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른한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어떤 카페에 가지?"
날씨가 좋은 주말에는 평일이라면 도저히 가보지 않을 동네까지 범위를 넓혀본다. 카페를 고르는 일은 소개팅 같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따지고 든다. 좌석은 편한지, 무선인터넷은 잘 되는지, 아메리카노에 산미가 느껴지진 않는지, 이것저것 다 생각하다 보면 결국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곳은 없다. 계산기는 저 멀리 치우고 첫인상이 좋았던 곳을 선택하기도 한다. 시간을 투자해서 멀리까지 간 날에는 카페가 꼭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생긴다. 사진과 실물이 많이 다르시네요. 기대에 영 못 미치는 카페는 한 시간을 채 앉아있지 못하고 나와버리기도 한다.
카페에 대한 사랑은 한국에서부터였다. 새로 이사 간 동네에는 늘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얼마 못 가 새로운 카페가 들어선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새롭게 탐방할 공간이 생기는 셈이었다 어느 날은 넓은 원형 테이블에, 푹신한 좌석을 갖추고 있고 바스크 치즈케이크가 맛있는 꽤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했다. 오빠네나 친구가 놀러 올 때도 종종 그 카페에 데려가곤 했다. 내가 찾은 멋진 공간을 봐! 같이 그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더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가게 사장님은 취미로 영업을 하시는 거 같았다. 부내 나는 카페 가구들, 널찍한 좌석간격, 직접 만들지 않는 디저트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손님 좌석에 앉아 하릴없이 노트북을 하거나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일을 반복했다. 아 왠지 재수 없는 이유는 뭐지? 주인장의 애정이 어려있지 않는 공간이라니, 내 애정도 이내 식어버렸다.
그곳을 대체할만한 카페들은 여전히 많다. 한남동에 있는 맥심플랜트는 커피 회사 맥심에서 만든 카펜데, 근사한 서울의 경치를 조망하며 오랜 시간 노트북 작업을 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곳이다. 신사동에 있는 빈터 커피 바는 디저트를 안 좋아하는 나도 혹할만한 맛의 디저트를 선보인다. 작은 까눌레 하나를 주문해도 나이프까지 커트러리를 반듯하게 갖추어 서빙하는 점은 또 다른 감동포인트다. 연남동에 있는 펠른은 위스키 바같은 분위기에서 커피와 디저트 페어링 코스를 즐길 수 있어서 커피맛에 진심인 사람들이 가보면 좋을만한 곳이다. 명동성당이 보이는 몰또 에스프레소 바는 내가 처음으로 에스프레소의 맛에 눈을 뜨게 해 준 곳이다. 한국 가면 다시 가야지 하고 찾아보니 최근에 파인즈라는 이름의 에스프레소바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 지역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카페들이 있다. 마치 인덱스처럼 카페를 떠올리면 그곳에 깃든 추억들이 빼곡하다. 어떤 카페에선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었고, 어떤 카페에선 첫사랑과 헤어졌다. 이른 아침에만 문을 여는 고속터미널 꽃 시장에서 튤립을 사서 서울숲까지 따릉이를 타고 가보기로 호기롭게 다짐한 날, 특별한 날도 아닌데 웬 꽃이냐며 앤틱한 카페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요리조리 꽃 사진을 찍던 친구의 얼굴, 그때의 흐뭇하고 행복하던 감정들. 그런 것들이 내 삶을 밀도 높게 만들곤 했다.
카페라는 공간이 가지는 아름다움과 더불어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주로 에어팟을 끼고 있기 때문에 말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왜 뒷담화하는 대화는 그렇게도 잘 들리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날에는 두 명의 아주머니가 신랄하게 교사 욕을 하고 있었다. 들어나보자, 하고 한참 엿듣다가 맞는 말이 한 자락도 없어서 조용히 볼륨을 높였다. 세상만사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에어팟과 함께 한다는 마음만 가지면 쓸데없이 남의 의견을 굳이 청취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아-
커피와 어울리는 디저트와 음악, 새로운 공간이 주는 설렘과 여유로움, 사람 사는 이야기로 채워진 백색소음, 일과 상대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그 모든 것이 커피 한잔 값에 들어있다니 이렇게 가성비 넘치는 취미가 또 어디 있을까. 생각을 하고 싶은 날에도, 비우고 싶은 날에도 아무튼 나는 카페에 갔다. 아무튼, 그곳에 가면 좋더라.
언제 다시 갈 수 있으려나 -신사동 빈터 커피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