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친구에게 장난으로 왜 사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만약 누구든 맥락없이 왜 살아? 라고 한다면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맥락없이 그렇게 질문 했었다. 살짝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너무 진지하게 무게감을 가지고 왜 사냐는 질문을 해버리면, 너무 분위기가 엄숙하고 근엄하고 진지해질 것 같아서 그랬다. 그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거지 이유가 어딨어.'
몇 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가 내게 왜 살아? 하고 묻는다면 나 또한 저 친구의 대답과 완벽하게 똑같이 답할 것이다. 태어났으니까 사는거죠.. 이 답보다 더 명쾌한 답이 나올 수 있을까? 너무나 당연해보이는 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에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도, 알바도, 공부도, 계획도, 유흥도, 취미생활도, 노는것도, 일상생활 조차 정상적이고 건강하게 보내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다. 아무것도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누워서 머릿속으로 잠자는 시간을 빼고 정말 악착같이 살아내는 삶을 꿈꿨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인스타에서 보이는 삶들은 너무나 화려하다. 꼭 고학력 고학벌 전문직 금수저 돈많은 인생들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들을 동경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살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텐데 나는 하루아침에 그렇게 살아야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자신이 전혀 없었다. 너무 당연하지만..
죽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의지도 기쁨도 없이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싶지 않았다. 나는 나아질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의지가 없기 때문에. 그러나 막상 죽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죽고싶진 않았다. 살아있는 동물은 뭐든 생존본능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 본능이 적든 많든 상관없었다. 내게도 본능이 있다는것이 중요했다. 나는 결론적으로 죽지 않았기에 이렇게 글도 쓰고있다.
죽긴 싫지만, 불안으로 가득한 괴로운 일상을 살아내기 싫어서 열심히 발버둥을 쳐댔다. 그렇게 발버둥을 치고 주변에 구조를 해달라고 손을 뻗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노력들이 모여 지금의 괴롭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내가 되었다. 괴롭지 않다는 것이 마냥 기쁘고 즐겁거나 또는 평온하다는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내려는 그런 의지가 생긴것 뿐이다. 왜 사냐..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겠죠. 내가 선택한 인생도 아닌데요, 다만 동물적 본능 때문에 죽긴 무서워요. 그럼 살아야겠죠, 근데 이왕 사는거 살맛이 나야 살겠죠. 그러려면 발버둥치면 살맛을 느끼게 될 순간이 오겠죠.. 즐겁지 않은 인생은 살 맛이 전혀 안나잖아요..
여전히 완벽한 인생도, 잘난 인생도 아니지만 그냥 산다. 사는건 정말 별거 없다는거 맞는것 같다. 가끔 존나 괴롭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들이 머릿속을 덮쳐도.. 퀘스트 깨듯 그런 불안들을 잘 다루면.. 다시 살맛을 느낄 때가 오고.. 잘 다루지 못하면 조금은 그런 불안들과 어울려 주기도 하는 거고.. 또 죽고싶고 살기 싫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덮칠때가 오겠지만 그때도 아마 난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또 그런 생각들이 없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