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nte di Rialto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물의 도시입니다. 작은 도시이지만 4km 가까이 되는 운하가 도시의 골목을 이루고 있고 그 위로 사백 여대의 곤돌라들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바쁘게 그러나 즐겁게 오르내리는 수상도시입니다. 그래서 이 도시엔 다리가 많을 것 같지만, 대륙과 이어진 현대식 다리를 제외하면 중세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다리는 오직 네 개밖에 없답니다. 그 중 가장 오래 되었고 유명한 다리가 바로 리알토 다리죠. 1591년에 완공된 돌다리입니다.
뒤집어 놓은 S자 형태로 베니스의 중심을 구비쳐 지나는 대운하의 가운데 위치한 리알토 다리는 San Marco와 San Polo로 구분되는 베니스의 큰 두 구역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운하의 동쪽 지역에 발달한 시장을 연결하기 위하여 목판을 연결한 다리가 물 위에 띄어진 것은 12세기입니다. 그 후 13세기가 되어서 목조다리가 세워졌는데, 1444년과 1524년에 보트퍼레이드를 관람하던 구경꾼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답니다. 그 결과 지금의 다리가 지어진 것이죠.
아치형 구조위에 비스듬히 놓은 다리상판 위로 돌지붕이 씌어져 있는 다리는 그저 운하의 양편을 연결하는 다리만은 아닙니다. 다리 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납니다. 십 분만 서 있어도 이탈리아어, 영어, 일어, 중국어, 한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그 외에 알아들을 수 없는 수많은 언어들을 듣게 됩니다. 방금 다리를 올라오는 계단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곳에서는 누구나 지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눈웃음을 보냅니다. 서로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서로 다른 언어의 말이 필요없습니다. 다리 아래에서는 배들이 서로 스치며 만납니다. 서로 잘 아는 곤돌라 뱃사공들은 주변 식당과 거리상점의 점원들에게도 큰소리로 안부를 묻습니다. 곤돌라 안의 관광객들도 스쳐 지날 때마다 손을 흔들고 환호합니다. 환호소리가 크다 싶어서 돌아보면 여지없이 큰 배가 지나갑니다. 성능이 좋은 모터보트라도 지날라치면 더운 날 장난스레 더 크게 튕겨내는 물보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다리에서 한 골목씩만 안으로 들어가면 온갖 문물들이 세상 곳곳에서 온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그곳에는 중세 때부터 베니스를 지켜 온 수만 가지의 가면들이 그 무궁무진한 밤의 이야기들을 들려 줄 것 같은 얼굴로 유리벽면 뒤에서 말을 걸어 옵니다. 그 밤들을 밝혔던 형형색색의 양초들도 있습니다.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들이 그렸을 그림들도 화랑의 천장 밑에까지 가득하게 걸려서 주인을 기다립니다. 골목에 자리한 작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식당은 그곳이 허기진 관광객을 위한 천국임을 알게 합니다.
리알토 다리는 하루 중 언제라도 역사를 품은 멋진 모습을 자랑합니다. 그렇지만 해질 무렵 운하의 양편으로 불빛이 하나 둘씩 켜질 때의 그 은은한 낭만이란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이 분주히 지나다니던 길가로 테이블과 의자를 펼쳐 놓은 식당들의 차양 위로 가스등을 연상케 하는 노란 불빛이 줄지어 서면 그제서야 시장기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다혈질의 이탈리아 국민성에 관광객들의 흥분이 접점을 찾기 시작하는 이 시간에 골목 어디서라도 맥주잔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너도 나도 제 고향 얘기와 함께 하루 종일 보고 들은 것들을 풀어놓습니다. 그러다가 다리 밑을 지나는, 아직 마지막 관광객을 산마르코 광장 앞까지 실어다 주어야 하는 곤돌라의 사공이 잠시 노를 쥐었던 손에 힘을 풀고 깐쪼네라도 한 곡조 뽑으면 운하 양편과 다리 위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고 휘파람을 불어 댑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광경 속으로 붉은 노을을 점점 더 짙어 갑니다.
사람사는 내음이 진하게 묻어나는 리알토 다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따뜻합니다. 숙소가 산마르코 광장 주변이라면 다행스럽게도 걸어서 베니스의 밤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수백 년을 사람들과 함께 숨쉬어 온 돌다리에서, 씩씩하고 활기찬 기운으로, 소박하고 맑은 마음으로, 때로는 시끌벅적하게 때로는 고요하게, 세상과 소통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새삼 배웠음을 알게 됩니다. 그때쯤이면, 시장골목에서 낮에 보았던, 시원하게 썰어 놓은 수박 한 덩어리가 떠올라 아쉽고 또 아쉬운 입맛을 다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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