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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벤틀리 <기차의 꿈> 후기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건

by 곰크루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씽 씽>의 각본을 담당한 클린트 벤틀리 감독의 동명 소설 원작 영화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철도 노동자인 '로버트 그레이니'의 깊은 사랑과 상실,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영화는 폴 고갱의 그림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에 대한 클린트 벤틀리 감독의 답변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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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엔딩 음악이 흐르고 크레딧이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극장을 떠나기 싫어지는, 혹은 창을 끄기 싫어지는 순간. 이 휘몰아치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지는 순간. 한 문장으로 정리되진 않지만 마냥 가슴이 벅차고 뜨거워지는 작품. 그게 바로 <기차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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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대상을 비판하거나 일침을 놓는 대신 그저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또 이 세상을 다녀 갔던 모든 이들에 대한 담담한 헌사 같은 그런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단한 족적을 남기진 않더라도, 수백 년이 넘게 우뚝 서 있는 고목처럼 그렇게 뿌리를 내리고 모든 풍파를 견디며 우직하게 살아온 이들에 대한 헌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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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고통 속에서도 대자연 속에서 연결되어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는 것. 꼭 거창한 목적이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꿈이 아닌 어떤 다른 이의 꿈, 혹은 이 세상이 꾸는 큰 꿈의 일부분이 되어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의 아름다움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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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적인 감상을 말씀드리자면, 잔잔한 톤과 분위기에 반해 빠른 전개와 컷 편집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해 줍니다. 각본과 편집, 촬영이 최근 몇 년 간 본 영화 중에 손에 꼽고, 평소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호주 배우인 조엘 에저튼의 담담하고 묵직한 연기가 인상적이며 <워리어>(2011) 이후 그의 최고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스카에서 과연 몇 개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될지 상당히 기대가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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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이런 말들만으로 단정 짓고 싶진 않습니다. 이 작품만큼은 뭘 분석하거나 뜯어보기보단, 있는 그대로 밀려오는 감정을 느끼시기를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 깊었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사로 리뷰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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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몸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시달리게 해.
우린 여기서 500년 산 나무들을 베어냈어.
본인은 알아채지 못해도 영혼에 탈이 나.

- 안 피플스(윌리엄 H. 메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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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얽히고설켜있어.
실마리 하나를 당길 때마다 설계가 어떻게 무너질지 몰라.
우린 이 땅에서 우린 어린아이에 불과해.
신이라도 된 줄 알고 대관람차에서 볼트를 막 빼내지.

- 안 피플스(윌리엄 H. 메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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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는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요.
모두가 얽혀있어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선 그어 말하기가 어렵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벌레가 강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해요.
죽은 나무가 산 나무만큼 중요할 때도 있고요.
우리도 분명 거기서 배울 점이 있지 않겠어요?

- 클레어 톰슨(케리 콘돈) -

[사진 출처: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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