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하게 과거를 불신했다
경고 : 필자는 대가리 꽃밭이자 멍텅구리
아직도 공부할 때는 종이에 직접 정리한다. 빨간 볼펜으로 줄을 긋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SNS 계정도 없다. 이건 같이 할 때를 놓친 것에 가깝지만 어쨌든.
시간 약속이 없다면 기꺼이 길을 잃는 편이다. 스스로에게 집중할 때 행복하다. 그런데 왜 나는 또 조급해지는 건지.
요즘은 AI가 대세다. ppt까지는 인터넷 강의도 들어가며 어찌어찌해냈는데, 이 AI는 정말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다.
AI로 녹음본을 통째로 돌려 요점 정리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막막하다. 가슴은 또 답답하다.
PDF는 태블릿이 편하니까, 그건 이해해서 그러고 있다. 프로그램을 켜서 거기다 펜으로 필기한다. 그런데 말이다, 타자로 필기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화면은 본 적도 없는 구조로 펼쳐지고 있었다.
한글 연습 프로그램에서 산성비 3단계를 클리어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예상조차 불가능했다.
그건 정말 '효율적'이어 보였다.
그래, 효율. 이 단어가 얼마나 우리를 채찍질하는지.
이전 글에서 지금 시대가 얼마나 공부하기 좋은지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래 도구는 널려있고, 개인의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지.
이따금, 그 '뭐든지'가 정해진 기분이다. 은목서 향기를 맡으며 심호흡하는 일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감상문을 클릭 몇 번으로 해결하면 '나도 알려줘' 소리를 듣지만, 하나하나 손으로 적어내면 미련하다는 눈초리를 받는다.
거울나라의 엘리스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전력으로 달려라. 아마 지금 시대가 이 영역에 도달한 게 아닐까. 발걸음을 떼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나를 조금씩 잃어버리고 말았다.
***
이번에 발견한 레시피를 첨부한다.
이름하여 [단짠 참치마요밥]
재료는 오X기 피자소스, 햇반 하나, 참치캔 하나, 화이X리에 딸기버터, 마요네즈!
그래, 다 때려 부으면 된다. 계량은 내 손에게 맡긴 채.
원래는 그냥 평범한 참치마요로 먹으려고 했다.
햇반 돌리고, 참치캔 하나 넣고, 마요네즈 크게 두 번 휘휘.
근데 유통기한 2주 남은 딸기버터가 있었다. 알지 않은가, 그냥 버터면 몰라, 딸기버터면 미묘하게 쓸 곳이 애매하다.
그래서 넣었다. 쓸모를 발견하는 일도 즐겁지 아니한가.
크게 한 숟갈 떠러 참취 마요 위에. 이왕 넣은 김에 피자소스도 둘렀다. 마요네즈 2/3 정도로.
색깔은 연분홍이 나왔다. 색소로 만든 거 말고, 적당히 아, 분홍색이네 싶을 정도로.
실패한 레시피는 공유하지 않는다.
얘, 진짜 맛있더라.
담백하고 고소함 아래로 부드럽게 단맛이 감싸니 밥이 말 그대로 술술 넘어갔다. 목구멍에 고속도로 뚫린 줄.
가끔 씹히는 딸기씨가 흠이긴 했다만, 다음에도 이렇게 먹을 예정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 번 트라이, 트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