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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May 27.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1. 서울 탈출

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https://youtu.be/aXZ_DX99LMY

이 날의 기록이 담긴 영상



내가 타고 갈 비행기가 보인다.

오늘은 LA로 출국하는 날인 동시에, (현지 시간으로) LA에 도착하는 날.

공항으로 나서는 길이었다. 전날 밤은 분명 아쉬움으로 서럽고, 한 순간과 한 찰나마저 아까운 순간들이라고 느껴졌었다. 하지만 공항으로 나서는 길은 그냥 정신이 없었다. 오랜만에 외근을 가는 기분이랄까.

아침은 바빴고, 벅찼고, 덤덤했다.

일어나 머리를 감았고, 미리 챙겨둔 짐에 몇 가지를 추가했고, 차를 차고 출발했다.

가서는 팬데믹을 일으킨 병에 걸리진 않았는지 확인했고, 밥을 먹었고, 6개월을 지낼 기숙사 비용을 납부했다.

공항의 새하얀 벽과 바닥 때문인가, 모든 과정에서 무엇도 거슬리지 않게 느껴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나 혼자 문을 통과해야 했던 그 순간이 왔기 때문에.


뒤돌아 봤을 때 문 앞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던 부모님을 보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괜히 더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뛰어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양 옆을 포함해서, 앞 뒤를 둘러봐도 아는 얼굴은 없었다. 온전히 혼자임이 실감 나는 대목이었다.


사람이 적어 한적한 공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했다. 미국행을 아쉽게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보고 싶을 거라는 의미의 전화였고 - 잘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 그래서 조금 울기도 울었다.

두고 온 사람들이 애틋해서, 벌써 보고 싶어서, 하고 싶던 말들을 또 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2주간의 여행이었다면, 누구보다 빨리 떠나고 싶어 했을 것이다. 비행이 얼른 시작되기를 바라고, 설레는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에 발을 동동 굴렀을 것이다. 하지만 반년이 넘는 시간이라니, 아쉬움에 핸드폰을 놓을 수 없었다. 승무원 언니가 다가와서 곧 이륙한다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핸드폰을 넣고서 창 밖을 봤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늘 싫어했지만, 서울을 이루던 수많은 사람들은 늘 사랑해왔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강하게 느껴졌다. 진한 아쉬움, 슬픔이 몰려옴과 동시에 조금 무서웠다.




떠나기 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인턴으로) 일했고, 오래 여행도 가지 못했던 상황이라 훌쩍-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늘 서울을 탈출하고 싶어 했던 나임에도 막상 혼자 떠나려니 두렵고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혼자 어딘가로 간 경험은 없었다. 항상 내 옆에는 든든한 동행이 있었다.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 있던 상대들이 고개만 돌리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모든 일을 내가 혼자 처리해야 한다는 무섭고도 짜릿한 순간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된다니! 무엇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캘리포니아라니! 거기서의 내 시간들은 어떻게 될까? 시간만이 해소할 수 있는 궁금증에 조금 각성된 느낌이었다. 첫 출근 전에 설레서 잠이 오지 않는 것처럼, 괜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쩌면 각성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제는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나 혼자니까, 나는 더 뾰족하고 단단해져야 했다.


난 누구보다 무딘 사람이라,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부드러움의 강함을 믿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런 생각의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쩐지 변화무쌍한 나의 모습을 미국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많은 변화가 나에게 빨리 와도 괜찮을까, 싶었다. 지금의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때의 나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두려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변한 모습도 사랑할까, 걱정도 되었다. 멍청한 두려움인 것은 물론 안다. 꽤나 긴 시간, 내 일상에 잠시 멈출 사람들에게 향한 애정 섞인 걱정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할머니가 내가 밥을 잘 먹는지 걱정하는 것처럼. 나는 약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강물에 쓸려가는 자갈 같은 상황이므로.

(그리고 솔직해지자면, 멍청한 두려움을 조금 가져도 되는 나이가 아닌가, 젊음에 대한 오만도 있었다.)


바다로 가면 다들 좋다고 했다. 물론 그럴 것이라 감히 예상한다. 더 큰 상황을 마주하며, 더 큰 역할을 할 기회들이 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아 둥글어지고, 공격받아 부서지더라도 나를 위한 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정신없이 굴러갈 뿐인 돌멩이라, 그런 미래보다 지금의 상황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여기서 가라앉으면 삼각주 따위의 퇴적물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급류에 몸을 맡겨버리는- 그런 작은 돌멩이로서의 나. 그런 작은 돌멩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어디에 멈추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던져 흘러가는 것이다. 일부러 겁이 나서 미래를 어렴풋하게 지워내며, "바다에서 만나"라고 서럽게 인사하는 작은 돌멩이가 나인 것 같았다. 꼭 다시 만나면 좋겠다고 되뇌며, 두려워서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상태라고 변명하는 것이니, 이 얘기는 조금 줄여야겠다.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했다. 조금 더 단단하고 뾰족한 나, 많은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된 나, 사람을 대하는 것에 조금 여유로워진 나, 그리고 나를 조금 더 알게 된 나. 꽤 긴 시간, 새로운 곳에서 지내고 나면, 나는 어떤 나를 마주하게 될까? 궁금했고, 기대했다. 재미있는 일들 자체보다 그 경험 이후의 나를.

생각이 이쪽으로 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멍청하게도 까만 가방을 움켜쥐고 공항 구석에서 청승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미국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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