禁酒 Day 24
20160509
"사장님, 이거 오늘 중으로 가능할까요?"
"예, 손님, 퇴근 전에 오세요."
일곱 시간 후......
"사장님, 아까 부탁드린 것 다 되었죠?"
"엥! 깜박 잊고 있었네...... 어쩐지 뭐가 허전하더라...... 손님, 어쩌죠?"
"......,......, 그럼 내일 오전에 다시 올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예전 같으면 분명히 '욱'하고 성질이 났을 상황입니다. 24년 째인 직장생활 내내, 금융'서비스'업에서 소위 '을'의 위치에만 있었기 때문인지, 제가 제 고객들에게 하는 만큼, 제가 소비하는 용역에 있어서 성실하고 충분한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대 이하의 서비스를 받으면 그냥 성질이 나는 게 아니라, 주로 가슴속 저 아래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때도 많습니다. 공항 체크인 카운터와 식당이 주로 '욱'하기 쉬운 곳들이죠.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차분하게 대응했습니다. 꼭 오늘 안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오늘 오후 중에 가능한지 여러 번 확인하고 맡긴 일이었는데, 퇴근 때 가보니 너무나 태평한 얼굴로 저를 맞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처음 보는 손님이 가게에 들어온다는 듯이...... '욱'할 걸 참은 것도 아닙니다. 별로 '욱'하지 않았어요. 그냥 조금 실망했죠. 그분께 실망한 것이 아니라, 오늘 저녁에 계획했던 일을 불가피하게 연기하게 되어서 제 스스로 가졌던 기대감이 무너진 거죠. 가게를 나오면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진짜 '욱'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워낙에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 '욱'할 때 참으면 돌아서서 더 화가 나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3주 동안 한 번도 '욱'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禁酒의 좋은 영향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표지의 사진은 불어로는 "레만호수"라고 하는 "제네바 호수"입니다.)
아래 링크는 같은 매거진, "禁酒日記"의 이전 글입니다.
https://brunch.co.kr/@69010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