던 것처럼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  역시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위험한 당사자로 규정하여 배제, 분리하고  궁극적으로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했으니까요. 


인권의 역사에서 무수하게 반복되어 온 차별의 만행입니다. 다름이 이유가 되어 발생하는 수많은 배제와 차별과 학살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만자나르가 그저 '일본인들을 가둔 수용소였다' 라는 기록을 너머 다름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만들어낸 비극으로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만자나르 국립사적지 위령탑, 출처 : Gillfoto, wikipedia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유명한 일본계 상원의원인 마이클 혼다 역시 어린 시절 이 캠프에 수용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이 당시 자행했던 강제  이주는 '정책'이 아니라 '혐오' 그 자체였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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