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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Apr 02. 2016

만우절, 장국영 그리고 사스 (SARS)

만우절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게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낚였습니다". 다양한 사진과 글에 속으신 분들이 많죠? 신학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예쁜 거짓말을 하신 어느 집사님은 (만우)절로 보내졌다는 전설도 들었습니다. ^^


잊지 못할 만우절이 있었습니다.

2003년 4월 1일.

홍콩에서 근무할 때였죠.


그날 오전에는 우리나라의 某 시중은행의 상업차관대출 서명식이 홍콩의 한 호텔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부서의 홍콩 직원들이 "Isn't this April Fool's Day frank?" 하며 놀렸습니다. 몇 천억 원씩 되는 대출을 놓고 설마 만우절 장난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서명식을 마치고 만우절 농담을 섞어 가며 즐거운 점심식사를 다 함께 마치고 호텔을 떠나자마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시아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장국영이 방금 저희가 행사를 마친 바로 그 호텔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일부 언론에는 만우절 기사 치고는 너무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의문을 남긴 장국영은 마흔일곱의 나이에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그 거짓말 같았던 비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무실로 돌아가는 중에 비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JH, where are you? Did you get the news?"

"Yes, sorry for the terrible news of Zhang Guorong. I'm on my way back now. Nearly there."

"No no. Not that news. Don't come up to the office. We have banned business travels this morning due to the SARS. Once you come in the office, you won't be allowed to go to Korea. Go home and pack. I have booked you on a flight to Korea this evening."


거짓말 같은 일이 또 일어난 거죠.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가 발생한지 한 달여 되고 홍콩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워낙 잡균이 많은 홍콩에서, 더구나 조류독감 사태 등의 경험에서 공공 방역체계가 꽤나 잘 구축되어 있는 홍콩에서 여행금지명령이 내려지다니... 더구나 저는 새로운 일을 맡아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지 겨우 두어 달 된 시점이라 한국으로 자주 출장을 가야 하는 무척 바쁘고 중요한 시기였죠.


안 그래도 일곱 살 딸아이와 두 살 아들을 데리고 사스 때문에 걱정을 하던 아내에게 '가장 빠른 항공편을 예약할게. 서울서 보자'라고 일사후퇴 때나 들었을 듯한 이별사를 남겨 두고 홍콩을 떠난 저는 그날 4월 1일 저녁 늦게 인천공항에 내렸습니다. 가족들은 이틀 후에 서울로 피난을 왔죠. 삼 개월 동안의 사스 피난생활이 그렇게 거짓말 같이 만우절에 시작되었습니다.


요즘처럼 카톡과 페이스북이 있었다면 정말 대단한 난리가 났었겠죠? 심지어 블랙베리도 없던 그 아날로그의 시절이 그리워지는 만우절입니다. 오늘도 그 호텔의 동쪽 편 골목엔 장국영을 기리는 꽃들이 놓여 있겠죠?



2016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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