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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A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심층 분석

암구호의 의미부터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유래까지

by 곰크루즈

1. 카체이스 씬 속 차종에 담긴 의미

'밥'이 몰고 가는 건 닳고 닳은 보라색 닛산입니다. 한때 혁명과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그가 지금은 고철 같은 차와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듯 하죠. 그러나 굴러가는, 튼튼한 일제 엔진처럼 과거의 에너지의 일부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가 쫓는 두 인물 역시 미국 사회의 기형적 산물입니다. 인디언 혈통의 용병 '아반티 Q'는 하얀 닷지를 몰고, 백인우월주의 단체의 일원인 '팀'은 파란색 머스탱을 운전합니다. 두 차량 모두 미국의 '마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머슬카들로, 근육질의 차체와 성조기의 색을 입은 외피는 그들이 믿는 힘과 지배의 신화를 그대로 반영하며, 마치 '진짜 미국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일종의 기싸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세 차가 도로 위에서 맞붙는 장면은 곧 미국이 낳은 세 가지 환영이 서로를 갉아먹는 풍경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실패한 혁명, 동화된 원주민, 그리고 폭력적 국가주의간의 꼬리에 꼬리를 문 추격전이 펼쳐지는 것이죠.




2. 세르지오의 '파도'와 캘리포니아 언덕


극 중 베네시오 델 토로가 연기한 '세르지오'는 "파도를 상상해"(Ocean Waves)라는 말을 반복하며 '밥'을 진정시킵니다. 세르지오의 제자였던 '윌라'는 아버지 '밥'보다 더 침착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마지막 카체이스 씬에서 마치 일렁이는 파도를 연상케하는 지형을 이용해 침착하게 적을 처단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가라데 도장을 운영하며 제자들을 양성하는 세르지오가 파도를 강조하는건 우연이 아닙니다. 불교나 도교 철학에서 바다와 파도는 끊임없는 변화와 흐름을 상징하는데, 특히 선(禪)에서는 “파도가 치듯 마음의 번뇌도 일렁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깨달음과 연결됩니다.


'센세'의 “파도를 떠올려라”는 단순한 심호흡 지시가 아니라,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변화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중심을 잡으라는 가르침같기도 합니다. 파도처럼 강렬한 힘 속에서도 균형과 생명력, 고요함을 느끼고 침착하게 움직이라는 복합적 의미가 내포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도가 일렁이는듯한 고요하고 묵직한 카체이스씬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나 싶습니다.




3. 영화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퍼피디아'(Perfidia)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배신' 혹은 신의를 져버리는 행동을 뜻하는 여성 명사입니다.


퍼피디아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들이 실패했음을 시인하지만, 사실은 실패한건 프렌치 75가 아니라 배신자로 전락한 본인 자신이었을 뿐입니다. 그녀가 배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알량한 성적 욕망에 굴복해서일 뿐. 혁명을 향한 그녀의 의지는 그 누구보다 강했죠.


단순한 욕망에 의해 자신의 신념을 져버리고 과업을 달성하지 못한 자가 또 있습니다. 바로 '스티브 록조'이죠. 그렇게 강한 정신력을 가진 신념 굳은 사람도 성적 욕망에 굴복해 일을 그르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별개로 '혁명'은 실패했다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혁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얘기하는듯 하죠. 프렌치 75의 세력은 약해졌지만, 세르지오같은 사람들이 그 어떤 이익도 바라보지 않고 불법 이민자들의 안식처를 체계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제공해주는 것도 모자라 수련을 통해 심신을 무장시켜주기까지 합니다. 또한 '윌라'를 구해준 '아반티 Q'도 굳이 개입하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모종의 이유로 일종의 '숭고한 희생'까지 하게 됩니다.

이처럼 꼭 어떤 단체에 속하지 않더라도, 사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이들이 '끝 없는 전투'를 쭉 해오고 있었다는걸 영화는 똑똑히 보여줍니다. 그 기나긴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윌라'가 오클랜드 시위장으로 떠나는 엔딩과 함께 이제 그 싸움은 '윌라'같은 후대의 젊은이들의 몫이라는걸 말하는 듯 하죠.

폴 토마스 앤더슨은 우리가 그 끝없는 전투 속에서 포기하지 말고, 퍼피디아나 록조같이 욕망에 휘둘리지도 말고, 파도(Ocean Waves)를 떠올리며 침착하고 성실하게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영화를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4. 길 스캇-헤론과 프렌치 75

프렌치 75 단원 확인차 외치는 암구호는 길 스캇 헤론의 노래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의 가사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이 노래는 사실상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모든 것들이 들어가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Green Acres, Beverly Hillbillies, and Hooterville Junction
Will no longer be so damned relevant
And women will not care if Dick finally got down with Jane
On "Search for Tomorrow" because black people
Will be in the street looking for a brighter day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해당 곡은 1971년에 등장한 시/노래로, 대중매체(특히 텔레비전)가 현실의 사회 변화를 가로막고 ‘소비와 도피’로 바꿔버린다는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당시 흑인 인권 운동과 맞물리며 큰 파급력을 끼쳤습니다.


노래에서 혁명은 텔레비전 쇼, 광고, 앵커의 멘트처럼 소비될 수 없고,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다고 반복하는데요. 즉 '혁명'은 화면 속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의 일상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계속 강조합니다. 가사에 브랜드, 광고 문구, 인기 TV 프로그램 제목들을 나열함으로써 대중문화가 우리의 정치적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죠.



Green Acres, Beverly Hillbillies, and Hooterville Junction
Will no longer be so damned relevant

암구호로 쓰인 해당 가사를 보면 <그린 에이커스>나 <베벌리 힐빌리스>같은 시트콤은 옛날에 유행했던 가벼운 오락 프로그램들이며, 이제 그런 쇼들이 더 이상 사람들의 삶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 말함으로써, 현실의 급박한 정치적 요구가 표면적 오락을 무색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언적 발언을 합니다.

And women will not care if Dick finally got down with Jane
On "Search for Tomorrow" because black people
Will be in the street looking for a brighter day

여기서 '딕'과 '제인'은 한국의 '철수와 영희' 같은 존재들입니다. 교육 매체에서 오랜 시간 인용된 캐릭터들이죠. <내일을 찾아서>(Search for Tomorrow)는 유명한 TV 연속극이며, 극 중 이름도 모르는 캐릭터들이 지지고 볶는 진부한 스토리에 더 이상 몰입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미국 주류 미디어가 반복 소비하던 단순하고 백인 중심적인 서사를 싸잡아 비꼰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흑인들은 거리로 나와 더 밝은 날을 찾아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건 허구적 오락이 아니라, 실제 삶의 변화와 사회적 정의를 향한 직접적인 행동이 중요해질 것임을 말하는 듯 합니다

콜베어 쇼에 출연한 키멜, 그리고 키멜쇼 방송 중지 해제 촉구 시위

이 노래는 미디어가 대중들을 어떻게 현혹시키는지, 또 시청자의 수동성에 관한 문제를 일찍이 포착한 듯 합니다. 특히 최근에 스티브 콜베어, 지미 키멜 같은 좌성향 TV쇼 진행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로 탄압을 받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그 어느때보다도 더 시의적절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밥'이 전화로 랑데뷰 포인트를 묻는 장면에서 '조쉬 동지'가 상관한테 전화를 넘기기 위해 통화대기를 거는데, 이때 해당 노래가 통화대기음으로 흘러나온다는게 깨알 포인트!




5. 'MKU'와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극 중 불법 이민자들을 통제하는 군부대 이름은 MKU, Mankind United(하나된 인류)라는 뜻입니다. 극 중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 미친X(Lunatics)들을 처리하고 보다 더 진보하고 순수한(Pure)한 백인 혈통으로 세상을 지배하겠다라는 의의를 가진 만큼, '하나된 인류'는 곧 이 그들이 주장하는 '순수한 세상'을 뜻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된 인류와 정반대의 뜻을 담고 있죠.

옛날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하얀 고깔 모자를 쓰는 것으로 유명해 두목을 '그레이트 위저드'라고 지칭하곤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산타 역시 빨간 고깔 모자를 쓰고, 따라서 하얀 고깔모자를 쓴 마법사들이 시대를 거쳐 빨간 고깔 모자를 쓴 산타로써 그 정신을 계승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참고로 지하 벙커에 위치한 비밀 회의장에 출입할 때 '팀'은 '징글벨' 노래 리듬에 맞추어 노크를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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