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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Apr 04. 2016

피터팬이 되어서

런던 아이 (London Eye)

대여섯 살 무렵에 다녔던 미술학원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그냥 그림그리기만 가르치던 분은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아이들이 그림을 통해서 꿈을 키우고 그 꿈과 함께 자라기를 바라셨죠. 어느 날 우리는 ‘피터팬’을 연극으로 공연했습니다. 미술학원이었으니 무대와 배경을 제작하는 일은 재밌기 그지 없었죠. 런던의 모습을 그린 벽도 하나 만들고, 해적선 그림도 크게 만들었죠. 국회의사당 옆 시계탑 빅벤도 잊지 않고 그려넣었습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재밌는 것은 극중 인물로 분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웬디의 큰동생 존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한밤 중에 찾아온 피터팬이 뿌려준 요술가루 덕에 런던의 밤하늘을 날아서 시계탑 위로 지나는 장면을 연기했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린 모두 잠옷을 입었고, 밤하늘을 멋지게 날아가는 모습을 위해서 검은 우산도 펼쳐 들었습니다. 상상 속에서 마음껏 날았죠. 그렇게 런던과 빅벤은 다섯 살이던 제게 처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오주현

1989년 여름에 처음으로 런던을 여행하게 되었을 때의 감동이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수십 번이 넘도록 런던을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런던은 갈 때마다 흥분이 됩니다. 다른 도시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죠. 여러 해가 지날 동안 왜 그런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이 역사가 깊은 도시에 제가 관심이 많은 미술관, 박물관, 성당과 교회 건물, 공원, 펍, … 그런 것들이 많아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2005년에 가족들과 함께 템즈강변의 회전관람차 London Eye를 타보고는 깨달았습니다.

 ©오주현

어릴 때 상상했던 빅벤의 하늘 위로 올라갔을 때 알게 된 거죠. 해가 저물며 불빛이 켜진 빅벤과 국회의사당 건물이 붉은 노을에 물들기 시작한 런던의 하늘은 피터팬과 함께 날아보고 싶었던 그 하늘이었습니다. 비록 두세 평 남짓한 유리통 속에서 내려다보는 런던이었지만, 저는 미술학원에서 까만 신사중절모를 쓰고 잠옷을 입고 검정 우산을 들었던 그 존이 되어 있었습니다. 3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 존은 제 마음 속에서 제가 런던에 올 때마다 살아있었던 겁니다.

 ©오주현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관광상품은 거의 대부분 해지기 전에 타서 해지는 것을 보면서 내려오는 것이 제격입니다. (풍선열기구를 제외하고는 보통 해뜨는 아침에는 영업을 하지 않죠.) 런던 아이도 미리 시간을 예약할 수 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에 새천년을 기념하여 완공하였기에 "밀레니엄아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소유권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세계에서 제일 높은 회전관람차의 지위도 싱가폴의 Singapore Flyer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아직도 제일 높습니다. 런던 아이의 최고 높이가 150m에 이르는데, 요금을 내지 않고 비슷한 구경을 하시려면 St. Paul 대성당 돔의 꼭대기를 걸어 올라가시면 됩니다. 대략 125m 높이가 되니까 시야의 각이 다르긴 하지만 얼추 비슷한 구경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오주현

눈썰미 있게 살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런던 아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지대가 한쪽에만 있는 구조입니다. 동그란 회전차 부분을 템즈강 위에 띄어 놓고는 강둑에 세운 A프레임 위로 와이어로프를 걸고 끌어 당겨서 세웠죠. 알고 보면 재밌지만 무섭기도 하죠?


언제라도 저 빅벤 위로 다시 날아오르는 피터팬이 되는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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