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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라이트 <더 런닝맨> 리뷰

내가 알던 천재 감독이 아니야

by 곰크루즈

대문자 'N' 을 로고로 쓰는 대형 미디어 회사를 까고 싶었으면 최소한 그들보단 영화를 잘 만들었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작품은 딱 요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의 퀄리티를 웃도는 수준에 그치는, 에드가 라이트 커리어에 평생 오점으로 남을 실망스러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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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인들에게 에드가 라이트를 소개할때 항상 '천재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당연히 천재 감독들이라 하면 생각나는 이름들이 한가득이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사람 냄새 나는 '천재' 라는 점에서 에드가 라이트는 다른 거장들과 궤를 달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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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그대로 찢어 스크린에 올려 놓은 듯한 생동감 넘치는 각본과 그림이 라이트의 최대 장점이지만, 이번 작품 만큼은 그의 장점이 전혀 발휘되지 못합니다. 전작인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그래도 참신한 컨셉과 강렬한 비주얼로 볼 가치는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은 지인들에게 쉽사리 추천하기가 망설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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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습니다. 초중반까지는 어찌저찌 끌고 가다가 후반부에 완전히 추진력을 잃고 땅에 꼬라박습니다. 평소 에드가답지 않은 어줍잖은 메세지 강제 주입과 같잖은 영웅 의식으로 영화가 완전히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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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당시에 출간된 스티븐 킹의 소설임을 생각하면 과연 시대를 앞서간 대단히 미래지향적인 컨셉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려 43년이 지난 지금에서 바라볼땐 시대착오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87년 영화보다 더 원작 소설과 밀착되어있는 작품이라는 소개를 개봉 전에 들었는데, 어쩌면 그것이 패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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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87년작의 펑키함을 어느 정도 그대로 가져 갔더라면, 혹은 소설을 완전히 해체해서 에드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더라면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50분 내내 정말 엉성한 80년대 혁명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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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에드가 라이트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봤더라면 굉장히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최소한 혁명을 얘기하려면 영화적 언어로도 혁명을 구현해내야된다는걸 크게 간과한 듯 합니다. 심지어 길 스캇 헤른의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까지 똑같이 삽입곡으로 쓰면서 본의 아니게 자기 자신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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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자체가 가진 약점 때문에 정정훈 감독의 촬영이나 조시 브롤린, 콜먼 도밍고, 리 페이스라는 A급 배우들의 연기마저 전부 묻혀버렸습니다. 이 배우들이 아닌 그 누구를 갖다 붙여놔도 큰 차이가 없었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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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파월은 파라마운트가 점찍은 '차세대 톰 크루즈' 이지만 아직은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탑건: 매버릭>에서 보여줬던 능글맞은 매력도, 링클레이터의 <히트맨>에서 보여준 출중한 연기력도 이번 작품에선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그의 성난 근육들 뿐만이 열일 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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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으로 인해 업계에서의 에드가 라이트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작은 코로나라는 핑계라도 있지만, <더 런닝맨> 같은 경우는 1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로 고작 6600만 불 밖에 벌어들이지 못하며 올해 최악의 흥행 실패 중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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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재고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넷플릭스스러운 흔해 빠진 액션 영화가 에드가 라이트의 손에서 탄생 했다는 점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하루 빨리 실패를 털어 내고 좋은 작품으로 다시 팬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상 리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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