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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Aug 26. 2022

커피와 우울

우연히 깨달은 하강 나선의 성향

   송파나루역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 안에 눈에 띄는 간판도 없이 자리한 작은 가게에서 고급스러운 커피 향이 새어 나온다. 커피 향과 맛에 미쳐 매일 커피를 아침저녁으로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해도 이 향기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휘익 둘러보아서는 이 골목 어디에서도 그 유혹 가득한 향기의 근원을 쉽게 찾기는 어렵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통유리창 옆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꽤나 훤칠하게 잘 생기고 체격도 번듯한 젊은 청년 사장님이 매력적인 첫인상을 선사하는 목소리로 반긴다. White Whale이란 가게 이름은 어디서 따왔을까 궁금해하며 두어 평 남짓한 가게 안을 둘러보면 여느 작은 커피점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된다. 손님들을 오래 붙잡아 둘 생각이 전혀 없는 작은 테이블 두 개가 양쪽 벽에 하나씩 붙어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 옆 작은 책장에는 커피와 관련한 여러 책들 사이로 두꺼운 유기화학 책도 보인다.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뒷모습이 가득한 카운터 너머로는 커다란 그라인더 두 개가 사이좋은 친구인 듯 나란히 서 있고, 그 아래로 일부러 깨끗이 치우지 않은 듯한 커피 가루들이 한가득 흩어져 쌓여 있다. 주문을 하려고 카운터 앞에 서면, 자주 보기 쉽지 않은 언더 카운터 에스프레소 머신 두 개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방금 전 점심을 먹으며 친구가 내게 이 분의 커피 내리는 솜씨가 얼마나 다른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었기에, 어느 때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다가, 진심 호기심 가득 담은 눈빛과 함께 어떻게 하면 원두를 사다가 집에서 맛있게 내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쉽게 설명하기 쉽지 않은 듯,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나와 친구의 선호를 묻는다. 난 구수한 맛, 친구는 산미가 풍성한 맛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새로 원두를 갈아서 정성스레 물어 부어 내려 두 잔을 내어 놓는다. 맛이 다르므로 서로 헷갈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어느 잔이 누구의 것인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금방 눈앞에서 같은 원두를 갈아 내렸으니, 설마 맛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생각하며 내 커피를 살짝 맛보니 내가 원하던 대로 맑으면서도 구수한 맛이 난다. 친구의 얼굴을 슬쩍 보니 자신의 커피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럼 신맛이 강하다고? 번갈아 맛을 보니, 완전히 다른 맛이다. 정말 이게 같은 원두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마치 아주 다른 기후의 대륙에서 생산된, 에티오피아와 브라질의 어느 원두들 마냥 다르게 느껴진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반문하는 우리에게 우선 그라인더가 가장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커피 가루의 입자를 얼마나 가늘게 혹은 굵게, 거기에 더해서 얼마나 고르게 혹은 다양하게 갈아낼 것인가가 중요하고, 그다음엔 물의 온도를 다르게 하고 추출 속도와 시간을 다르게 하여 신맛과 쓴맛 사이의 균형을 찾는다고 한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이어진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넋을 빼고 들은 후에 조금 더 알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아직 크레마 향이 가시지 않은 커피를 두 손으로 조심히 받쳐 들고 나왔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남은 커피의 표면이 컵 바닥으로 향하면서 달라지는 커피맛을 느끼자니 집에 있는 네스프레소 머신이 이제는 길거리에서 찾아보기도 어려운 커피 자판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 빗방울이 한두 방울 커피잔으로 찾아 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 커피점 테이블 곁에 우산을 두고 온 것을 알아차렸다. 하얀고래에게 맡겨 놓은 우산을 찾으러 돌아가는 길에 우산뿐만 아니라 전화기도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정신줄을 내려놓고 커피에 빠져들어 있었으면... 


   세상 어느 일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커피 내리는 일마저 이토록 화학과 물리로 가득한 과학적인 일이며, 동시에 연구와 연습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저렇게 멋진 바리스타를 만난 행운에 감사한다. 그가 알려 준 커피가 나를 눈뜨게 해 주었다. 전에는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커피를 요즘 자주 마신다. 서로 다른 방법으로 내려 다른 컵에 담긴 커피 맛의 오묘함들이 인생의 다른 골목들에서 만나는 서로 다른 모습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배우면서... 


   한동안 닫아 두었던 브런치의 서랍을 열게 된 것은 몇몇 친구들에게만 카톡으로 공유했던 윗글의 마지막 문단에 대해 돌직구를 날렸던 친구의 조언 덕분이다. 


   "세상 어느 일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커피 내리는 일마저 이토록 화학과 물리로 가득한 과학적인 일이며, 동시에 연구와 연습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내가 살아온 날들 속에서 난 무엇을 이 사람처럼 이루었을까 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라고 썼던 원문에 대해 친구는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재미있는데 결말이 한국 근대소설 느낌이네.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감정의 처리는 사회문화적으로 교육되고 주입되는 부분이 크지. 드라마에서 남주가 벽치기 하고, 여주의 손목을 확 잡아끌고, 화나면 마구 소리 지르고 던지는 장면들에 비판의 소리가 높은 것도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감정 처리의 무의식적 모방을 우려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외부 상황과 인물을 관찰하다가 결국 나를 개입해 보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고이지만 타인의 장점이 꼭 나의 반성과 부끄러움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건 아닌데, 이런 논리가 자연스럽고 자주 반복되는 듯하다.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삼가는 유교문화의 잔재에 식민통치를 경험한 개발도상국의 선진국 따라잡기 식 경쟁의식이 결합되었던 70년대 한국사회의 정서가 아닌가. 요즘은 한국 소설에서도 이런 의식은 찾아보기 힘든데... K팝 아이돌 그룹이 UN에서 연설하는 시대에 선진국형 자기 돌아보기를 추천함. 그런 반성을 하는 걸 반성해보는 건 어때?"


   며칠 동안 머릿속에 저 댓글이 맴돌았다. 원래 의식 있는 사고가 훈련이 된 친구이기에 그냥 또 내 속을 들여다본 듯한 불편한 충고라고 여기며 지나가려 했는데, 마침 읽고 있던 책의 내용과 겹쳐지면서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어쩌면 오히려 자학적으로 즐기고 있던 그 후진국형 자아반성의 태도가 나를 우울증에 가두어 두고 있는 소위 "하강 나선"(downward spiral)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상승 나선"(upward sprial)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그래서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 선순환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트리거를 발견한 것이다. 내 눈앞에, 내가 쓰는 글 속에, 내 맘 속에 늘 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난 그 녀석을 잘 알고 있었는데... 후딱 내쫓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먹이고 입히며 점점 더 무서운 녀석으로 키워왔던 것이다. 깨달았으니 실천이 중요하지 않은가. 당장 마지막 문단을 고쳐 썼다. 대단한 문장으로 고쳐 쓴 것도 아니다. 그저 그때 행복했던 감정을 가져다준, 그 우연한 행운의 만남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서 난 진짜 그 행복했던 감정을 내 것으로 온전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처서를 지나 가을을 부르는 햇살이 빗방울 가신 구름들 사이로 빛났다. 둥그렇게 떠오른 무지개가 보인다, 저 하늘 끝자락에도, 내 마음속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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