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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도밤 Mar 11. 2024

선선(2023), 비자발적 퇴사자의 일일

무업 기간의 동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p.103 겨울에는 볕 찾아다니며 걷고, 봄에는 볕이 잘드는 곳에 돗자리 펴고 누워 눅눅한 마음을 부지런히 말렸다. 그 해 처음으로 봄이 길다고 느꼈다.

p.113 무업기간에 관해 이야기하고부터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무업기간'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무업기간을 보내는 나로 정의했다. '취직해야지?'가 아니라 '무업 기간을 어떻게 보낼까?'였다.

p.123 응원이 난무했던 <여성 재취업 출판 과정>. 응원하고 해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나의 은인이었다.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은 게 복권 당첨이었다.

p.142 가뿐할 때도 도망치고 싶을 때도 달리자. 체력은 키우면 되고 기준은 내 삶에서 찾자. 나에게 알려줘야지. 도망치지 않은 일이 있다고. 그러니 다른 일도 달리기처럼 할 수 있어.

p. 148 일상에는 박자가 필요하고 각자에게 맞는 박자가 있다. (..) 나만의 박자를 찾고 잃었다. 찾고 잃고를 반복했다. 계속했다.



퇴사 같지 않은 퇴사를 하고 오늘로 50일 남짓이 되었다.

목요일에 마지막 출근을 하고 금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묵직한 마음이 나를 눌렀었다.

이제 매일 하루를 어떻게 꾸려야 하나?


다행히 묵직한 마음은 그날 하루뿐이었다.

직후 독한 감기를 앓고서 다시 기운을 차렸을 때는 더없이 가뿐해졌다.


9개월의 짧은 직장 생활 동안에도 나의 본질은 늘 직장인보다 자유인에 가까웠다.

누워 있다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는 자유인의 일상.

직장 생활 직전까지 누구보다 잘 즐겨 왔던 것이었기에 금방 본질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보다 더 즐겁게 누렸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유인의 삶이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음을 안 것.  

당당한 자유인이 되고자 내 하루를 꾸리는 일에 더 진심과 정성을 다하고 있다.

하루를 잘 꾸리려면 나와 나의 리듬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나에게 맞는 리듬을 찾기 위해서도 나름의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산 중턱의 남산 도서관까지 헐떡이며 걸으면 딱 35분이 걸린다.

딱 좋은 거리, 기대 이상의 쾌적한 환경, 하늘과 나무의 풍경 사이에서 봄이 조금 더 빨리 오기를 기다리는 요즘이다.

서늘한 개방 열람실에서 사서의 소개글이 붙은 이 책을 우연히 빼어 읽었다.


'무업 기간'의 동지가 자기만의 박자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동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앉은 자리에서 금세 끝장까지 넘겼다.


완성하고 이룬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걸어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라 좋았고, 과하지 않은 비유와 공백이 담백해서 좋았다.

이번주도 마음을 꽉 채우는 자유인의 행복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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