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개인전
오래 전에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만들었다. 펜으로 드로잉 한 천에 솜을 채워 넣어 볼록하게 만든 거북이의 등껍질을 보고 있으면 뭔가가 터지기 직전인 듯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자폐적인 세계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복합적인 인상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변주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드디어 이번 작업에서 그 한 마리 거북이는 마흔 아홉 마리의 거북이로 다시 태어났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작업실에 있던 작은 캔버스들을 모아서 거북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시장의 규모를 고려해서 대충 50마리 쯤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모두 49마리였다.
그런데 그 순간 ‘49재’가 떠올랐고, 그것이 죽음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나는 멈칫했다. 그리고는 한 마리 더 만들어서 50마리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얼른 그 불편함을 덮어버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에 대한 실존적 불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죽음을 생각나게 하는 작은 단서조차 불길하게 여기며 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내가 49라는 숫자에서 죽음을 떠올리며 불편했던 것도 그리 특별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일반화를 넘어서서 49–제사–죽음 등 그때 나에게 일어났던 연상과 불안한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거북이 작업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나의 내면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49재(四十九齋)는 죽은 이가 다음 세상에서 더 좋은 곳에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소망하며 행하는 불교의 제례의식이다. 물론 윤회사상에 바탕을 둔 이 의식은 한 생과 그 다음 생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자아의 성장을 위해서는 여러 번의 심리적 죽음과 탄생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한 인생에도 같은 의미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탯줄이 잘리며 모체인 엄마와 떨어지지만, 다른 동물들과 달리 자립을 위해서는 오랜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정신의 독립은 평생에 걸쳐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간이란 생존을 위해 생후 최소 3년간의 절대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간 동안 아이는 엄마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엄마는 아이의 대리 자아가 되어 한 몸처럼 지내는데, 그러한 공생 관계는 서로의 마음 또한 하나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식이 성장하여 스스로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면 엄마는 ‘말을 안 듣는다.’, ‘반항한다.’고 하며 부모의 가치관을 떠나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려는 자식의 뒷덜미를 붙잡고, 자식은 그 손길을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한 채 머뭇거린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분신 같은 존재가 자신과 다른 마음을 가진 개별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게 힘들기 때문일 것이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엄마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발목을 잡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미진하게 마무리 된 부모와의 분리 때문에 아직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49라는 숫자에서 내가 죽음을 연상한 것은 낡은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고, 그때 느꼈던 불안은 그와 같은 자립과 성장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또 다른 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내가 처음 만들었던 거북이의 등껍질에서 긴장감과 답답함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느낀 것도 그러한 내면의 갈등이 표현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행위는 억압된 감정을 승화시켜 드러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치유적이다.
그렇다면 49마리의 거북이 작업은 성장의 문턱에서 걸려 넘어진 내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식이자, 의존적인 자아를 떠나보내고 진정한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뒤늦게나마 내 자신에게 수행한 성인식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거북이는 장수와 지혜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지혜란 세상의 이치나 도리를 잘 알아 일을 옳게 처리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나이 들어 비로소 갖게 되는 인생에 대한 안목일 테니, 인간의 그런 생각을 100년 넘게 사는 거북이에게 투사한 것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쩌다보니 거북이를 소재로 작업 하게 됐지만, 시기적절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