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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Apr 16. 2016

신명나는 지휘자

Saint Margaret's Church, Hong Kong

여행 중에 뜻하지 않게 고풍스러운 교회 건물을 마주하면 궁금해서라도 잠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곳에서 마침 연습 중인 성가대라도 만나게 되면, 고딕 양식의 천장을 타고 흐르는 성가 소리에 잠시 몸을 맡겨 쉬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오래 살았던 홍콩에 들릴 때면 일부러라도 꼭 찾아가는 성당이 있습니다. Happy Valley 경마장 옆 Leighton Hill에 얌전하게 올라앉은 St. Margaret's Church입니다. (http://smc.catholic.org.hk/en/)  


그곳에 가면 특별한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t. Margaret Church, Hong Kong   © 오주현

그는 175cm가 조금 넘을 듯한 키에 마른 편입니다. 항상 짧고 단정한 머리 스타일에 청바지나 면바지 위에 목 칼라가 없는 티셔츠를 즐겨 입습니다. 운동화를 즐겨 신는 그는 언제나 가볍게 어디라도 뛰어갈 수 있을 듯한 모습입니다. 준수한 얼굴에 짙은 뿔테 안경이 어울리는 그는 어려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십 대 중반인 저보다 절대로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는 유난히 길어 보이는 두 팔을 가졌는데, 그 두 팔이 허공을 힘차게 가로지를 때 제 마음은 환희로 가득 찹니다. 때로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울컥하고 올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합니다. 제 심장이 더 빨리 뛰기도 하고 제 목소리가 더 커지기도 합니다. 벅차고 기쁜, 그래서 저 하얀 돔 천장 가까이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성가대의 지휘자입니다. 그는 그저 열 명이 조금 넘는 성가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주일 12시 30분 영어미사의 성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매주 봉사하는 인원이 키보드 하나, 기타 하나, 남자 대원 서넛, 여자대원 대여섯, 그리고 지휘자가 전부인 작은 성가대입니다. 그리고 제 홍콩 친구 한 사람이 이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기 때문에 알지만, 지휘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도 음악을 전공한 듯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러 나라를 다녀 봐도 우리나라 같이 성당에 악보가 함께 인쇄된 성가집을 마련해 두고 있는 곳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 성당에도 노래 번호와 함께 가사만 적혀 있는 성가집을 봅니다. 성가대는 형편이 되는 대로, 성가에 따라서, 2부 내지는 4부 합창을 하니까, 그래도 4부 혼성합창악보를 가지고 노래하리라 믿어집니다. 어쨌건 명동성당이나 소망교회와 같은 곳에서 보는 커다란 규모의 성가대가 아니기에 멋들어진 화음이 어우러지는 대단한 소리를 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성가대와 비교하더라도 부끄럽거나 뒤지지 않을 정성으로 노래를 합니다. 그것은 그리 특별한 것도 없는 성가대가 이 특별한 지휘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너무 먼 곳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많이 흔들렸네요.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이가 "그"입니다.© 오주현

그는 제가 만나 본 어떤 지휘자보다도 지휘를 크게 합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통틀어 그렇게 크게 지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긴 팔만 흔들어 대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온몸을 써서 지휘합니다. 박자를 맞추어야 할 때에는 엄청나게 길어 보이는 둘째 손가락을 쭉 뻗어 지휘합니다. 모두가 함께 노래해야 할 때에는 모든 신자들을 마주 보며 서서 더 이상 팔을 뻗을 수 없을 만큼 크게 지휘합니다. 물론 그도 함께 노래합니다, 작지 않은 입을 더 크게 벌리며! 소리가 조금이라도 작다 싶을 때면, 그는 손바닥을 펴서 아래에서 하늘로 들어 올리는 모양으로 성가대를 독려합니다. 그럴 때면 그의 양 무릎도 아래 위로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알렐루야'나 '거룩하시다(Sanctus)와 같이 미사의 내용 상 중요한 성가를 부를 때는 아예 온몸을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움지이며, 마치 허공의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리듯이 지휘를 합니다. 그러나 그가 혼자만 그렇게 신이 나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 흔한 성가대 복장조차 갖추지 못한 작은 성가대는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찬양합니다. 그는 미사 내내 살뜰이 챙깁니다. 기타가 빨리 가는지, 키보드가 느리게 따라오는지 챙기면서, 악보가 없는 신자들을 위해서는 어려운 박자를 일일이 허공에 크게 짚어 가며 지휘를 합니다. 그래서 그의 손끝에서 악보 없는 성가들이 찬미를 이루고 찬양을 이루게 됩니다.


그의 얼굴은 지휘하는 모습에서 상상되듯이 밝고 건강합니다. 그의 맑은 영혼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온몸으로 그것을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그는 아름답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음악이 차지하는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가톨릭에서는 성가를 부르는 것이 기도에 버금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가는 두 배의 기도"라고까지 했고, 그를 그리스도교로 이끈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암브로시오 성인도 "시편은 백성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이고, 하느님께 바치는 찬양이며, 회중이 드리는 찬미 노래이고, 모든 이가 치는 손뼉입니다. 보편적인 교훈이고, 교회의 목소리요, 노래로 바치는 신앙고백"이라고 했습니다. (링크된 글에서 인용: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693) 따라서 (사순절과 같은 특정 전례 시기를 제외하고) 대개의 성가는 노래방에서 노래할 때보다도 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더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 정답입니다.  하지만,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계시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미사를 통하여 받을 수 있는 은총 가운데 커다란 부분을 놓치고 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이 작은 성가대가 부르는 "알렐루야"입니다. 가톨릭 미사에서 성경의 복음 말씀을 듣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갖추는 노래인데, 웬만한 교회에서는 "기쁘게" 노래하는 알렐루야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폰으로 멀리서 녹음했더니 기대했던 만큼 "기쁜" 느낌이 전달되지 않아서 아쉽네요.)


오늘의 '알렐루야' 환호송은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었습니다.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즐겁게 하루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힘껏 정성 들여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그것을 통해서 이웃에게 기쁨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사는 이 세상을 하늘나라 같이 사는 사람들은 죽어서도 그곳에서 살 것입니다.


오랜만에 그의 신바람 나는 지휘를 보면서 행복한 미사를 드리고 나오니, 몇 주만에 보는 새파란 하늘 위로 하얀 구름들이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돌아가면 이내 그가 그리울 것 같습니다.


2013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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