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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禁酒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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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May 13. 2016

백년해로 (百年偕老)

禁酒 Day 27

20160512


    禁酒 27일째, 점심과 저녁에 옛 동료들을 만나서 유쾌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저녁을 함께 한 선후배들이 짓궂게 놀리기는 해도 술은 권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여기 전합니다.


    禁酒와 禁煙은 따지고 보면 건강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건강하게 오래 잘 살자는 바람이 바탕에 깔려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대화 중에 '백세시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백 년을 산다는 것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명약관화하기에 따져 볼 이유가 없습니다.


    아래는 오늘 아침 조선일보의 [만물상] 칼럼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만물상] '졸혼(卒婚)'
마하트마 간디는 서른일곱 살에 아내에게 '해혼식(解婚式)'을 제안했다. 아내는 고민 끝에 동의했다. 해혼한 뒤 간디는 고행의 길을 떠났다. 결혼이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것이라면 해혼은 혼인 관계를 풀어주는 것이다. 부부가 불화로 갈라서는 이혼과는 다르다. 하나의 과정을 마무리하고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인도엔 오래전부터 해혼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부부가 자식 키우며 열심히 살다 자녀가 결혼하면 각자 원하는 대로 사는 방식이다.
몇 년 전 은퇴한 언론인은 경상도 고향으로 돌아간 뒤 아내에게 "해혼 생활을 하자"고 했다. 각자 하고 싶은 일 하며 간섭하지 말자 했다. 아내는 남편이 멋대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줄 알고 펄쩍 뛰었다. 남편 생각은 달랐다. 자기는 시골 생활에 익숙하지만 도시 출신 아내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편 신경 쓰지 말고 친구 만나고 여행도 다니라는 배려였다. 그는 "늙어 이혼하지 않으려면 해혼하라"고 권했다.
일본에 '졸혼(卒婚·소쓰콘)'이 늘고 있다고 한다. 2004년 책 '소쓰콘을 권함'을 쓴 스기야마 유미코는 졸혼을 이렇게 정의했다. '기존 결혼 형태를 졸업하고 자기에게 맞는 새 라이프 스타일로 바꾸는 것.' 스기야마 부부는 걸어서 25분 떨어진 아파트에 따로 살며 한 달에 두어 번 만나 식사한다. 원래는 전형적인 모범 부부였지만 아이들이 자라자 달라졌다. 시간 맞춰 같이 밥 먹고 가족 여행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결혼 틀은 유지하되 각자 자유롭게 살기로 했다.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남이 안 보면 갖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했다. 부부나 가족은 너무 가깝기에 서로에게 거는 기대도 너무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리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당신 없이 못 산다"는 말처럼 상대를 붙들어 매는 얘기도 없다. 우리라고 다를 리 없다. 서울에서 황혼 이혼(27%)이 신혼 이혼(25%)을 앞지른 게 벌써 5년 전이다. 50~60대 남녀 절반이 "남은 인생은 나를 위해 살겠다"고 한 여론조사도 있다.
주례는 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며 살라"지만 평균 기대 수명 60세 시대와 100세 시대 결혼은 같을 수가 없다. 생을 접는 순간까지 기존 방식 결혼에 매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늘 수밖에 없다. 해혼, 졸혼, 해마다 갱신하는 장기 계약 결혼처럼 갈수록 새로운 '만년(晩年) 결혼'이 생겨날 것이다. 결혼의 의무를 다한 뒤 각자 살며 서로를 친구처럼 지켜보는 것도 '백년해로'라고 부를지 모른다.

    한편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왜 실었냐, 지금 이게 좋다는 거냐, 이걸 장려하자는 얘기냐......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거 참 괜찮은 제도구나, 나쁘지 않겠다...... 뭐,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죠. 그렇게 따지기 이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만히 내버려두면 세상이 그냥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어나는 황혼 이혼만 하더라도 좋고 나쁨을 떠나서 엄연한 현실이 되어버렸으니 말입니다.


    양력으로 동갑내기인 저와 아내가 백 살까지 살면, 딸은 일흔셋, 아들은 예순여섯이 됩니다. 여태껏 후배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찍 결혼하고 일찍 출산하라고 했던 제 생각이 바로 흔들렸습니다. '조금 늦게 낳아야겠구나...... 25~30년이 아니라, 이제 35~40년이 한 세대를 나누는 기준이 되어야겠구나...... 요즘 젊은이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을 늦게 한다고 하지만, 결국 백세 시대에 적절한 선택일 수도 있겠구나......'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마흔에 아이를 낳아도, 제가 백 살이면 그도 예순입니다. 백 살이 되었을 때, 자녀가 일흔인 것과 예순인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삶의 지혜가 겹겹이 층층이 쌓였어야 할 나이에 부부가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없어서 각자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 따로 살겠다면 처음부터 함께 살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남이 안 보면 갖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배우자라면 일 분 일 초도 함께 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설령 해혼(解婚)이나 졸혼(卒婚)을 제안해 온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과의 인연은 애초부터 없던 것으로 만들고 싶을 겁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기적인 사람은 진정한 부모가 되기 어렵고,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진짜 어른이 되기 어렵고, 그 결과 향기 나는 인생을 살다 가기 어렵다고 믿습니다. 앞서 몇 번에 걸쳐서 썼습니다만, 제가 禁酒하는 이유가 비단 신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 스스로에게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마음도 건강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반듯한 인격을 세워 향기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반듯한 정신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존경하는 마음, 아끼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 이런 좋은 마음들은 모두 반듯한 정신의 밭에서 자라는 열매입니다.  禁酒가 올바르고 온전한 정신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보증수표는 아닐지라도, 분명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초등학교 때 반공 표어들과 나란히 걸려 있던 표어가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었습니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주인공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그토록 애틋하게 사랑하며 장수하신 것은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건전하였기 때문이 틀림없습니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나이 백 살에 딸아이 일흔셋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여든서넛에 돌아가셨을 때 외삼촌들은 환갑이 넘으셨더랬습니다. 친할머니께서 아흔셋에 돌아가셨을 때 큰고모님과 둘째 고모님은 일흔이 넘으셨죠. 제 아버지께서 백 살이 되시면 저도 일흔이 됩니다. 그게 당연한 거네요. ^^  


    일흔여덟의 연세에도 식스팩을 자랑하시는 아버지를 닮으려면 禁酒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표지 사진은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한 강계열 할머니(왼쪽)와 조병만 할아버지입니다.)



아래 링크는 같은 매거진, "禁酒日記"의 이전 글입니다.

https://brunch.co.kr/@6901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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