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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빼꼼무비 Feb 16. 2023

<아바타: 물의 길>에 대한 단상

1. 제이크의 여정 


처음 공개된 예고편에 쓰인 단 한 줄의 대사가 있습니다. 

I know one thing. Wherever we go, this family is our fortress.
한가지 확실한건. 우리가 어딜 가든, 이 가족은 우리의 요새라는 거야

그리고 이 대사는 192분에 달하는 런닝 타임을 한 줄로 요약한 것과 같죠. 

그리고 설리 가족이라는 요새는 물의 길을 따라 더욱 단단해졌는데. 


물의 길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바다는 너를 감싸 네 속에 존재한다.
바다는 너의 생전과 사후의 터전이다.
우리의 심장은 이 세상의 자궁 속에서 뛰고, 우리의 숨결은 심연의 그림자 속에서 타오른다.
바다는 내어주기도, 때론 앗아가기도 한다. 물은 만물을 이어준다.
삶과 죽음, 그리고 어둠과 빛까지

바다는 설리 가문의 장남을 앗아갔지만 설리 가족에게 더욱 단단한 요새를 내어주었습니다. 자신들의 터전을 포기하고 남의 요새를 탐하던 인간들에 쫓겨 어둠 속에 갇혔던 설리 가족에게 주었던 난관이자 구원의 빛 역시 다름 아닌 물이었죠. 

설리 가족은 하나다. 그게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이자 강점이다
<아바타>(2009) 삭제 장면 일부

제이크는 지구에 있을때부터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의 비루한 삶을 잊고자 술에 쩔어 하루하루를 낭비했고, 나비족에 더 동화되고 인간보다 나비로써의 삶을 추구하게 된 것도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비족과 감정적인 유대를 쌓으며 그들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말이죠. 

이번 작품에서도 인간의 2차 침공 이후 본인이 이끌던 오마티카야 부족을 떠나 멧카이나 부족의 틈에 몸을 숨기기에 급급합니다. 쿼리치의 부대가 들이닥쳤을때, 그는 멧카이나 부족들에게마저 도망칠 것을 권유 하지만 멧카이나 부족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싸움임을 깨닫고,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질 준비를 합니다.

그때서야 제이크는 그가 또 다른 전쟁을 무고한 부족에게 끌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장남 네테이얌마저 잃고서야 비로소 자기가 시작한 전쟁을 매듭짓기 위해 쿼리치와 최후의 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I see now. I can't save my family by running. This is our home. This is our fortress. This is where we make our stand".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치며 가족을 지킬 수는 없다. 이 곳은 우리의 집이며, 우리의 요새다. 우리는 이 곳에서 맞서 싸울 것이다




2. 작품의 기능


이처럼 제이크의 서사도 확실하지만, 그 외에 로아크의 성장기, 키리의 예수화, 쿼리치의 부성애, 등 많은 서사들이 얽히고 설켜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서사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기 보다는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 과정조차 극적인 반전 하나가 없었으며 액션 씬의 분량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무서운 페이스의 흥행가도가 무색할 만큼 "각본이 밋밋하다", 혹은 "카메론의 CG 차력쇼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여럿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전편과 비슷한 구조에 2막만 길어진 허리가 긴 닥스훈트같은 구조를 띄는 탓에 크게 피로를 호소하는 관객도 분명 많았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품을 크게 세 덩이로 보자면 1막은 제이크의 새로운 삶과 쿼리치의 재탄생, 2막은 설리 가족과 쿼리치의 새 환경 적응기, 그리고 마지막 3막은 멧카이나(수중 부족)와 인간들의 대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작 역시 유사하게 제이크가 나비족으로 새로 태어나 적응기를 거친 후 인간 대 나비족의 결전이 벌어지는 구조이고요.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파괴하고 남용하는 절대 악으로써 비춰지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제이크는 여전한 선역이자 주동자로써 극을 이끕니다. 전작과 상당히 유사한 서사를 띄고 있죠.

좌: <아바타>(2009)  / 우: <아바타: 물의 길>(2022)


그말인 즉슨 이번 작품은 전작으로부터 13년이라는 공백기에 대한 리프레셔이자 리마인더 역할과 설리 가족의 소개, 그리고 새로운 물의 무족을 소개함으로써 세계관을 확장시킨다는 기능적 역할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이라는 느낌 보다는 앞으로 2년 주기로 맞이하게 될 3,4,5편의 기반을 다지는 기능이 더 부각돼보인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단순한 징검다리 작품에 그친다거나, 또는  후속작에 과하게 의존적인 작품이라고 하기엔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너무나도 커보입니다. 




3. 작품의 의미


세 시간짜리 빌드업 작품이라는 꼬리표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필되기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조차도 입문자들에게 쉽사리 추천 하기 망설여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서 입니다. 각 작품의 밀도가 상당히 높고, 세계관 구축이라는 기능적인 역할이 더 두드러지는 부분이 분명 히 존재합니다. 여기서 흐름을 한번 놓치게 되면 지루함에 빠질수 밖에 없죠 . 카메론 역시 인터뷰들에서 피터 잭슨 감독에게 존경을 표한 적이 꽤 있었는데, 이는 장대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대서사시들의 공통적인 단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같은 예로 제가 가장 많이 다루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있습니다. <아이언맨>부터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는 자타공인 21세기 최고의 팝 컬쳐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 사실이나, 그 이후로는 점점 원성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라고 봅니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미국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스타워즈>가 있습니다. TV 애니메이션, 소설, 만화책, 게임, 등 모든 부가적인 컨텐츠는 전부 제외하고, 197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부터 2005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까지, 조지 루카스의 주도 하에 세심하게 쓰여진 이 여섯 작품은 완성도와 규모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렇기에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 팝 컬쳐를 주도하며 미국 문화의 근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타워즈>가 <반지의 제왕>과 마블 영화들과 근본적으로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원작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부 조지 루카스의 마스터마인드로 쓰여진 장편 서사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영화 감독을 꿈꾸게 된 계기도 바로 그가 20살이 되던 해에 개봉한 <스타워즈>였습니다. 카메론은 이 시대의 조지 루카스가 되는 것을 그의 화려한 커리어의 마지막 과업으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원작 없이 행성, 외계 종족, 언어,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세계관을 직접 꾸려나가며 우주를 배경으로 한 대 서사시를 몇십 년에 걸쳐 그려낸 사람은 영화사에서 조지 루카스가 유일합니다. 13년의 공백기는 모션 캡쳐 기술력의 발달도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더 큰 규모의 세계관을 보다 더 촘촘하게 구축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아바타> 시리즈는 칠순을 목전에 둔 노장의 마지막 불꽃이자 화려한 피날레가 될 것입니다. 


Box Office Mojo 역대 전세계 박스오피스 순위

192분이라는 긴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두 달여 만에 역대 글로벌 박스오피스 순위 4위(3위도 사실상 확정적)를 기록했다는 것은 이미 전 세계 관객들이 판도라의 세계관에 깊이 빠져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구 폭스, 현 20세기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한 감독에게 1조가 넘는 예산과 제작 과정에서의 전권을 주며 스튜디오의 운명을 맡긴 것은 당연히 전작의 성공도 있었겠지만 그의 확실한 비전과 이 시리즈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일찌감치 확인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3,4,5편 부제와 개봉일

2편이 개봉하기도 전에 3편의 촬영은 모두 끝났고, 4편은 반정도 촬영이 마무리된 상태입니다. 손익 분기점 2조원은 2,3,4편 세 작품을 모두 통틀어서 계산된 액수일 텐데요. 만일 이번 작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머지 세 편을 성공시키게 된다면 조지 루카스를 뛰어 넘는 업적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본인만의 상상력으로 한 땀 한 땀 직접 쌓아 올린 방대한 세계관을 통해 금전적인 성공 뿐만 아니라,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를 완결시키는 불가능에 가까운 과업을 완수하게 되는 것이죠. 


영화 감독 이전에 해양 생물학자를 꿈꿨고, 최초로 11km 심해를 탐사하며 기네스 기록에도 오른 소문난 오션러버 카메론은 그 과업을 본인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물의 한 형태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단순히 생태계를 향한 사랑을 넘어 그의 인생관이 물과 바다의 순리와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요. 이는 더 오를 곳이 없는 68세 거장의 꿈이자 평생의 숙원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꿈이 과연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장식될 수 있을까요? 전 세계 영화 팬들은 내일을 살아가야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Wallpaper Abyss, THR,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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