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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禁酒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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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May 29. 2016

술은 치료제가 아닙니다

禁酒 Day 44

20160529


    서울대교구의 오늘자 주보에 아래의 글이 기획특집으로 실렸기에 공유합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아우성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하고 말씀하십니다.(요한8,1-11참조)여성알코올중독환자를진료하다보면이성경구절이떠오르곤합니다.알코올중독은술로인해뇌에생기는질환으로우리국민여덟명중한명이위험군에속하는비교적흔한질환입니다.그러나유독여성환자들을 향한 편견과 비난은 냉혹하기만 합니다.

    한 중년 여성이 가족에 이끌려 진료실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남편은 대기업의 임원으로 승승장구했고 자녀들은 모두 명문대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룬 뒤 찾아온 공허함은 불면증이 되었고 언젠가부터 한 잔씩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혼자 지내는 낮에도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울한 마음을 달래는 위로의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점차 자기 연민에 빠지더니 어느 순간 아주 구체적인 자살방법을 찾고 있더라고요.” 다행히도 그즈음 가족들에게 혼자 취해있는 모습을 들키게 되어 병원을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가족이 없는 시간에 주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여성 알코올 중독자를 일컫는 ‘키친 드링커’는 이제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되었습니다.

    2005년 3.4%에 불과하던 여성 고위험 음주율이 2015년에는 6.0%로 높아졌습니다. 우리는 여성에게 술을 권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주류 업계는 여성 소비자를 겨냥해 목 넘김이 좋은 순한 소주를 앞 다투어 출시하고 광고 전면에는 친근한 여성 스타를 내세웁니다. 남성 알코올 중독이더는늘지않고있지만여성알코올중독은꾸준히증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술이 여성에게 더 해롭다는 점입니다. 여성의알코올분해효소는남성의절반수준이고,체내수분비중도작아같은양의술을마셔도분해하는속도나능력이떨어집니다. 간 질환을 포함한 신체질환은 여성에게 더 쉽게 악화되고 생존율도 낮습니다. 뿐만 아니라, 월경전 증후군, 조기폐경, 태아 알코올 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 같은 기형의 원인이 됩니다. 무엇보다 여성이 자주 술을 마시면 중독으로 진행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또한, 남성의 경우 술을 즐기는 것이 중독으로 이어진다면 여성은 스트레스, 우울증, 불면증 등 의료적 치료가 필요한 것을 단순히 술로 견디려다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병원에가기는꺼려지지만쉽게접할수있는것이술이기때문입니다.술은치료제가될수없습니다.이는뇌를억제하고마비시키기때문에온전한사고를통해다시힘을낼수 있는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뜨리고 맙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안전한 치료제들이 개발되어 중독과 우울증 증세를 상당 수준 경감시킬 수 있으며 여성을 위해 특화된 정신·심리기법들이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낮 병동, 개방병동 등 인간 존엄성을 지키며 참여할 수 있는 치료시스템도 구축되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은 이제 난치병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알코올 중독은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자비의 주님께서 중독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에게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십사 함께 기도합니다.

하종은 테오도시오 |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

카프성모병원은 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중독 치료병원입니다. |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86 | 상담전화: 031)810-9100


    술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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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6901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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