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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은 Aug 10. 2022

제대로 관람하기

사는 이야기

<품34   53x33   혼합재료   2022>


하늘을 가득 메운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올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탄 남자가 다가오더니 나를 화단 쪽으로 몰아붙였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어! 어!’ 하며 자전거를 피하려다 한쪽 발이 화단의 턱을 밟고 말았다. 아마 턱이 조금 더 높았다면 걸려서 넘어졌을 것이다. 그 순간 귓가에서 “에이 씨~ 제대로 어쩌고~~”하는 욕이 섞인 말이 들린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멀어져가는 그 사람을 바라보니 잠시 후 상황이 파악된다. 인도의 가운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노란색 블록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사람이 지나가는 길이고 왼쪽은 자전거가 지나가는 길이다...라고 그 사람은 원칙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 원칙을 어긴 사람이었다. 

사태가 파악되자 뒤늦게 울화가 치밀어서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그를 향해 눈으로 레이저를 뿜었다.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 남자 배우의 액션으로 인해 내 안의 여러 캐릭터들이 바로 리액션하며 존재를 어필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내 안의 배우들이다. 

상대 배역의 대사, 행동, 표정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나는 그 연극을 절반만 본 것이다. 남은 인생 동안 모든 장면을 빠트리지 않고 관람하는 법을 익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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