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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May 31.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3. 피곤한 사람의 쇼핑

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https://youtu.be/e3 ZXHurjR6 k

오늘의 영상




사진은 미션 비치를 지나던 길

오늘은 진짜 한 일이 쇼핑밖에 없는 날인데, 택시 기사님이 인상 깊어서 글을 대강 써본다.

처음엔 피곤한데 자꾸 노래 크게 틀고 말을 시키시는 기사님이 귀찮았다. 하지만 막상 대화를 나눠 보니 조금 놀라운 것들이 있었다.

기사님이 "한국에서의 삶은 보통 어떤 형태야?" 하고 질문했을 때부터, 귀찮다는 느낌이 사라졌던 것 같다. 꽤 심도 있고 생각해 봐야 하는, 깊은 질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나의 삶은 어떤 형태였을까, 가볍게 고민하고는 'tough'하다고 말을 쏟아냈다.


대학을 나와도, 열심히 해도 원하는 직업을 얻기 어렵다고, 심화된 경쟁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회라고.

"가족들은 하지만 좋은 직업을 갖고 잘 살기를 바라지. 너에게 좋은 기회를 기대하는 가족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만, 가끔은 부담으로 해석될 때도 있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 심화된 경쟁 안에서 살아가는 거 자체가 부담이라기보다, 그런 사회 안에서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평가받는 것이 힘든 것 같아."

말 그대로, 쏟아냈다. 내가 늘 하던 생각이었으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캘리의 삶은 어떤 형태인지 물었다. 의외이고 단순한 대답이었다. 행복하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에 살면 행복하겠다-'라고 잠시 생각한 적은 있지만, 누군가가 행복하다고 하는 말은 정말 오랜만에 듣는지라, 잠시 동안 찌릿했다. '뭐지? 진짜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거짓말 아니야?'라고 생각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왜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택시 기사라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쉬운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3명의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흑인 여성으로서, 이 정도의 삶을 유지하기 쉬운 곳이라고 했고, 그래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다. 또다시, 작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그것 이상을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미국에 오고, 쇼핑을 하며 큰돈을 써버리고, 몇 년간 시험을 준비하는데. 뭐가 맞는 건지 문득 헷갈렸다.


저런 삶이 사실 맞는 건가?


내가 맞는 것도 같고, 안분지족과 유사한(...) 형태의 삶을 사는 기사님도 맞는 것도 같았다.

경쟁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뭔가를 해내려고 아등바등하는 나의 삶과, 주어진 상황에서 만족하며 사는 기사님의 삶. 진짜 둘 다 맞는 걸까?

몇 년이 지나도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은 물음표만 또 가득이었다.


더불어 '흑인 여성'이라고 본인을 지칭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많은 의미가 함축되었다고 느꼈다.

나는 기사님이 [주어진 상황 - 내가 사회적으로 약자인 존재라는 것 - 에 적응하고, 현실적인 선에서 안주하는 것]을 '행복'이란 단어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처음엔 행복이라는 단어가 쉽게 입으로 나온 다는 점이 부러웠는데, 여기에 생각이 다다르자 부러움은 안쓰러움으로 변했다. 현재의 상황을 행복으로 칭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을지, 감히 예상할 수도 없었다.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나의 생각은 사실 그녀에 대한 내 추측이었으니까,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도 없었다.

"I see." 정도로 급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내 동정과 고민을 그녀는 몰랐길 바란다.


사실 기사님은 어릴 적, 발레리나가 꿈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고.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럼에도 자신은 지금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다고 했다.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봤다. 꿈이 세상에 의해 조금씩 너덜거리고 마는 인생을, 보호자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아이들의 나약한 원죄를.


멕시코와 거리상으로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더러워지는 건물과 길을 봤다. 마음이 착잡했다. 설국열차의 칸 마다 그 안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구분 짓고, 구분 지어지고, 그래서 상처받고, 결국엔 안주한다. 그 기준이 성별이든, 경제적 수준이든. 두 가지의 구별 모두가 머릿속에서 혼재되었다. 피곤한 느낌이었다. 잠이나 자고 싶었다.


펄럭이는 멕시코 국기와 그 옆에 몸을 조금 흔들다, 작은 사탕을 건네며 그게 자기 아이들과 본인의 '행복 비법'이라고 말하는 기사님 때문에도 그럴 수 없었다. 행복을 재단할 수는 없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주어진 틀 안에서만 행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너무 명확해 보여 슬펐다. 주제넘은 건 알지만 안타까웠다. 우리는 작은 사탕에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작은 사탕에만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닌데. 예상치 못한 직업인 택시 기사로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발레리나가 되어도 참 행복했을 텐데. 시대와 돈은 뭔데, 우리의 행복의 수단을 결정하는 걸까.


어릴 적 피아노를 좋아했다던 엄마가 생각났다. 지금은 회사로 매일 출근하며, 이 정도의 보수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며 웃던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 나는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랐어요. 엄마는 행복하다지만, 엄마의 행복이 나로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아요. 엄마는 피아노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인데, 세상이 건반이 아니라 내려놓기만 하던 울어대던 애기 하나만 손에 쥐여줬죠? 난 나의 원죄가 그거라고 생각해요.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엄마의 행복의 방향을 정해버린 것. 어쩌면 내가 미국으로 온 것은, 엄마처럼 대단한 어른이 되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욕구를 희생하며 주는 사랑, 그런 큰 사랑을 부담으로 해석해서, 도망쳐 나오고 싶어 해서 미안해요.

미국에 오면 엄마가 보고 싶기만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무치게 그리웠다. 기사님이 준 사탕을 받아 들고는 더더욱. 울컥하는 느낌에 눈을 더 세게 감았다. 옆에 있던 언니가 피곤하냐고 물었다. 간단히 답했다.


"응. 좀 피곤하네"




가게 메뉴판

내려서는 3일 동안 노래를 부른 타코 집에 들어갔다.

빼놓을 수 없는 마가리타.

마시면서 앞서 했던 피곤한 생각들을 좀 잊었다.

스페인어를 주로 하는 점원들이 있어, 영어로 소통이 잘 안 되었다.

오히려 그런 (생각보다 당황스러운) 상황이 멕시코로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을 줘서, 마가리타보다 피곤한 생각을 잊게 하는 것 같았다.

말은 안 통하지만, 음식이 우리 입에 맞는지 계속 신경 써 주는 따뜻함에 웃을 수 있었다.




(( 그리고 한국에서 한여름 옷만 갖고 온 바보는 가을/겨울 옷을 구매했습니다.... 사실 이게 오늘 외출의 목적이었죠...


생각보다 그늘에 있으면 낮에도 쌀쌀하고, 밤에는 추운 날씨라 견딜 수 없다는 핑계 하에 소비를 조금 (많이) 해 보았는데요. 하루에 사계절이 있는 캘리포니아는 옷 하나 사기도 적당한 걸 고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많다가도 뒤돌아서면 단순하게 소비하는 나 자신이 한탄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손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다는 말이 이런 느낌인가 했습니다.....


모순적인 나 자신을 마주한 순간이었습니다..... ))




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석양. 야자수 뒤에 있으니 더 이국적이다. 실루엣만 보이는 야자수도 멋지다.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 거랑은 느낌이 또 다르다. '야자수가 익숙해지는 순간도 올까' 생각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최근에 그럴 일 없다고 단언했던 일들도 많이 실현되어서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그게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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