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다 다르지만 결국 하나가 된다면
해파랑길 10코스, 길이 12.9km, 소요시간 약 4시간 30분, 난이도 보통. 드디어 울산에서 벗어나서 경주로 들어가는 코스이며, 코리안 둘레길에서는 '자연경관이 매력적인 코스'중에 하나로 뽑히고 있다. 한 달 전부터 이번에는 추석연휴 기념으로 엄마와 나뿐만이 아니라 아빠와 여동생도 함께 걷는 것을 목표로 했다. 총 4명이서 걷는 해파랑길 코스라 그런지 맨 처음 해파랑길을 시작했을 때와 같은 설렘과 기대감이 또다시 들었다. 분명히 각자 의견이 맞지 않아서 약간의 다툼도 있을 것이다. 걱정은 되었지만 별로 상관은 안 했다. 30년 이상 늘 변함없이 함께 했던 가족이기 때문이다.
해파랑길 10코스의 주요 지점은 이렇다. 정자항과 정자해변 -> 강동화암주상절리 -> 관성솔밭해변 -> 읍천항벽화마을 -> 나아해변까지. 이곳에서는 몽돌해변과 해안 주상절리,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9월부터 10월까지 토요일마다 비가 내렸고 당일 아침은 항상 흐렸다. 2025년 10월 4일 토요일, 역시 오늘도 새벽부터 비가 내렸는데 다행히도 잔잔하게 내리는 비라서 위험하지는 않았고, 안전하게 자동차로 시작점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정자해변'과 강동몽돌해변 중간쯤 되는 무료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해파랑길을 시작했다. 시작 전에 정자해변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는데 드디어 바다와 맞닿아 있다 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바닷길을 걷다 보면 똑같은 바다인 것 같은데도 표지판이나 방파제에 적혀 있는 바다 이름을 보면, 그 바다가 그 바다 같고 그 방파제가 그 방파제 같지만 이름이 하나같이 다르게 적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자해변에서 걷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강동몽돌해변'을 지나가게 되었다. '강동화암주상절리'에서 잠시 멈추고 가족과 사진을 여러 번 찍고 또다시 걸어갔다. 쭉 가다 보니 '신명정자해변' 그리고 '신명해변'도 지나치게 되었다. 멈추지 않았다. 울산에서 벗어나서 경주로 바로 진입했다. 이제 울산시에서 경주시로 바뀐다. 계속 걷는다. 경주시에 진입해서 '지경리해변'을 쭉 따라 걷다 보면 '관성솔밭해변'이 나온다. 그다음 또 그다음 끊임없이 걷다 보면 바다 해변 이름이 매번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놀랍다. 해파랑길을 걷다가 보면 이 바다 저 바다가 전부 하나인 것 같으면서도 다르고, 각기 달라도 결국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멀리서 보면 동해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지지만, 자세히 보면 바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고, 각각 바다를 지켜주는 등대가 솟아있으며, 각각 해변의 모습, 바위와 모래의 종류가 하나같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끝도 없이 길을 따라가고, 잠시 뒤를 돌아서 아까 전까지 걸었던 흔적을 보자. 결국 바다는 하나로써 조화와 화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해파랑길에서 특별한 점은 '주상절리'를 두 번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울산에 있는 '강동화암 주상절리'인데 동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용암 주상절리로 꽃무늬 횡단면이 화려하다고 알려져 있는 주상절리이다. 그리고 경주시에도 진입을 해서 계속 걷다 보면 '양남주상절리'와 '양남주상절리전망대'가 있다. 특이하게 부채꼴 모양으로 동그랗게 쫙 펼쳐진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누워있기도 하고 서있기도 하는 각기 다른 주상절리들을 직접 눈으로도 전망대에 올라가서도 마음껏 볼 수 있다. 주상절리는 마치 조각 칼로 섬세하게 깎아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연의 위대함이란 끝이 없다.
'주상절리'는 실제로는 현무암질 용암류에 나타나는 수직 절리로써, 두꺼운 용암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서 급격하게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 작용의 결과이다. 실제로는 모양이 전부 다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 각자가 하나로 전시된 모습은 보는 사람들 마다 감탄을 하게 만든다. 아쉬운 것은 날씨가 흐려서 그 아름다움이 조금은 흐리게 보인다는 점이 별로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지는 모습을 멀리서 촬영하면 그 자연의 신비로움은 흐린 구름 아래로도 서서히 드러났다.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 우리 가족은 해파랑길 시작 전부터 서로 의견이 달랐으며, 실제로 해파랑길을 걸을 때에도 각자 걷는 방법이 달랐다. 엄마께서는 자연 경치를 보면서 동시에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셨다. 동생은 보통보다 빠른 걸음으로 엄마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빠께서는 자연 경치도 즐기고, 사진 찍기가 좋은 곳이 나오면 사진도 찍고, 중간에 쉬면서 간식거리를 드셨다. 나는 아빠께서 길을 헤매거나 잃을 수도 있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걸었다. 두루누리 앱을 켜놓고 위치를 항상 확인하며 안전하게 거리를 두면서 걸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부다 각자의 위치가 멀어지고 있을 때쯤, 다행히 우리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는 쉼터, 벤치, 정자, 화장실이 있었다. 무리해서 걷지는 않기로 했다. 앉을 곳이 생기면 그곳에서 쉬면서 얘기를 나누거나 해파랑길이 끝나고 난 뒤의 일정을 이야기했다. 각자 다른 곳에 있다가 한 곳에 또 모이고 이야기하고, 다 같이 도시락을 먹고,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니, 결국엔 걷는 속도나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달라도 우리 '걷기의 목표'는 똑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걱정과 달리 무난하게 '나아해변'에서 해파랑길 10코스를 마무리했다.
원래는 집으로 바로 돌아오면 되지만 추석 연휴 기념으로 가족과 경주에 온 김에 '불국사'를 방문을 했다. 불국사에는 부처님을 뵙기 위한 총 3개의 문이 있다. 일주문, 천왕문, 그리고 불이문이다. '일주문'은 온갖 욕심을 버리고 한 가지 마음, 일심으로 들어가라는 의미의 문이다. 다음으로 지나면 '천왕문'이 있다. 부처님 나라로 몰래 숨어 들어가려는 악귀들을 막기 위한 문으로, 부처님 나라의 바깥쪽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는 이름의 '불이문'이다. 중생이라면 누구든지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게 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표현하고 있다.
불이사상. 해석하기에는 다를 수도 있지만, '불이'는 너와 나,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 등 모든 상대적 개념 및 대상이 둘이 아니고, 본질적으로는 그 근원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명을 조금 더 붙이면 세상의 모든 현상과 사건은 서로 관계를 맺는 데서 생겨난다. 이때 다양한 존재들, 다른 존재들이 세상 밖으로 끊임없이 나온다. 하지만 결국 하나의 결말, 하나의 진리를 찾게 되며,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고 끝이 난다. 결국 하나와 나머지 여럿의 관계는 근원적으로 둘이 아닐 수 있으며,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고 나중에는 하나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태어날 때 다르다면 생각하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어떤 목표를 향해서 한 나라를 발전시킬 때, 서로 다른 인간들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도 마지막으로는 전부 '하나의 결실'을 위해 국민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이 대한민국이 강한 이유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현대사회의 중요한 여러 문제가 있다면 이때까지 '불이'라는 관점에서 삶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왔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도 봐도 마찬가지다. 만약 외국인이 '한국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불이사상'을 설명해 줄 것이다.
결국 불이사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나, 나의 것, 나의 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될 것이고, '나뿐만이 아닌 우리'라고 생각을 한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불국사에 있는 '일주문-천왕문-불이문'까지 방문을 한 다음, 경주 보문단지에 있는 순두부 맛집에서 얼큰한 토속 순두부찌개를 배가 든든하게 채워질 때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성격이 전부다 비슷한 것 같아도 달라서 말다툼이 늘 끊이지 않는 우리 가족. 특히 서로의 의견이 각자 있어서 이번 해파랑길 걷기 여행이 걱정이 되었지만 다들 만족하면서 10코스를 마무리하였다는 점에서 기뻤다. 다음날 아침, 아빠께서는 또 '해파랑길을 걷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며 1박 2일 여행 계획을 짜보라고 하셨다. 그날 여행이 상당히 마음에 드셨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