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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禁酒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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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May 03. 2016

아내의 잠

禁酒 Day 18

20160503


    부엌에서 소리가 납니다. 방금 전까지 자는 줄 알았던 아내가 어느새 부엌에 있습니다.

    "일찍 일어났네! 잘 잤어?"

    대개는 아침에 물 마시러 제가 먼저 부엌에 들어가거든요.

    "그럼, 잘 잤지."

    아내는 저혈압인 편이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어렵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더 자야 되는 거 아니야?"

    "당신이 똑바로 잘 자니까 나도 푹 자서 좋아."

    "그래? 더 안 자도 돼?"

    "응. 당신이 코 골고 몸부림칠 때마다 자꾸 깨니까 편안하고 충분한 숙면이 모자라서 그런 거였어. 중간에 안 깨고 잘 자면 예닐곱 시간 자고 일어나게 돼."

    "그런 거였어? 내가 똑바로 얌전히 자니까 남 같지 않아?"

    "남이랑 한 이불에 자냐?"


    아, 그런 거였습니다. 아내가 아침에 일찍 상쾌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제 잠버릇이 고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술을 멀리한 이후로 얌전하게 똑바로 누워서 밤새 뒤척이지 않고 잘 자니까 덩달아 아내도 잘 잔답니다. 22년을 넘게 사는 동안 고약한 저의 잠버릇 때문에 힘들었을 아내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앞으로는 늘 편안한, 그래서 행복한 잠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표지 사진은 크리스마스 직전 쮜리히의 어느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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