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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창 Apr 05. 2016

아픔을 딛고 자라는 행복

in America

영화는 평범하게 시작하는 듯했지만, 이내 제 마음이 긴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일랜드를 떠나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는 이 가족에게 미국의 국경 출입국관리들이 세계에서 가장 기분 나쁜 특유의 취조식 질문과 함께 항상 따라오는 의심품은 눈초리를 쏟아내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제가 좋아하는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소설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오주현

아메리칸드림의 도시, 뉴욕의 후미진 한구석에 구한 낡아빠진 아파트에서 이 네 식구의 미국 생활이 시작됩니다. 깨진 유리창들을 통해 빈 집에 들어와 살던 비둘기들을 내보내고 남편과 아내는 두 딸과 함께 가족의 공간을 만들어 갑니다. 가난하기만 가족은 정말 사는 것이 궁핍합니다. 주변 환경은 험하기만 하고 같은 건물의 이웃들은, 마테오와 아이스크림 가게 여주인을 제외하면, 너나없이 변태와 마약쟁이 같은 부류들입니다. 대략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적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족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뇌종양으로 일찍 죽은 막내 프랭키와 뉴욕에서 임신하여 새로 태어날 아기가 있습니다.

 ©오주현

그런데 경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 가족이 삶의 행복을 꿋꿋하게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서 들려주는 것은 큰 딸 크리스티입니다. 중간중간 내레이터를 역할을 통해서 가족과 프랭키의 관계, 부부와 두 딸의 관계, 가족과 이웃, 특히 마테오와의 관계를 어린아이답지 않은 성숙한 모습으로 담아냅니다. 크리스티가 프랭키에게 마지막 소원을 부탁하는 장면은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보듬어 내기 위해 절제해 왔던 사랑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가족을 옭아매고 있었던 막내 프랭키에 대한 기억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크리스티가 프랭키에게 마지막 소원을 말할 때 비로소 가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이별할 수 있었습니다. 지구에서는 살 수 없었던 ET가 자전거를 타고 달을 지나 집으로 가듯이 말입니다.

 ©오주현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Dedicated to Frankie Sheridan”이란 헌정사를 보고는 궁금해서 찾아보니, 영화는 감독인 Jim Sheridan가족이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짐과 두 딸이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Frankie는 열 살에 세상을 떠난 감독의 동생이고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아일랜드 태생인 짐은 1982년에 미국으로 건너왔고, 이 영화는 2002년에 제작하였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 “ET”는 1982년 최초 상영되었고 2002년에 재개봉되었으니, 짐은 영화 “ET”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거나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주현

그러고 보니, 이틀 연속 Samantha Morton이 출연한 옛 영화를 보았네요. 바로 전날에 “Minority Report”를 보았거든요. 물속에 반쯤 잠겨서 미래를 예건하는 Precog들 중 Agatha가 바로 사만사입니다. 사만사는 2002년 개봉된 이 두 작품을 통해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상복을 과시하며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구축합니다. 사만사의 두 딸로 출연한 Sarah Bolger와 Emma Bolger는 실제 자매인데, 비평가들로부터 천재의 탄생이라는 호평을 받은 사라는 결국 배우가 됩니다. 곧 개봉하는 “Kiss me”에 출연했다니 기대가 됩니다.

 ©오주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욕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의 흐름을 따라 힘겨운 삶들이 묻어나는 골목들의 속살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흔히 보아 왔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월스트리트, 센트럴파크보다는 Hell’s Kitchen이라 불리는 Midtown West의 험하고 끈적거리는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가족을 짓누르는 아픔을 잊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온 뉴욕은 한순간도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휘황찬란한 뉴욕의 밤거리는 그 뒷골목을 살아내야 하는 가족에게는 고통만 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권유마저 뿌리치고 받아들인 인내의 터널 끝에서 가족은 고통을 떨쳐 일어나 새희망을 보게 됩니다. 그제야 잔인하던 뉴욕의 야경은 환한 보름달 아래에서 가족들의 품으로 들어옵니다.

 ©오주현

우리나라에서는 ‘천사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2004년에 개봉되었던 이 영화를 본 후에, 제 사진첩을 샅샅이 뒤져 그나마 제 영화 감상에 어울릴 듯한 사진 몇 장을 겨우 찾았습니다. 수십 번 갔던 뉴욕의 밤 풍경을 제대로 찍어 둔 사진이 없어서, 이제라도 혼자 삼각대 메고 다시 가 봐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브루클린 다리 건너 강변에서 삼각대 세워 놓고 한 서너 시간쯤 보내야 하는데, 집사람이 친구해준다면 더없이 고마울 겁니다.

 ©오주현


2013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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