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구원을 찾아서......
(지난 일요일, 프로 데뷔 후 10년째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골프 선수와, 월요일, 신학교에 입학한 지 25년 만에 사제 서품을 받으신 신부님의 이야기를 보면서 작년 초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사진들을 다 지우고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멘붕]
토요일 아침, 겨우 들어 올린 머리는 잿빛 하늘만큼이나 무겁다. 어제와 그제, 연속으로 새벽까지 들이킨 알코올들이 아직 혈관 속에 붙어서 천근같이 무겁다. ‘그래, 지난 며칠이 유난히 힘들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개콘의 재방송도 별 소용이 없다. 소위 ‘멘붕’이 오는 것을 느낀다. 주말을 다 망치기 전에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가장 쉽게 요리할 수 있는 만둣국을 한 그릇 준비한다. 그래도 디포리와 다시마로 맛국물을 제대로 내고 냉동고에서 마지막 남은 두 봉지의 곰국 중 하나를 더해서 끓였다.
[자위(自慰)]
건조대에서 바짝 마른 스키니진을 입었다. 입기는 힘들어도 사각거리는 느낌이 좋다. 사무실 쪽으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이른 아침보다 높아졌다. 바람도 생각처럼 차지 않다. ‘그래, 역시 나오기를 잘했어.’ 스스로 위로한다.
시청 앞 스케이트장에 들렀다. 탈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밝아졌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이메일을 열어보고 싶어 졌다. 어젯밤 이후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그만두고 운동화를 들고 지하의 체육관으로 향했다. 주말 정오반에는 다행히 남자들이 평일보다 많다. 기를 쓰고 다리를 찢어가며 오십 분을 따라 하면 땀에 범벅이 된 몸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와진 영혼을 발견한다. ‘그래, 역시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해.’ 나이 들어가는 남자가 스스로를 위로함은 그 어떤 도덕적 규율보다 중요한 일이다.
[미사 1]
광화문 사거리를 돌아 정동 쪽으로 향한다. 2시의 혼배미사는 프란치스코회 교육관이다. ‘세상에, 이 작은 성당이 이렇게 예뻤던가.’ 입구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다 보이는 저 아래 제대는 누구의 마음이라도 사로잡을 듯한 흡입력을 가졌다. 그 뒤로 매달린 예수는 그 흔한 나무 십자가 하나 없이 온몸으로 절규하는, 그러나 역설적인 아름다운 모습으로 벽 위에 떠 있다.
[혼인서약]
74년 생 신부와 76년 생 신랑의 늦깎이 결혼은 예상보다 밝고 따뜻했다. 어린 신랑 신부의 결혼식과는 달리 차분하게 진행되어서 그런지, 혼배미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다 결국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신부 입장 때, ‘나중에 내 딸의 손을 저렇게 넘겨주나?’ 하는 생각에 앞을 가리던 눈물이 아니다. 뚝뚝 떨어진다. 20 년 전 나의 혼배미사 중에도 똑같이 듣고 따라 했을 결혼서약이 한 줄 한 줄 가슴에 와서 꽂힌다.
신랑과 신부는 아무의 강박도 없이 완전한 자유의사로 서로 혼인하려고 결정하였습니까?
두 분은 결혼생활을 통하여 일생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겠습니까?
두 분은 하느님께서 맡겨주실 자녀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회의 법을 따라 올바로 교육하고 기르겠습니까?
두 분은 거룩한 혼인의 계약을 맺으려는 것이니, 서로 오른손을 잡고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두 분의 뜻을 밝히십시오.
"나는 당신을 내 아내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당신을 내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래, 결혼은 저렇게 고귀한 약속이며, 괴로울 때도 아플 때도 지켜야 하는 신의인 것을… 사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도 하는 것을…’ 이십 년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을 떠올리니, 그동안의 잘잘못들이 함께 떠올라 저절로 울컥 올라왔다.
[속내 1]
정동을 떠나 신문로를 거쳐 종로와 청계천길을 걸어 친구에게 잠시 들렸다. 차를 한 잔 하며 며칠간 힘들었던 속내를 잠시 내비쳤다. 비슷한 직업을 가진 친구는 금방 내 마음을 헤아리고 살핀다. 고맙다. 그러나, 조금만 더 머무르면 친구의 토요일 저녁을 방해할 듯하다. 내가 조금 방해해도 덜 미안한 친구를 찾아가기로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생각하던 길이었는데, 혼배미사 동안 그 생각이 더 굳어졌던 참이었다. 저녁 7시 미사에 맞추어 가려면 뛰어야 한다. 종로 3가역에서 지하철에 올라탔다. 도착 예정시간이 6시 30분이란다. 딱 맞겠다.
[문산 가는 길]
이미 날이 어두워진 문산역에 내리니 제법 바람이 차다. 무서운 추위가 올 거라더니… 지난번에 미카엘 신부님이 기차역에서 헤어지고 나서 돌아가던 길로 걷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 걸어왔던 길과 반대방향이었지만 그가 돌아간 길이니 틀림없이 성당으로 가는 길이라 믿고 나섰다.
멀리 빨간 십자가들이 여럿 보인다. 그 가운데로 하얀 십자가가 하나 서 있다. ‘흠, 저 집이 미카엘 신부님이 사는 문산성당이렸다.’ 예수 탄생을 알리던 별을 따라가는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의 심정으로 철길 옆을 뛰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선 골목 끝에서 멈춰 선 그 별, 아니 하얀 십자가는 버스터미널 위에 있다. 길 건너 저 어디인데… 그도 예수가 아니고, 나도 동방박사는 아니렷다. ㅋㅋ. 길을 물어 성당에 도착한 시간은 미사 10 분 전. 늘 그렇듯이, 이 겨울에도 사제관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신부님!” “저, 미사 준비하러 올라가셨는데요.” 처음 보는 덩치 좋은 사내가 운동복 바람으로 나와서 머쓱한 표정으로 알린다.
[미사 2]
다 낡아 초록 테이프를 붙인 성가집과 주보를 한 장 챙겼다. 지난번에는 잊었던 ‘니체아 신경’ 복사본도 같이. 미사 전 기도로 묵주기도를 한 단 바치자고 한다. 나도 꽤나 천천히 기도를 외는 편인데, 이곳 신자분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이 수녀원 새벽기도 마냥 느리다. 그러나, 참으로 그 소리가 좋다. 천천히 그러나 딱딱 맞는 그 기도는 누가 좇아 오듯이 외는 서울 성당들의 그런 기도가 아니다. 미사를 준비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기도가 된다. 문제는 성가다. 아무래도 반주자에게 메트로놈을 하나 선물해야 할 듯싶다. 기도야 느려도 숨차지 않지만 성가는 숨 끊어질 지경이다. 연결된 마디는 절대로 숨 안 쉬고 넘어가야 하는 나이기에 더 그렇다. 대영광송을 바칠 무렵에야 숨이 제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엔 얼굴이 빨개졌다. 매번 성가로만 부르던 대영광송을 교창 기도로 올리는데 여러 대목에서 제대로 외지를 못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사십 년 가까이 외워 온 대영광송을! 가뜩이나 큰 목소리인데, 바로 뒷 줄의 수녀님께서 흉보실까 봐 걱정할 틈도 없다. 앞에서나 뒤에서나 숨김없이 잘 보이는 내 귀는 이미 더 이상 붉어지기 어려운 지경이다.
[침묵 1]
“기도합시다. …… ……” 미카엘 신부님의 미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대영광송 이후에 본기도를 바로 들어가면 아직 마음이 준비가 덜되어서 매번 기도의 몸체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매주 반복되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라는 마지막 부분만 귀에 들어온다. 그런데, 미카엘 신부님은 상당히 긴 침묵의 공간을 주신다. (실제로 미사 통 상문에는 이런 지문이 적혀 있다. ‘사제와 교우들은 잠깐 묵묵히 기도한다. 이어서 사제는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내가 이 공간에 왜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짧은 강론 1]
미카엘 신부님은 나와 초등학교 동기다. 그를 찾아 여기 문산까지 와서 미사를 드리는 이유는 참으로 ‘사제다운’ 그를 통해서, 그의 강론을 듣고 그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그는 여러 행사 등을 통해 많은 동료 사제들과 함께 서품미사, 장례미사, 교육원 졸업 미사를 드리느라 무척 고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중요하고 동시에 서로 다른 성격의 미사들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를 발견하였으니 바로 ‘떠남’이었단다.
“잘 머무르는 사람이 잘 떠날 수 있습니다. 교황님이 당신의 저서, ‘복음의 기쁨’ 제24항에서 말씀하셨듯이, 습관적으로 교회의 전례 안에 머물지 말고, 출발하는 교회의 첫 발걸음처럼 지난 한 주 하느님 나라를 살기 위해 어떻게 애썼는지 반성하며 감사하고 경축하는 시간이 바로 미사입니다. 동시에 미사는 다음 한 주를 위해 새롭게 나아가는 힘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잘 떠나고 잘 떠나보내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 미사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도 떠나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음을 알려줍니다. 머무르고 떠남은 세상을 사는 본질적인 요소들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머무르고 주님과 함께 떠나야 할 것입니다.”
그의 강론은 짧고 간결한 만큼 메시지가 분명하다. 내가 왜 이 미사에 와 있는지 알게 된다. 난, 지난 며칠간, 아니 지난 몇 달간, 제대로 머무르지 못한 사람들의 결과로 힘들어했고, 그 함정으로부터 제대로 떠나지 못해서, 나와 잘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달래느라, 나를 떠나면서도 헤어지기 싫어했던 사람을 보내느라, 내 자리에 스스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싶어서, 앞으로 내게 닥칠지 모르는 많은 만남과 이별을 미리 걱정하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이, 미카엘 신부님의 강론은 병실에 누운 환자에게 잘 놓아준 주사 마냥 내 혈관을 타고 마음속으로 쏘옥 들어온다. 여기서 눈물이 안 나면 내가 아니지…
“그리스도의 몸!”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로 “아멘”을 외치고 돌아서면서 또 떨어진다, 눈물이. 내 주님이 오늘 나를 이끄신 그 발길의 오묘함을 달리 느끼고 감사할 방법은 없으리라.
[헌금 1]
공지사항을 알리는 시간에 주보를 찬찬히 살펴본다. 청년들의 떼제 기도모임이 일요일 저녁에 열린단다. ‘시골 청년들이 떼제를 아는구나.’ 생각하며 옆을 보니 지난주 주일헌금과 교무금 금액이 적혀있다. ‘작은 성당에서 꽤 큰 금액인데......’ 더 놀란 것은 바로 아래 적힌 성전봉헌 기금 누적액이다. 정말 십시일반으로 모았을 기금이 1원 단위까지 적혀 있다. 이자가 붙은 것까지 손 하나 안 대고 모아 두고 있는 모양이다. 대단한…...
[성찬 1]
미사를 마치고 읍내를 떠나 외진 곳으로 저녁 먹으러 갔다. 파주 공단이 자리한 곳의 뒷골목에 앉은 작은 닭갈비 식당엔 손님이 하나도 없다. 경기가 좋지 않은 탓일까? 우리를 맞이하는 주인장을 미카엘 신부님이 내게 소개한다. 미카엘 신부님은 늘 그렇듯이 제집처럼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고 앞접시와 수저를 챙겨 온다. 닭고기를 잘 썰은 양배추를 포함한 야채들과 양념에 버무려 넓은 철판에 두루 올린 주인장은 커다란 나무주걱 두 개를 다시 들고 간다. 한참 후에 주걱들을 들고 다시 나타난 주인장은 이리저리 한 번 뒤집고는 주걱들을 다시 들고 간다. 손님에게는 절대로 맡기지 않을 눈치다. 일 인분에 구천 원인 닭갈비를 참으로 정성스레 요리한다. 서울서는 감히 상상도 못한다. 닭갈비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주인장은 금방 데친 오징어 숙회를 한 접시 내놓는다. 아무리 좋은 생물도 데치는 시간을 잘 못 맞추면 비리거나 딱딱해지는데 어쩌면 그렇게 잘도 익혔는지, 작지도 않은 오징어가 입에서 녹는다. 소주는 어디로 다 새 버렸는지 알지 못한다.
메뉴판에 없는 매생이전도 나오고, 곧이어 사천만의 별식, 번뎅이 조림도 식탁의 가운데를 차지한다. 매생이전은 먹어 보지 않은 사람과는 같이 말하기 어렵다. 마무리는 기름기 없는 순살코기로만 특별히 요리한 묵은지 김치찌개다.
[속내 2]
배가 부르고 나니 이제 내가 가난하지 못한 마음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어느덧 세 병째인 술의 힘을 빌어 실타래 풀듯 시작한 내 이야기가 잠시 후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에 묻혀서 빈 오징어 접시 위로 흩어졌다. 늦게 들어와 앉은 다른 손님들이 없었으면 난 아마 목놓아 대성통곡을 했을지도… 고해소에서 털어놓지 않아도 되는, 그러나 어쩌면 정말 고해했어야 하는 속마음을 다 드러내고 보니, 이제 후련했다. 그래서 임금님의 시종은 깊은 숲 속 나무 밑에 흙을 파고 소리 질러야 했겠지…
누런 기름의 껍질 하나 발견하기 어려웠던 닭갈비는 네 시간 동안 일곱 병의 소주를 잡아드셨다. 그러나, 취하기도 전에 눈물이 되어 흘렀다.
[거룩한 밤 고요한 밤]
사제관 한켠의 방에는 놓여 있는 딱딱한 침대는 어릴 적 매트리스 위에 합판을 깔았던 내 침대 같았다. 창문이 없어서 잔 불빛 하나 새어들 틈이 없는 방은 세상의 온갖 소음으로부터도 멀기만 하다. 얼마나 잤을까? 정신이 먼저 단잠에서 깨고, 방문 틈으로 외부의 소리에 귀가 깨었을 때조차도 눈으로는 시간을 분별하기 어려웠다. 손을 더듬어 전화기 전원을 켠다. 반가운 사과 표시가 지나가고 8시 12분이 눈에 들어온다. 아홉 시에 떠나기로 했는데… 주섬주섬 바지를 걸치고 밝은 세상으로 나서니 어제 잠시 마주했던 덩치 좋은 학사님이 반긴다. 이내 머쓱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미카엘 신부님도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그대로 얼굴을 내민다. 부엌에서는 주홍색 유리 냄비 안에서 콩나물국이 끓고 있다.
[464,550]
신자들이 오기 전에 차를 빼놓는다고 먼저 나간 신부님을 좇아 나가니 한 눈에 보기에도 낡은 자동차가 기다린다. 학사님이 앞 조수석 문을 열고 의자 뒤로 손을 넘겨 뒷문을 연다. 바깥 손잡이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미카엘 신부님과 학사님, 덩치 둘이 타니까 차가 심하게 내려앉는다. 그 정도는 걱정도 아니었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시야가 트이자 내 눈이 자동차 구석구석을 살피는데, 믿거나 말거나 운행거리가 464,550km다. 계기판이 잘못되었지 싶었는데 그 순간 464,551km가 되었다. 몇 년을 탔느냐는 질문에 씨익 웃음으로 대신한다.
지난 초가을에 만났을 때도 소매 이음새가 다 떨어진 반팔 셔츠에 샌들을 신고 있었던 그였는데, 이 추운 겨울에도 같은 신발을 신고 있다.
[문산 옆 마을, 적성]
우리가 향하는 곳은 지난 수요일에 새 사제가 탄생한 옆 본당이다. 옆 동네인 줄 알았더니, 임진강변 민통선 남방 철책선을 따라 20km를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적성이라는 곳이었다. 골목길 안에 널따란 부지 위에 자리 잡은 붉은 벽돌의 단층 건물이 단아하다. 중간에 자리한 입구 옆에는 여느 성당에서는 보기 어려운 두 팔을 벌려 반기시는 예수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 발아래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요한복음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 예수상 위로 “경 금기종 (안드레아) 사제서품 축”이라 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흙바닥이었던 주차장과는 달리 성당 앞은 붉은 벽돌이 깔려 있다. 깨끗하다.
본당 건너편 교육관 안에 마련된 새 사제의 제의 방엔 하얀 제의가 속옷에서부터 차례로 준비되어 있다.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는 제의 속 가장 작은 천의 한가운데는 붉은 점이 있다. 아마도 주님의 성혈을 상징하는 듯하다. 본당과 교육관 사이로 많은 분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며 잔치를 준비한다. 차들이 속속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관광버스도 한 대 들어왔다. 멀리서 이곳 적성을 찾아오는 분들이 고맙다. 우리 미카엘 신부님처럼 혹시나 새 사제의 첫 미사에 손님이 적어 빈자리가 생길까 걱정하는 마음에 다들 먼 길을 한달음에 오신 분들이리라. 하얀 천정 아래로 긴 줄에 매달린 조명들 옆으로 지극히 소박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들이 이어져 있다.
[새 사제]
신학생 다섯을 복사로 앞세우고 선배 신부님들 네 분과 함께 성당으로 들어서는 그는 큰 키에 하얀 얼굴을 가졌다. 아까 앞마당에서 마주쳤던, 검은 수단이 어울렸던 그분이었다. 핏기 없는 듯한 얼굴과 슬픈 듯 깊은 눈을 가진 그의 얼굴은 검은 머리카락 아래에서 더없이 차분했다. 긴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한 두 손은 유난히 하얗고 길었다. 십자가에서 다시 내려오신 예수님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맑고 높았다. 미카엘 신부님처럼 낮은 C음이 아니라 목사님들 대부분이 잘 구사하는 G와 A음 사이를 오가는 소리였지만 화려하지 않고 차분한 그의 소리는 귓가에 잘 내려앉았다. 첫 미사를 앞둔 새 사제의 흥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도 그의 지난 이력 때문이리라. 전날 밤 미카엘 신부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새 사제는 신학교에 입학한 지 20년 만에 나이 마흔이 되어 이제 사제가 되었다고. 어제 그 술기운 속에서도 그가 힘들게 지나왔을 시간이 상상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무엇을 회의하였고, 무엇을 찾아 나섰으며, 얼마를 돌아서 이곳에 온 것일까?’ 자신의 본당을 떠나 길 위에서 방황하다가 이곳 적성까지 흘러 온 그는 이곳에서 자리 잡고 사제가 되었다. (나중에 미카엘 신부님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학사님들 학비를 대개는 본당이 지원한단다.) 아, 그는 오늘 어떤 기분일까? 미카엘 신부님은 오는 길에서 새 사제가 미사 중에 많이 울지 않기를 걱정했었다.
[미사 3-1]
문산만 느린 줄 알았더니 적성도 못지않다. 참회와 고백의 기도는 신자들 사이에서 박자가 맞지 않는다. 분명 손님으로 오신 분들과 이곳 신자들 사이의 박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꿋꿋하게 제 박자를 지키는 적성 본당 신자들이 당연히 이겼다. 미사는 제 박자를 찾아 다시 천천히 진행된다.
화답송의 시편 구절이 뜬금없이 마음 한가운데를 파고든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쳐 주신다.” 어제 특전 미사 때도 같은 화답송이었는데, 그때는 이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엊저녁 식사 때 미카엘 신부님 앞에서 쏟아낸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들으셨기 때문일까… 따뜻한 손이 내 등을 어루만져 주신다. ‘그래, 너의 부서진 마음을 내가 안다.’ 하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뜨거운 것이 다시 눈앞을 가린다.
[짧은 강론 2]
새 사제의 아버지 신부가 되신 적성 본당의 전 주임이셨던 김동희 모세 신부님께서 아들 사제를 위하여 강론대에 섰다.
“강론을 준비하며 인터넷에서 ‘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사제가 바라는 평신도상”이라는 글도 보았습니다. 둘 다 좋은 글이었지만 ‘이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제와 평신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공부하지 않으시는 과목이 하나 있으니 바로 ‘계산하는’ 산수입니다. 대신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눈이 머신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사제 서품은 예수님의 세례와 같은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우리 죄인들의 행렬에 들어오셨습니다. 죄인 가운데 하나가 되셨습니다. ‘나도 죄인이며 그대들을 받아들입니다.’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 밖으로 나오셨을 때 하늘이 열리며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여러분, 용기 있게 사십시오.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아멘.”
[침묵 2]
‘세상에, 미카엘 신부님 강론보다 더 짧고 강하구나. 이 분들은 대체 어떻게 공부하고 묵상하시는 분들인가?’ 이 정도 생각이 머리를 스쳤을 시간이면 대개의 신부님들은 잠시 앉으셨던 자리에서 일어나 제대 앞으로 오셔서 사도신경을 시작하신다. 그러나,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신부님 다섯 분 중 아무도 안 일어나신다. 주례 사제인 새 사제가 아직 미동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 신부님의 짧은 강론을 이미 다섯 번도 더 마음속으로 새기는 듯한 얼굴이다. 덩달아 나도 주보 위에 드문드문 받아 적은 강론의 메시지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래, 이 시간이 또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것인데… 이 신부님들은 본당 사목자들이 아니라, 영화 속 수도원에 계시는 분들 같구나.’
[헌금 2]
문산에서 본 숫자가 생각나서 봉헌 시간에 슬그머니 주보 뒷면을 본다. 주일헌금과 교무금이 문산의 것보다 훨씬 적은 액수다. 이 성당이 얼마나 작은 규모의 성당인지, 그래서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본당인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신자 수를 생각하면, 더구나 그들은 바로 옆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반경 10km도 훨씬 넘는 지역에서 먼 길을 찾아오는 신자들임을 감안하면, 봉헌 바구니로 내미는 내 손이 부끄럽다.
그들은 작은 살림에도 제대초 봉헌도 하고, 심지어 성소 후원금도 십시일반하고 있었다. 새 사제의 첫 미사 잔치상을 준비하기 위해 신자들이 두 달 동안 만두를 빚어 주변 마을에 팔았다는 전설이 성당 귀퉁이 벽돌에 새겨질 것만 같은 이 적성 본당의 신자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그런 귀한 사람들이었다.
[감사기도 1]
새 사제의 눈물을 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거룩하시도다’에 뒤이은 성령 청원 다음에 새 사제는 성체를 들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울먹이는 목소리를 멈추고 서너 번을 쉬고 난 후에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성혈을 축성하면서도 그는 여러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사제만이 할 수 있는 이 예식!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하여, 이 예식의 주례자로 저 제대에 서기 위하여 이십 년을 돌아와야 했다. 오랜 시간 스멀스멀 여기저기서 마귀처럼 올라와 괴롭혔을 회의와 번뇌들을 이겨내고 저렇게 겸손한 모습으로 이제 그가 사랑하는 신자들 앞에서 성체와 성혈을 처음으로 축성하고 있다. 이천 년 전에 광야에서 사십 일을 보낸 예수님처럼, 그는 예수를 닮기 위해 길 위에서 이십 년을 보낸 것이다. 그는 이 순간에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이 순간 오로지 하느님의 아들이다.
[미사 3-2]
새 사제 앞에서 ‘주님의 기도’를 다 함께 손잡고 바친 신자들은 응답송을 마칠 때까지도 손을 놓지 않고 차분히 그 순간을 음미하더니,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에는 옆사람과 인사하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이 자리를 떠나 멀리까지도 가서 반갑고 즐거운 얼굴로 두 손을 잡아 흔들며 서로에게 평화를 기원한다. 머쓱한 얼굴로 옆자리의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서울과는 딴판이다. 누구에게나 엄청나게 환한 얼굴로 평화를 기원하는 나조차도 이렇게 다정한 평화의 인사 앞에서는 당황스럽다.
[하느님 당신의 나의 모든 것]
미카엘 신부님이 새 사제 옆에서 성체를 나누어 주신다. 내 줄이다. 앞에 나서면서 환한 얼굴로 나간다. 그가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성당 저 뒤에서도 쩌렁쩌렁 울린다. 내가 고백하는 “아멘”도 만만치 않다. 미소 속에 미카엘 신부님 앞을 비켜 나왔지만 돌아서자마자 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방금 전 드린 기도처럼 ‘부당한 내가 이토록 사랑받다니!’
영성체 후 특송으로 성가대가 ‘하느님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을 부른다. 개교 150주년 기념으로 처음 공개했던 서울신학교에서의 신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KBS의 다큐멘터리 “영원과 하루”에서 처음 듣고 반했던 노래다. ‘죄 많은 인간이 무엇이기에, 오 주여, 이토록 돌보나이까’라는 가사는 언제라도 마음속에서 폭풍 같은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 폭풍이 금방 사라지는 것이 항상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강복]
새 사제는 장엄 강복을 주셨다. 더 깊이 고개를 숙일수록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양, 허리를 굽힌 머리 위로 새 사제의 강복이 울렸다. 세 구절의 경문을 받아 적지 못해서 여기에 다 옮기지 못하지만, 새 사제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축복을, 그 사랑의 모습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그래서 그분의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셨다. ‘세상에, 장엄 강복을 알아들은 적이 언제였던가!’
[감사기도 2]
새 사제를 위한 축하식이 미사 후 간단히 진행되었다. 사제서품 40주년이 되신, 의정부교구에서 가장 연장자이시며 적성 본당이 의정부교구 소속이 된 후로 첫 주임을 맡으셨던 조원행 야고보 신부님을 비롯하여, 김동희 모세 신부님, 현 주임신부이신 권혁동 세례자 요한 신부님, 그리고 나의 친구 김준영 미카엘 신부님이 차례로 인사말씀을 건네셨다. 공소 50년, 본당 승격 20년 만에 첫 신부를 내신 기쁨을 나누는 자리이니 만큼 다들 하실 말씀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이 분들은 딱 30초씩 마이크를 잡으셨다.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감사하다’는 말씀들 뿐이다. "새 사제가 태어나서 감사하고, ......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고, ...... 본당 신자들이 아낌없이 후원을 해주셔서, 멀리서 축하해주러 와 주셔서, 없는 살림에 잔치 준비하느라 고생하셔서, 부모님께서 잘 키워 주셔서, ...... 축사를 하신 총회장님께서 그나마 축사답게 길게 말씀하셨는데, 그도 새 사제에게 도리어 감사하다는 말뿐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는데, 적성 본당의 신자들이 새 사제를 위해 지난 몇 년간 함께 드린 기도의 일부란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소서.”
마이크를 받은 새 사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다음으로 신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네 분의 선배 사제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드렸다. 미사 중 평화의 인사 때에 제대에서 내려가 부둥켜안았던 부모님께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새 사제는 놀랍게도 다시 한 번 네 분의 선배 사제들에게 돌아가며 다시 한 번씩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들은 모두 감사 이외에는 배운 말이 없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미사를 한 번 더 드리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성구(聖句)]
새 사제가 자신의 서품을 기념하고 사제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은 성구를 소개한다. 코린토 2서 4장 18절의 말씀이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그가 쓴 글을 여기 옮긴다.
“찬미 예수님! 저는 새 신부 금기종 안드레아입니다. 그런데 저는 늙은 새 신부입니다. ‘늙음’과 ‘새로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말이 저에게 공존합니다. 저는 동기 사제들에 비해 나이로는 늙었고, 이제 막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에서는 새롭습니다. 육적으로는 늙었고 영적으로는 새롭습니다. ‘보이는 것’에서는 늙었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새롭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보이는 늙음’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에만 연연했던 지난날의 삶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보이는 것’에 집착했던 지난 삶에 대한 성찰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모종(某種)의 깨달음이 저를 사제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저는 제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남들이 사는 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가는 길이 좋은 길인 줄 알았습니다. 그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삶에 대한 회의로 몸서리치던 그즈음에, 한밤중에 갑자기 아프신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침대 옆에는 고등학생쯤 되는 아이가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는 듯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신부님이 오셔서 아이에게 병자성사를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강렬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생명의 주관자는 의사가 아니라 하느님이다. 아이는 죽겠지만 하느님이 아이를 영원으로 이끄신다.’ 그때만큼 하느님을 친밀하고 선명하게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2 코린 4,18)”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가까이 있고 싶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에 가치를 두고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살이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여정일 뿐입니다. 이 여정에서 ‘보이는 세상 것’에 연연하고 집착하며 살기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고 산다면, 우 리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미리 맛보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너를]
성가대가 축송으로 드린 노래 선물은 “아무것도 너를”이라는 성가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으로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이십 년을 돌아온 길 끝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글이 있을까?
[성가대]
그러고 보니 저 성가대 이야기를 빠트릴 뻔했다. 형제님 두 분, 자매님 여덟 분으로 구성된 이 작은 성가대는 진정 하늘의 군대처럼 쉼 없는 찬양을 한다. 노랫소리가 우렁찬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신앙의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미사와 축하식이 모두 끝나고, 새 사제는 신자들에게 안수를 주었다. 미사 전에 미리 안수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가운데 통로로 나와 두 줄로 섰다. 줄은 본당 밖으로 이어졌다. 새 사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에 그 기다랗고 하얀 손을 얹어 정성스레 기도하기 시작했다. 성가대는 성령 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음 곡으로, 다음 곡으로… 그러기를 안수기도가 이어지는 40 여 분을 쉬지 않고 노래했다. 백 명도, 쉰 명도, 서른 명도 아닌, 단 열 명이. 그 와중에 형제님 둘이 테너와 베이스를 나누어 부른다. 서로 음을 따라가서 틀리는 일도 없다. 엇박자로 둘이 번갈아 나오는 경우도 딱딱 맞는다. 적성 본당 신자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성찬 2]
마침내 기다리던 잔치 시간이다. 교육관 한편에 붙어 있던 서른 평 남짓한 슬레이트 지붕 가건물 식당에 잔치상이 펼쳐졌다. 첫 미사를 지내고 나면 발령받은 새 임지로 떠나야 하는 새 사제를 위한 적성에서의 첫 잔치이자 마지막 잔치이다. 흰밥에 육개장 한 그릇, 부침개 몇 가지, 멸치 고추볶음, 매운 게장, 김치, 파래무침, 튀김 몇 가지, 도토리묵, 버섯나물, 그리고 불고기 한 접시가 전부였다. 상마다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 그리고 사이다 한 캔이 마련되었다. 신부님들과 부모님들께서 앉으신 상에는 미사 주로 쓰이는 마주앙 와인이 준비되었다.
사제가 된 이도, 사제를 키운 이들도 모두 지난 시간이 수월치 않았기에 그들이 마련한 잔치는 소박하지만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이 소중한 잔치였다. 난 그 잔치에 한 귀퉁이에 서서 이천 년 전에 있었던 가나의 혼인잔치를 보았다. 일일이 감사를 전하며 새 사제가 손님들에게 따르는 술잔은 마르지 않았다. 그 기쁜 잔치에 어느 상에는 불고기가 없기도 했고, 어느 상에는 다른 상에 없는 무언가가 더 올라 있기도 했지만, 누구도 남의 몫을 탐하고 제 몫을 더 챙기려 하지 않았다. 장식이라고는 천정 아래 매달린 색색의 풍선이 전부인 이 잔치집에 단일 품목으로는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했을 것만 같은 작고 소박한 이단 케이크가 등장했을 때 잔치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 케이크가 얼마나 작은가 하면, 다섯 명의 신학생들이 한쪽씩 먹고 나니 반이 없어졌다. 주보 3면에 실린 새 사제의 글 아래에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소개되어 있었다. “말이 아니라 참된 신앙에 뿌리를 둔 삶으로 ‘눈먼 이에게 눈’이 되고 ‘다리저는 이에게 다리’가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서울에서는 찾기 어렵던데 이곳 파주와 적성에는 어째 이리 많은가?
[돌아오는 길]
내가 집으로 돌아갈 길을 재촉해야 하는 줄 아는 미카엘 신부님은 다른 신부님들과의 아쉬운 시간을 뒤로 한 채 먼저 잔치집을 떠나기로 했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임진강의 마른 강물 위로 겨울 햇살이 부서졌다. 그리스도인들은 잔잔한 바람, 졸졸 흐르는 시냇물, 흔들리며 소리 내는 나뭇잎들, 따스한 햇볕, 부서지는 햇살과 같은 것에서 하느님을 보고 느낀다. 별생각 없이 집을 나선 이후로 뜻하지 않았던 하룻밤을 보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분께서 내 부서졌던 마음을 고쳐 주셨음을 안다.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정신줄 놓고 꾸벅꾸벅 졸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는 증거였으리라. 자주 오가지도 않았던 그길의 환승역인 대곡역에서 잘도 맞추어 잠을 깨워주신다. 이 기차 속 누구도 내가 어디를 다녀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어제는 나도 내가 어디를 가야 하는지 몰랐었다.
[다른 떠남]
저녁에 후배의 장모상에 문상을 다녀왔다. 미카엘 신부님의 강론이 다시 떠올랐다. 머무름과 떠남.
[마흔 중반의 성장통]
오후 늦게부터 등허리 아래가 욱신거리는 듯하더니 문상을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온몸이 쑤시는 몸살기가 난다.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이제 몸도 긴장을 내려놓았나 보다. 나이가 들어 몸이 자라지 않아도, 마음이 자라야 할 때엔 성장통을 겪나 보다. 체온계가 38.9도를 가리킨다. 그래, 나쁘지 않다. 내 백혈구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구나. 한 달 여 전에 씻고 썰어서 꿀에 재워 두었던 생강차를 마셨다. 내의를 겹쳐 입고 극세사 담요도 꺼냈다. 수면양말도 신었다. 9시 38분이다. 흠뻑 젖도록 땀을 흘리며 잘 자고 일어나면 나는 또다시 새로운 날을 선물 받을 것이다. 내가 살아야 할 날들 중에 가장 젊은 날이다.
아멘.
2015년 2월 10일
(표지 사진은 스위스 루쩨른의 예수교회(Jesuit Church)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