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더 좋다
2025년 10월 18일, 여름에 한 번도 오지 않던 비는 이상하게 9월부터 10월까지 토요일마다 조금씩이라도 계속 내린다. 비가 내리기 전부터 온도가 높아지고 공기가 습해지면 개인적으로 나는 잠을 잘 못 이룬다. 10월 18일 새벽 5시, 역시나 거의 뜬눈으로 잠을 못 자고 설치다가 결국에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거실 쪽에서 TV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져 '엄마가 벌써 일어나셨나 보다.'하고 방 밖으로 나갔는데, 아빠도 같이 일어나 계셨다. 예전에는 비가 내리면 아빠가 우리 모녀 보고 조심해라고 신신당부를 하거나 가지 말라며 만류하셨지만, 저번주에 가족과 함께 추석기념으로 해파랑길 10코스를 다녀오고부터 마음이 바뀌셨다. 그날은 아빠도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눈치셨다.
아빠와 함께 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 모녀는 시외버스와 일반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것을 계획했고 그것을 계속 실행해 왔었다. 아빠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아빠는 "내가 자동차로 운전하면 된다."며 급구 대중교통 타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셨다. 버스를 타면 괜히 불편하고 피곤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께서는 그다지 표정이 좋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아빠께서 운전을 하시게 되면 엄마께서 긴장을 늦추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타면 편하게 한숨 자도 되지만, 아빠와의 여행에서는 아빠가 직접 운전을 하기 때문에 엄마가 잠을 자면 아빠도 같이 졸리실까 봐서이다. 그래서 엄마는 잠을 한숨도 안 자고 아빠와 대화를 하시거나, 아빠가 집중해서 운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상황 체크를 늘 하시곤 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늘 봐왔듯이 엄마는 아빠가 운전을 하시면 늘 깨어 있으셨다. 그리고 이미 몇십 년 동안 습관으로 굳어지신 것이다.
엄마의 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마음이 생겨 입이 다물어진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엄마에게 "편하게 자고 가세요."라고 해도 엄마는 그 말씀을 듣지 않으신다. 나는 입을 조용히 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가족끼리 대화가 잘 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침묵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
그날도 엄마께서는 아빠와 같이 여행하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으신 듯했다. 부부로 사신지 30년이 넘으셨지만 엄마는 아빠와의 여행을 편하게 하신 적이 없으시다. 분명 두 분 다 각자 불편하신 점이 있으셔서 그럴 거라고 예상이 되지만, 특히 오늘은 확연히 엄마께서 표정으로 드러내셨다. 엄마는 계속해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은근히 직설적으로 표현하셨다. "운전하면 힘드실 텐데 그냥 오늘은 푹 쉬세요."
'얼마나 싫으시면 저런 말씀을 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 말에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아빠는 처음에는 괜찮다고 말씀하시다가 엄마께서 끊임없이 싫다는 표시를 내며 아빠에게 '같이 가면 힘들다는 식'으로 설득(?)을 하셨다. 남 눈치 잘 안 보시는 아빠는 엄마와 나 둘이서 여행을 갔다 오라고 하셨다. 서운해하시는 얼굴이 분명해 보였지만 다른 말씀은 하지는 않으셨다. 언젠가 기분이 풀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보기보다 뒤끝이 없으시다. 나도 그 성격 부분을 닮았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빼고 왜 좋지 않은 것만 나에게 유전으로 남겨주셨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모녀 둘이서만 해파랑길로 떠났다. 하지만 오늘 여행, 해파랑길 11-12코스는 아빠의 소원을 들어준 것 같다. 우리 지역 시외버스터미널을 타고 경주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버스 좌석이 1자리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왜 경주 가는 버스가 1 좌석뿐인가. 내가 엄마랑 타야 하는데. 그때 경주에서 10월에 APEC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해 내면서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그만 감을 수밖에 없었다. 경주에 행사가 있으면 전국 모든 사람들이 몸을 잠시라도 움직인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나는 바로 아빠 생각을 했다. '아빠도 오늘 같이 가는 게 맞는구나.' 그제야 엄마께서는 어쩔 수 없이 아빠께 전화를 드려서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하셨다. 몇 분 뒤에 아빠께서 바로 터미널로 오셨다. 우리 모녀는 아빠차에 탔다. 아빠는 살짝 삐져있는 상태셨다. 그리고 운전하시다가 잠깐 화를 내셨다. "그렇게 나를 두고 너네들끼리 가려고 하더니 이게 뭐냐?" 잠시 차에서는 정적이 있었다.
잠시동안의 조용함도 잠시, 아빠는 우리 모녀를 태우고 경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시면서 출발을 하셨다. 해파랑길 11-12코스까지 걷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11코스는 잠시 1시간 정도만 걸을 예정이다. 해파랑길 11코스, 길이 16.7km, 소요시간 약 6시간 30분, 난이도 보통이다. 11코스의 주요 지점은 나아해변 -> 봉길대왕암해변 -> 이견대 -> 전촌항 -> 감포항까지. 하지만 주의 및 위험 구간이 있었는데 해파랑길 11코스 내 봉길터널은 보행 이동이 절대 불가하기 때문에 그것을 건너뛰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경주에 있는 국가유산이자 문무대왕릉과 봉길대왕암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만파식적의 전설이 있는 '이견대'부터 시작이 될 것이다. 실제 걸을 수 있는 코스 길이는 10~11km 정도로 좀 더 짧아진다.
하지만 이견대까지 가려고 하면 시간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손해만 본다. 시외버스터미널 및 버스로도 이동이 어렵고, 자동차로 이동을 해도 막상 주차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다행히도 11코스에서 무료로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이 '나정 고운 모래해변'이다. 아빠는 나정 고운 모래해변 근처 도로명 주소를 내비게이션을 찍고 출발하셨다. "출발하자." 방금 화내셨던 모습과는 다르게 금방 기분이 풀어지셨던 것이 보였다. 나도 아까 전엔 경주 가는 시외버스가 1자리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불행으로 느껴졌다가 아빠 자동차를 타니 오히려 그 부분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이번 해파랑길 11코스를 함께 걷고 싶으셨는지 기분이 들떠 있는 채로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셨다.
그렇게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나정 고운 모래해변에 도착했다. 비가 벌써부터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주말에 비 내리는 것은 언제쯤 멈출까. 사실 나는 전날부터 잠을 설쳤기 때문에 해파랑길 11코스를 시작하는 당일 그다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몸과 정신력이 좋지 않으면 말도 괜히 좋게 나오지 않는다. 이 순간 말을 하게 된다면, 큰일이 날 것이 뻔했다. 나는 분명히 언짢은 말투로 말을 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말조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면서도, 조심하지 않고 함부로 말했을 때가 꽤 많았던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모습에 놀라서 나를 다시 판단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의 말로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청안스님께서 명상에 대한 불교 설법을 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과 혀로 하는 일은 엄청나고 때로는 끔찍합니다. 단지 몇 마디의 말로 오랜 세월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힐 수도 있고, 깨달음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맞다. 말은 그만큼 중요하다.
나는 분명 누군가한테 말로써 기쁨도 그리고 상처도 준 적이 있다. 직장생활 당시 나의 말로 인해서 오해가 생겼을 때, 나는 최대한 대화를 잘해가면서 풀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리 마치 인간관계는 엉뚱하게 꼬이는 상황으로 가거나, 완전히 상태가 더 나빠져 그만 상대방과 헤어져버린 일이 일어났다. 가끔은 그 일을 생각하면 그때당시 나의 행동이나 말이 후회는 되지만 현재로서 나는 다시 한번 더 느꼈던 것 같다. '말은 되도록이면 안 하는 게 좋다. 필요한 말만 해도 괜찮다.'
내가 말이 세다고 물어본다면 부드럽게 말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나는 상대방으로부터 '감동받았다' '친절하다'라는 평가도 꽤 많이 받는 편이었다. 어느 때는 부드럽게 말하고, 또 어느 때는 냉정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정확하게 적당하게 적용되는 것이 중요했는데 잘못 적용해서 일어난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습관. 잘못을 했고 앞으로 말을 조심한다고 해도 습관이 이미 베여있기 때문에 나는 결코 직장 동료와의 무너진 인간관계를 다시 좋게 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말을 최대한 줄이고 침묵하는 것'으로 선택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하루를 조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말은 중요하지만, 최소한 때에 따른, 감정을 너무 드러내지 않는, 적당한 말을 하는 것이 나에게 더 이득이 될 것이다.
말없이 걷다 보니 경주에서 유명한 동굴 '전촌용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경주 감포에 수많은 시간 동안 파도로 만들어낸 자연의 조각품인 전촌용굴은 '사룡굴'과 '단용굴' 두 곳이 있다. 신라시대 사람들은 아마 용을 많이 사랑했던 것이 분명하듯 용에 관한 설화가 있다. 사룡굴에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지키는 4마리의 용이 살았고, 단용굴에는 감포마을을 지키는 용이 한 마리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군사작전지역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잘 공개되지 않았지만, 해파랑길이 만들어지면서 이 용굴도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다. 동굴 가까이까지 갈 수 있는 우드데크길도 잘 조성이 되어 있었다. 내려가서 동굴 안으로 몰아치는 파도를 보면서 실컷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저 파도만 치는, 파도를 쓸어 담기만 하는, 이 말이 없는 자연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인간도 그런 모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적막 속, 비는 조금씩 왔다가 갑자기 많이 왔다가를 반복한다. 동굴에 파도가 부딪칠 때 철썩, 그리고 파도가 사라질 때 또다시 모든 것을 쓸어 담는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서 갈매기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가 갑자기 무엇인가가 나타나면 작아졌다가를 반복했다. 아마도 심하게 배가 고픈 걸지도 모르겠다. 빗소리와 함께 바람소리도 들린다. 바람이 우산이 날아갈 정도로 불고 있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는 느낌이 확 왔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건가.
그렇게 11코스는 감포항 등대까지 가면 완성이 된다. 12코스도 이제 걸어보자. 12코스는 해파랑길 감포항에서 출발해서 송대말등대와 오류고아라해변, 연동마을을 지나 양포항에 이르는 구간이다. 길이 13km, 소요시간 약 5시간, 난이도 보통. 연속된 항구와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가 계속 길 걷는 내내 존재한다. 하지만 위기는 어김없이 한 번씩은 꼭 찾아온다고 했던가. 해변길이 잘 구성되어 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차도로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3km 중에서 3~4km 정도 걸었을 때 울퉁불퉁하고 걷기 불편한 자갈해변길이 시작이 되었다.
자갈해변길은 걷기도 험난한 데다가 '청소되지 않고 그대로 버려진 쓰레기'들로 상당한 곳이었다. 대체 누가 이렇게 쓰레기를 버린 걸까. 엄마께서는 누가 버린 것이 아닌 바다로 쓸려오는 쓰레기들이 다 여기로 몰려 들어온 것 같다고 하셨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들었지만 오늘 내가 꼭 지켜야 할 것은 '말을 하지 않기'이다. 그래서 입을 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숨은 계속 나왔다. 나도 바다에 쓰레기를 버린 적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바다에 그냥 쓰레기를 버리는 건가. 그게 쉽고 편하니까? 조그마한 쓰레기도 가방에 넣고 나중에 쓰레기통으로 따로 버리는 습관을 지닌 나로서는 도저히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이 지금 겪는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은 어쩌면 쓰레기를 버린 죄로 인한 것이 아닌가.
인간들은 얼마나 많은 독한 쓰레기를 버리고 얼마나 많은 독한 말들을 내뱉었던가. 11코스와 다르게 완전히 마음이 반대로 향했다. 우울하고 죄책감이 가득한 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미역줄기들도 자갈해변길에 그냥 툭하고 널브러져 있었다. 쓰레기들과 엉켜서 말이다. 그것들을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그냥 밟고 다녔지만 괜히 마음 한구석이 나도 모르게 아팠다. 꼭 나를 잘 모르는 타인의 말로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당황스러운 감정을 받은 듯했다. 깨끗할 수도 있었던 자갈길이 더럽혀진 채 썩어 문드러진 채 있는 모습이 나도 누군가한테 깊은 고통을 받아 털썩 주저앉은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부정적인 것에 현혹되지 않기로 했다. 해파랑길의 목적은 '걷기'니까. 나는 걸었다. 계속 걸으니 다행히도 쓰레기길은 점차 사라져 갔다. 아까 전에는 충격으로 인해 말을 잠시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에게 이로웠던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까까지만 해도 불안과 불만으로 가득 차 요동쳤던 내 마음은 점차적으로 파도 속으로 떠내려가서 사라지듯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정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12코스는 최악의 코스지만 그래도 걸었어."
아빠께서 내 말을 들으시더니 나에게 뭐라고 하셨다. 엄마는 아빠께 무슨 말씀을 하셨다. 두 분께서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서로 대화를 잠시 나누시는 듯 보였다. 나는 말없이 그저 바다와 하늘 사진을 찍으며 걷기만 하였다. 그 순간 이 모든 분주하고도 정신없는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말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반응하지 않고 내가 침묵으로 있을 때, 나의 마음은 잠잠해지면서 공기가 내 마음과 몸을 쑥 통과하는 순간의 편함을 가질 수 있었다. 시원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 모든 순간이 즐거워도 힘들어도 그때 잠시뿐이고, 이 모든 순간이 격정적이라도, 언젠가는 고요해질 것이다.' 나는 계속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비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비가 조금씩 찾아왔다. 오늘 날씨는 계속 그랬다.
11코스 때보다 더 말이 없어서 그런지 엄마와 아빠는 내가 잘 걸어서 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신다. 나는 미소로 답한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여 걷는 길에 다시 집중한다. 말이 계속하지 않으니 마음속에 다양한 감정들이 들어왔다가 나왔다가 하다가, 이내 무감각적으로 있는 그대로 아무렇지 않듯이 느껴진다. 모든 자연이 모든 상황이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둘씩 다가오기 시작했다가 다시 돌아간다.
모든 것은 다 있는 그대로 괜찮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