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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은 Aug 19. 2022

민감함2

그림 이야기

나는 나로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자주 느낀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민감한 성향이다.      


‘민감하다’는 것은 낮은 강도의 자극에도 반응하는 예민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내포한다. 한편으로 주변의 미세한 부분까지 감지하므로 남들보다 빠르게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처리하는 공간이 금세 한계에 이른다, 

반면 받아들인 정보를 더 세세하게 분류하여 깊숙이 저장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 덕분에 그것들은 다시 무수한 연상을 일으키며 풍요로운 내면세계를 만들어간다.     

 

내가 세상을 자극이 가득한 곳으로 느끼는 것도 이러한 민감한 성향 탓인 듯하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나 놀이기구를 탔을 때의 짜릿함 같이 강도 높은 자극은 말할 것도 없고, 눈부신 햇살도, 머리카락을 흩어놓는 바람도, 놀이터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하이 톤의 목소리도,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영화를 보는 것도, 몇 시간동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모두 오랫동안 누리지 못하고 쉽게 피곤해진다.     


대부분 민감성은 선천적이고, 고등동물의 경우 같은 종 내에서 매우 민감하게 태어날 확률은 15-20% 정도라고 하니 민감성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데, 내가 이러한 성향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단지 그 불편함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에 의하면 어느 문화에서나 신생아들은 다양한 유전적 기질을 타고나지만 그 가운데 특정 기질을 가진 소수만이 그 문화의 이상형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상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선호하는 기질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민감함은 이 사회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성향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민감하다는 표현은 사람마다 시기마다 불안한, 까다로운, 내성적인, 소심한, 사회성 없는, 낯가리는 등등의 수식어로 바꿔 불리며 부정적인 뉘앙스를 흠뻑 머금은 채 나를 묘사해왔고,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예술가와 민감성이라는 두 단어는 한 몸같이 붙어 다닌다. 프로이트와 융에 의하면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원친인 무의식에 더 쉽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능력 또한 그들의 민감성과 어느 정도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대상의 본질을 잘 파악하거나 독특한 인상을 잡아채는 것도, 그것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세밀히 살피는 것도, 이전의 것들과 섞어서 새로운 연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그것을 표현할 적합한 방법을 찾는 것도 모두 나의 예민한 촉수 덕분이라는 것을 경험해서 알고 있다.     


때로는 본성대로 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더라도 그것을 행하는 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 같다. 

신이 준 내 성향을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 이제야 삶의 요청임을 알았다.


<푸들>   50F   혼합재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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