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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Jun 03.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4. 나의 하늘색

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https://youtu.be/YfIxML1SoZg

오늘의 영상




날씨가 나에게 주는 영향은 실로 크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몰랐다. 어쩌면 매일 회색빛의 하늘을 마주하고 있어서 파란 하늘이 주는 즐거움을 잊었을 수도.

요즘 샌디에고 답지 않게 비가 자주 오는데, 그럴 때는 괜히 센치하고 차분해진다. 그럴때면 서울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샤워실에서 청승을 떨면서 울었던 적도 있다. 답지 않은 날씨 탓을 하며, 나도 답지 않아지는 것 같다. 괜히 하늘 핑계를 대면서 쌓여있던 그리움을 조금 내보내는 걸로 대충 넘어가자.

그치만 하늘이 파란 날에는 그냥 앉아서도 들뜬다. 금방 일어나 어딘가를 가고, 하늘 사진을 찍고, '예쁘다'를 연발하며 눈에 담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이 신기하고, 너무 아름다워서 놀랍고, (거의) 매일 마주하는 그 하늘에서 나름의 규칙성을 찾아내기도 한다.


티후아나랑 가까운 곳의 하늘

어제는 저 하늘을 보면서 막내랑 지역별로 조금씩 달라지는 하늘에 대해 공감했다. LA는 보랏빛, 샌디에고는 핑크빛, 티후아나는 주황빛. 같은 하늘도 주로 지니는 색이 달라진다는 걸 느낀 이후로는 매일 마주하는 하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조금 더 특별하고, 그래서 더 소중할 것 같은 느낌. 서울에 돌아가면 서울은 무슨 색인지 봐야겠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가득한 서울의 색을 정작 모른다는 것에 놀랐다. 빛이 많은 도시라 색을 잃진 않았을까, 또 먼지들에 잠식되어서 어렴풋이 보이는 하늘일까, 걱정도 되지만 그만큼 기대도 크다. 사랑하는 것들을 끌어모아 서울의 하늘을 보고 그 색을 기억하고 싶다.



오늘의 선셋을 기다리며

오늘도 친구들과 석양이 예쁘다는 곳에 가서 하늘을 보기로 했는데, 벌써 설렌다. 조금 걸어가면 바다가 보이는 패러글라이딩 스팟이 나온다. 잔디가 넓게 펼쳐지고, 파라솔이 몇 개 있는 절벽이다. 절벽 아래로는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바다와, 부서지기 직전인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거대한 수평선이 보인다. 그 수평선을 방해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엄청난 직선 위로, 또 거대한 하늘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하늘색 색지처럼, 구름도 없이 그저 파랗다. 그치만 해가 점차 수평선 쪽으로 내려가면 달라진다. 채도가 높은 색은 모두 모아놓은 것처럼 엄청나게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눈을 깜빡이는 찰나도 아까울 정도로 매번 그 색이 바뀐다. 그걸 보다보면, 순식간에 해가 사라지고 없다. 이미 가버린 해지만, 그가 남겨놓은 빛으로 아직 세상이 좀 밝을 때 까지 하늘을 계속 멍하니 바라본다. 그때의 색은 더 아름답다. 해가 가고, 어둠을 맞이하는 순간이 상징적이라서 그런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져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게 된다. 바닥에 깔아둔 비치타올을 챙기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든다.



Torry Pines beach

그 순간엔 눈은 달을 좇는다. 달을 보며 소원을 한 번 빌며 사랑하는 것을 떠올린 후에는 길을 걷는다. 무서움에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한다. 빨리 걷다가도 조금 안심되는 곳에 다다르면, 다시 하늘을 본다. 별이 떠 있다. 한국에서는 깊은 시골로 들어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많은 별들에 또 압도 당한다. 몇 번이나 카메라로 담아보려 했지만, 잘 안된다는 것을 경험한 이후로는 그저 눈으로 기억한다. 별 하나하나,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거대한데 이렇게 작게 보여지는 것이 안타까워서, 더 밝은데 자신의 빛을 보여주지 못하는게 안쓰러워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의 연속을 보고 돌아오면, 마음이 충만해진 기분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라는 부족한 사람을 향했다는 이유로 돌려받지 못한 마음들을 불러세우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또 멀리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것들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삶에 사랑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이기적이라 느낄 수 없던 사랑을 기억하게 하고, 그런 마음으로 그들을 다시 사랑하게 한다. 이런 모든 예술품들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잠든다.




해가 완전히 가고 난 후

이런 일상 때문인가, 지금의 나는 전보다 조금 나아진 느낌이다. 좋아한다는 마음을 조금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가는 중이다. '자존심'이라는 말로 솔직한 마음을 가로 막던 것이 조금 얇아진 느낌이다. 좋아하는 것을 그저 좋아하는 것, 어쩌면 사랑하는  영역까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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