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합리적으로 생각하자면 나는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맞다. 여행을 안 좋아하는 이유는 손에 꼽을 수도 없을만큼 여러가지다. 우선은 허리가 좋지 않아서 아무데서나 편히 있지 못한다. 길 맨바닥에 앉아있다던가, 기차에서 장시간 서있다던가, 딱딱한 매트리스에 눕는다던가 하는 일은 나에게 여행이라기보단 고행에 가깝다. 잠귀가 밝아서 한번 깨면 잘 잠들지 못하고, 벌레를 무서워해서 '숙소는 최고였어요. 다만 벌레가 나올 수는 있어요'라는 후기가 한 개만 있어도 예약을 망설이곤 한다. 더위를 많이 타서 더운 나라를 좋아하지 않고, 추운 나라도 밤이 길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는 여행을 좋아했던 거 같기도 한데, 이 모든 불편감들을 젊음으로 다 상쇄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취향에 색을 입혀가는 과정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싫어하는 것도 많아지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기회가 되면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그것은 여행지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여행감(感)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가령 n월에 생긴 휴일에 어떤 곳을 떠나면 좋을지 고민하는 일이 즐겁다. 건기인지, 날씨는 온화한지, 도시는 쾌적한지, 혼자/여러명이 가기엔 적절한지. 모처럼 노동이 비워진 휴일을 최적의 장소와 시간으로 메꿔가는 일은 마치 옷에 구멍난 부분을 소중히 기워내는 거 같기도, 금이 간 도자기에 흙을 덧바르는 일 같기도 하다. 특별한 곳에 방문하거나 특별한 체험을 하지 않아도 마르고 건조한 내 삶에 원없이 촉촉해질 수 있는 마음, 그러니까 여행감(感)을 내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감이 가장 고조되는 순간은 해가 진 이후 -하늘도, 사람도 점점 붉게 물드는 그 시간에- 정신 차렸을 땐 이미 깜깜한 어둠 속에 말소리만 살아남아있는 그 시간들이다. 억만 시간을 달려 반짝이고 있는 저 별이 이미 죽은 별이라는 얘기에 끄덕거리며 심각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은 우리가 평소에는 잘 느끼려 하지 않는 쓸모없는 시간이기 때문일까. 내가 마음껏 섬세해질 수 있어서. 한 땀 한 땀 인생을, 세상을 귀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리고 그 유약해진 마음으로 친구를 바라볼 때는 그렇게 인간답고 사랑스러울 수는 없는 법이라. 그래서 여행지에서 쉽게 사랑에 빠지곤 하나보다.
헤르만 헤세는 의식없는 쾌락을 좇기보다 기쁨도, 고통까지도 매순간을 의식하며 살라고 했다. 여행은 내가 의식하는 감각을 일깨우는 견문의 시간이기도 했다. 혹자는 고작 며칠 떠난 여행으로 견문이 넓어질 수는 없는 거라고도 말한다. 견문이란 보고 들어서 깨달은 모든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비추어볼 때, 짧은 여행으로 견문이 넓어질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대학교 3학년, 스물세살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 걷기 편한 반질반질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돌길 위로 원피스가 잔뜩 들은 캐리어를 덜그럭덜그럭 끌고 가며 어깨가 빠질 거 같던 날 내가 숨쉬듯 누리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았다. 누가 알려준게 아니라 내가 걸었기 때문에 마음에 걸려있을 수 있었다. 또 눈 앞에 보이는 모든 유럽이라는 풍경은 어땠는가. 표 없이 타는 지하철, 목줄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들, 세탁소 앞에 앉아 병맥주를 마시던 젊은이들. 그 모든게 나에겐 처음 보는 자유였고, 해방감이었다. 그 젊은이들처럼 까를교를 등받이삼아 흑맥주를 마시던 밤 친구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하나의 견문을 접할 때마다 살아있다는게 너무도 실감나고 벅차곤 했다. 너무 좋았던 여행에서는 여기 다시 오고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간 그런 생각을 잘 안 하게 된다. 그곳에 다시 간들 지금과 같을까? 그 순간만의 여행감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시드니에 다시 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