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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Jun 21.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8. 무엇을 해야할까?

23살, 난생 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https://youtu.be/EJjzKs-WAnA

오늘의 영상





무엇을 해야할까? 할 일이 너무 많을 때와 없을 때 모두 내 머리를 지배하는 생각이다.

어쩌면 내가 지배 당하기 쉬운 말이다. 두 가지 상황 모두에서 나는 순간 막막하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낀다. 사실은 이 부담 때문에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는 것일 수도. 어쨌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무엇이나 해도 이상하지 않은 이곳에서는 자주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필연적인 공간이자 기회인 것 같기도 하다.



파티의 흔적

요즈음 이런 감정들이 정리되게 도움을 주는 것은 놀랍게도 룸메이트들이다. 조금 웃기긴 하다. 내 머릿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가장 위안이 된다니. 그들은 나보다 조금 어리고, 조금 활발하며, 조금 멋대로다. 그런 그들은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하고, 어쩌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것이 지배 당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매일 늦은 밤, 레드 와인을 한 잔씩 들고서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곤 하는 그 시간마다, 마음이 가는 것이 곧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럼 이제 나에게는 마음이 향하는 곳을 막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마음이 시키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었다. 애늙은이처럼, 현실을 잘 인지하는 편이랄까.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도, 자주 듣지 않는다. 결국 질려서 이 노래를 싫어하게 될까봐.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잘 참을 수 있었다. 이걸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답답하고 철든 생각으로. 그런 사람이라서 이 사회에서 잘 살아남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치만 이런 답답함이 몰려올 때면 어쩔 줄 모르겠다. 가끔은 솔직하게 좋아하는 것에 몰두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책망하기도 한다.






그냥 좋아하지 그랬어, 왜 마음을 막았어.

나를 막아서던 철든 나를 밀쳐내고 뛰어가지 않았던 나를 기억한다. 막아선 나보다 더 큰 가능성이 있었을 수도 있던 그 아이를, 쉽게 낙담시킨 것에 미안하다. 눈 앞에 많은 일들을 보며 주저 앉고 돌아서던 그 아이를 기억한다. 사랑하는 것에 솔직하지 못하던 나를 떠올린다. 안쓰럽다.

미련이 남은 눈으로 좋아하는 것을 몰래 보곤 하던 나는, 결국 애매해지고 만다. 애매하게 착하고, 애매하게 열정적인.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무엇을 해야할까, 애매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이 질문은, 세상에서 제일 모호하다. 마치 나처럼 끝없이 중립적이다. 질문에 대한 대상마저 없이 그저 '무엇'으로 통칭되는 물음표다.




사랑하는 샌디에이고의 선셋

내가 해야하는 일은, 이 물음표를 그저 인지하는 것.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어야 한다는 압박마저 잊어버리는 것. 다시 철이 없는 그들이 되는 것. 울고, 웃으며 와인 한잔과 춤을 추던 그 날 밤에 사는 것.


그래서 나의 루틴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하던 것을 안하고, 안하던 것을 해보는. 요즘에는 오래 집에 혼자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미워하기도 하고, 늦게 잠이 들곤 한다. 나에게는 일종의 일탈이다. 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의 일들. 나를 낭비하고,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던 일들. 독처럼 느껴지던 그런 일들을 조금 하더라도, 큰일이 생기지 않더라. 세상을 보는 시선에 조금의 다양성을 주는 것 같기도. 큰일이 생기지 않는 요즘은 그래서 밀어내던 철 없던 나에게 주는 뒤늦은 위로라 생각하고 있다. 금요일 밤 같은 나날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에 든다. 매일의 금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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